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3일 ~ 11월 9일 주간기록
11월의 첫 주는 기쁨과 혼란, 안도와 허탈이 동시에 밀려온 시간이었다.
3년 가까이 이어진 갈등의 시간 끝에서 대화의 문이 열렸고
마침내 복직의 날짜까지 결정되었다.
하지만 기쁨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감정도 있었다.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게 된다.
“이 결정은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동지들을 위한 것인가?”
대립의 시간을 지나 상생의 길로 들어섰다는 안도감과
그동안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뒤 찾아온 방향 상실의 허탈함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했다.
이 일주일은 그 두 감정 사이에서 서성이는 시간이었다.
11월 3일, 결정을 앞둔 마음의 무게
11월이 시작되었다.
10월부터 회사와 노사상생을 위한 대화가 조금씩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나에게는 무거운 고민이 쌓여갔다.
오늘은 그 고민이 가장 깊어진 날이었다.
복직에 대한 이야기, 상생에 대한 이야기…
9월까지만 해도 극한의 대립을 했던 노사관계가 맞나 싶을 만큼
빠르게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이미 간부들과의 논의는 지난 월례회의에서 충분히 마쳤고
내일은 그 결론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편함이 남는다.
이 결정은 정말 조합 전체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내 개인의 안위를 위한 것인가?
내가 느끼는 이 불편함은 자책일까, 두려움일까.
지난 시간 우리는 승패를 겨루려고 싸운 것이 아니라 대화를 열기 위해 싸워왔다.
하지만 서로가 같은 언어로 말해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며 상처만 깊어졌고
그 상처가 결국 노사갈등을 확장시켰다.
이제야 그 상처를 봉합하려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혼란이 계속 남아 있었다.
11월 4일, 복직 확정, 그리고 찾아온 허탈감
노동조합 설립 멤버 중 한 명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를 앞두고 있어 함께 점심을 먹었다.
복귀에 대한 불안, 육아휴직 동안의 어려움, 제도가 있어도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는 이야기…
외벌이 가장의 육아휴직은 더 큰 부담을 가져온다.
노동조합도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후 늦게 회사와 복직에 대한 합의를 마무리하고 합의서를 작성했다.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별도의 합의도 이루어졌다.
조합원들에게는 복직일자가 가까워질 때 공식적으로 알리기로 했다.
2025년 12월 1일 복직.
2023년 9월 8일 해고로부터 2년 2개월 22일 만의 복직이다.
연맹위원장님과 각 사무처 동지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간부들에게 연락을 돌리자 모두가 축하해주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설명하기 어려운 허탈감이 밀려왔다.
3년 동안 노사상생을 위해,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왔다.
고입 연합고사 이후 이렇게 치열하게 버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복직이 확정되자
기쁘면서도 방향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갑자기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니 따뜻한 현실이 있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해주는 아내,
“아빠는 뭐든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아들.
가장으로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된 현실에 조용히 감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11월 5일, 다음 목표를 잃은 하루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멍한 하루였다.
목표에 도달하면 바로 다음 목표를 준비했어야 했는데
이번만큼은 공백이 크게 느껴졌다.
연맹위원장님이 예전에 말했다.
“노사관계는 손바닥 뒤집듯 풀릴 수도 있어.”
정말 그 말 그대로다.
3년여의 갈등이 무색할 만큼 최근의 흐름은 빠르게 풀리고 있다.
물론 그동안 쌓아온 우리의 노력과 인내가 만든 결과겠지만
그래도 이 변화가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고용노동부에 청원했던 특별근로감독은
노사합의에 따라 철회한다는 공문을 정식 발송했다.
법보다 대화가 먼저라는 당연한 진리를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몸으로 배웠다.
11월 6일, 내부정비의 시간
조금은 페이스를 되찾았다.
11월 이동사무실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은 내부정비가 우선이다.
2026년 계획도 전면 수정해야 한다.
복직투쟁이 길어질 것이라는 가정 아래 만들었던 계획은 모두 폐기했다.
2026년은 ‘정상화’와 ‘회복’의 해가 되어야 한다.
동지들의 수를 다시 늘리고
소통채널을 다양하게 구축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급하게 하지 않기로 했다.
급격한 변화는 늘 급격한 반발을 불러왔다.
지금 필요한 건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정성과 시간을 들이는 일이다.
11월 7일, 다시 시작된 업계연대
레미콘업계는 중소기업 비중이 크다.
전국 1,000여 개 공장 중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100개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업계 간 연대는 정말 중요하다.
오늘은 그 첫걸음으로 쌍용레미콘과 연석회의를 열었다.
각자 처한 상황을 공유하고,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업계의 어려움도 함께 논했다.
2023년에 동양·한라·쌍용레미콘·우리 유진기업이 부산에서 처음 모여 연대를 얘기했었다.
그 첫 모임이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 우리 노조는 큰 갈등을 겪었고
쌍용레미콘과 한라는 회사 주인이 통째로 바뀌었다.
하지만 오늘 우린 다시 모였다.
정기회의를 하기로 했고 조금씩 목소리를 모아 연대를 이어가기로 했다.
11월 8일, 연대의 온도
여의도에서 한국노총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올해로 세 번째 참석이다.
버스를 타고 도착하니 동지들의 열기가 가득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복직을 축하해주었다.
어려운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응원해준 동지들.
그들에게 받은 온기와 사랑을
앞으로는 내가 더 크게 돌려주고 싶다.
내년 노동자대회에는 우리 조합원들과 함께 오기를 소망하며 현장을 떠났다.
11월 9일, 긴장이 풀린 하루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서일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하루가 흘렀다.
그저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