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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못한 마음, 잠시 꺼두기까지의 기록

2025년 9월 29일 ~ 10월 05일 주간기록

by 기록하는노동자

명절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복잡해진다.

복직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명절”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무겁다.

그럼에도 나는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텀블벅 홍보와 임금교섭 설문, 그리고 연대의 소식까지.

하루하루가 쫓기듯 흘렀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사람과 관계, 그리고 ‘버티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 잠시 모든 것을 꺼두고 숨을 고를 수 있었던 며칠.

그 멈춤조차도 내겐 노동조합의 또 다른 기록이었다.


9월 29일, 명절 전의 공기

해고 이후, 명절 직전의 평일이 가장 괴롭다.
안부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어김없이 “복직했냐?”는 질문이 따라온다.
2~3일간 양가 부모님을 찾아뵐 때마다, 말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죄송함이 마음을 눌렀다.


그래도 이번 명절 전에는 조금 달랐다.
텀블벅 프로젝트 홍보를 하며 애써 밝은 목소리를 냈다.
현재 모인 금액은 400만 원 조금 넘는 수준.
하지만 목표금액 1,100만 원을 채우지 못하면 프로젝트는 취소된다.


이미 수많은 연대의 손길이 닿았는데,
그 동지들에게 다시 도움을 청해야 하는 현실이 낯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톡으로, 문자로, 다시 홍보를 이어갔다.
전화 한 통 한 통 직접 드려야 마땅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혹시라도 독자님들 중 22,000원의 후원으로 저희 노동조합을 응원해주실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오늘마감하는 텀블벅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실 것을 호소드리며 마지막으로 널리 알려주실 것도 호소드립니다!


텀블벅 홍보와 동시에

2025년 임금교섭 관련 회사의 위임요청안에 대한 조합원 설문조사도 준비해야 했다.

이럴 때면, 근로시간면제를 활용해 간부 한 명이라도 불러 함께 움직이고 싶다.
하지만 명절 연휴 직전의 공장은 늘 아수라장이다.
물량이 없다던 시기에도 이상하게 명절만 다가오면
현장은 미친 듯이 돌아간다.


이런 시기에 공장 인력을 한 명이라도 빼는 건 동지들의 어깨에 더 큰 짐을 얹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혼자 뛰어다녔다.
이게 지금 우리가 서로를 지키는 방식이다.

미래 더 단단한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지금은 우리가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나와 간부들, 그리고 조합원 모두가.

9월 30일, 설문조사 시작과 감사의 하루

2025년 임금교섭 관련 조합원 설문조사가 시작됐다.
기한은 연휴가 끝나는 10월 8일까지로 넉넉히 잡았다.

설문 문항은 모두 11개.
“회사가 ‘경영환경이 어렵다’며 임금교섭을 위임해 달라는 요청에 대한 생각은?”
“임금인상을 회사에 위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노동조합의 대응방안은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나?”
“계열사의 임금인상 위임 결정에 대해 어떻게 보나?”
그리고 “본인의 희망 인상률”과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인상률” 등
구체적 질문으로 구성했다.

연휴가 끝난 뒤 설문결과를 바탕으로 안건을 정리해 긴급총회(전자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문자를 다 보내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월간 소식지를 마무리했다.
창립 3주년 메시지, 임금교섭 과정 요약 그리고 텀블벅 출간 프로젝트 홍보까지 담았다.

이 시기엔 하루가 참 짧다. 급히 정리를 마치고 연맹 사무실로 향했다.


명절 전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연맹위원장님 결정으로 연맹이 텀블벅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한국노총에서도 후원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늘 우산이 되어주는 상급단체가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여의도에서 하루를 마감하고 집으로 향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오늘도 버틸 수 있게 힘을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10월 1일, 멍한 하루의 시작

2025년도 이제 3개월이 남았다.
10월의 첫날, 아침부터 멍하다.

월의 자릿수가 두 자리로 바뀌는 이 시점이 되면 늘 그렇다.
“이제 올해도 끝나가는구나.”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남은 세 달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내년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은 해야 하는데, 머리는 멍하고 마음은 공허하다.

텀블벅 홍보도 잠시 멈췄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 계절이 주는 공기가 그렇다.
가을이 저물고 초겨울이 다가오는 11월까지,
나는 늘 멍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잡생각의 바다에 빠진다.

머릿속에서는 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떠오르는데,
현실은 고정된 화면처럼 멈춰 있다.

한 해의 마지막 분기인데,
“도대체 나는 뭘 한 걸까?”
그런 생각이 스친다.

이것저것 하다 보면 괜히 산만해지고,
결국 아무것도 못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스스로 바보 같다고 느껴질 때쯤,
잡생각을 털어내려 애써 본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텀블벅 홍보도, 명절 인사도 이어간다.

그렇게, 잡생각과 현실이 뒤섞인 채
또 하루가 저물었다.

10월 2일, 명절 앞의 마음

명절을 앞두고 조합원들과 안부전화를 주고받다가 문득 마음이 먹먹해졌다.

노조가 처음 만들어지고 맞은 2023년 설에는
작게나마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조합원들에게 선물을 보냈었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해 추석부터는 아무것도 보내지 못했다.

위원장 급여 지원과 법무비용으로 빠듯하게 버텨온 재정, 현실은 냉정했다.
“다음에는 꼭 하자” 하면서도 결국 이번 명절에도 아무것도 전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더 고맙다.


이번 명절이 끝나면 이 부분도 꼭 개선 목록에 넣어야겠다.
무에서 유를 만들 순 없어도,
작게라도 ‘명절 공동구매’ 같은 사업을 추진해
동지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

인터넷 최저가가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찾아보면 길은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를 물다 보니 또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10월 3일~5일, 잠시 꺼두기

이번 명절연휴의 최대 목표는 머리 비우기였다.
잠시라도 생각을 내려놓고
설문조사가 끝나는 8일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정말 노동조합 모드를 꺼두었다.
회의도, 공문도, 기사도 잠시 잊고
오롯이 연휴를 ‘쉼’ 그 자체로 보냈다.

출근대신기록하는노동자의주간일지08.jpg 명절연휴가 길어도 정체는 국룰이다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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