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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uff Aug 28. 2024

<프랑켄슈타인>

워즈워드의 시에 나타난 시대의 운동을 중심으로

ㄱ.들어가며


현대의 이미지와 텍스트 속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Mad scinetist로, 그의 피조물은 머리에 나사를 낀체로 거대하며 느릿느릿한 몬스터로 이해된다. 주로 '매드사이언티스트'의 클리셰 탄생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허버트 조지 웰즈의 <모로 박사의 섬> 마지막으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 이 세개의 소설을 뽑는다. 이 세 소설은 각각 1818, 1886, 1896년에 초판 인쇄되었다. 고전을 경험하는 독자는 작품을 통해서 시대적 인식을 경험하고 나눠진 시대적 스펙트럼의 발달 과정을 인식할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이 세개의 소설 중, 1818년에 만들어진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시대적인 떨림, 기독교적 가치의 붕괴와 19세기 중반의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위한 관념적인 흔들림, 시대적인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메리 셸리가 탄생 시킨 '광기의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19세기 '과학만능주의'라는 주제에서 분석하는 것이 아닌 낭만주의 시대의 특수성에서 분석을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낭만주의 시대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 영국의 1대 낭만주의 시인 워드워즈를 통해서 진행하려고 한다.



ㄴ. 목차


1. <프랑켄슈타인>에 나타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갈등

2.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대한 정의와 인식

3. 낭만주의 시대의 배경

4. 워즈워드 시에 나타난 낭만주의 시대의 특징

5. 결론



1.<프랑켄슈타인>에서 나타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갈등


“I know that while you are pleased with yourself, you will think of us with affection, and we shall hear regularly from you. You must pardon me, if I regard any interruption in your correspondence as a proof that your other duties are equally neglected.”1)
 <Frankenstein> p.41

이 문장은 빅터의 아버지가 빅터에게 조언을 주는 문장이다.


The summer months passed while I was thus engaged, heart and soul, in one pursuit. 
 <Frankenstein> p.41

빅터의 아버지는 한가지 일에 몰두하는 아들을 그리 달갑게 보지 않았다. 


A human being in perfection ought always to preserve a calm and peaceful mind, and never to allow passion or a transitory desire to disturb his tranquillity.2)
 <Frankenstein> p.41

빅터가 생각하기에 '완벽한 인간'은 'A cam and peaceful mind'지향하고, 'to allow passion or a transitory desire'는 지양한다.


If the study to which you apply yourself has a tendency to weaken your affections, and to destroy your taste for those simple pleasures in which no alloy can possibly mix, then that study is certainly unlawful, that is to say, not befitting the human mind.
<Frankenstein> p.42

빅터는 어떤 한가지 일에 몰두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머지 것들을 소홀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Beautiful!—Great God!"
<Frankenstein> p.42

빅터가 프랑켄슈타인을 완성시키고 그의 미적인 모습에 찬양을 뱉었다.


이 문장들에서 빅터의 아버지와 빅터의 사상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빅터의 아버지는 '몰두'라는 쾌락 작용이 아닌 언제나 침착하고 욕망대로 행동하지 않는 전근대적 가치의 인간상을 가지고 있다. 반면 주인공도 그러한 인간상을 '올바른' 인간상으로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쾌락(passion, transitory desire)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를 한탄하면서 작업을 이어나간다. 필자는 주인공의 이러한 쾌락적 작업의 의지를 계몽주의와 과학만능운동, 오컬트 속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 낭만주의 시대의 특징들 속에서 탄생하였다고 생각하고 본문을 진행하겠다.



2.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정의와 인식


보편적 상식윤리가치관, 도덕성 등의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기 목표와 욕망만을 위하여 자신의 두뇌를 사용하는, 정신줄 놓은 과학자를 의미한다.
https://namu.wiki/w/%EB%A7%A4%EB%93%9C%20%EC%82%AC%EC%9D%B4%EC%96%B8%ED%8B%B0%EC%8A%A4%ED%8A%B8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클리셰의 원본으로 보이는<프랑켄슈타인>소설에서 빅터는 자신의 피조물을 창조할 때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조언은 애써 무시한 채 작업을 이어나간다. 


흥미롭게도 스타일즈에 따르면 “낭만주의자들은 천재성을 과학적 탐구를 넘어서는 신비한 현상으로 바라본다. . . . 빅토리아인들은 창조적 능력을 찬미하기 보다는 천재성을 병적인 것으로 여기며 중간자적인 사람을 진화론적 이상형으로 떠받들었다”(126).
실험실의 과학 혁명—빅토리아시대 소설에 나타난 ‘미친’과학자들의 실험실


그 이유는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이“아직 옥스퍼드 혹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연구되는 교과목이 아니었고 종종 독립적인 아마추어들이 추구하는 열정”(Postlethwaite 99) 정도로 인식되었고, 더군다나 대부분의 실험실은 어둡고, 황량한 모습으로 비쳐졌기 때문에
실험실의 과학 혁명—빅토리아시대 소설에 나타난 ‘미친’과학자들의 실험실

이 논문에 따르면 빅터와 지킬박사의 모습은, 음산하고 초록색 플라스크 병에 독극물이 담겨져 있는 모습과 테슬라 코일들이 있는 작업실, 그러한 아마추어들의 작업실의 전형적인 모습들의 클리셰를 본떠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필자는 다음 낭만주의 시들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이와는 다른 얘기를 하는 글을 가져오고 "아마추어들이 추구하는 열정"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 낭만주의 시에서 나타나는 관념의 움직임으로 빅터의 열정을 풀이하려고 한다.



3.낭만주의 시대 배경


18세기까지 유럽의 주류 예술이었던 바로크/로코코 양식은 왕족과 귀족의 취향에 맞게 장엄하고 화려한 표현을 추구하였다. 반면에 18세기부터 흔히 부르주아라고 일컫는 상공업으로 부를 쌓은 시민들(제 3계급)이 성장하였고 이들이 예술의 주요 소비층으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당시 제 3계급 대중들의 취향에 맞는 예술사조가 주류로 떠올랐는데, 이 때 유럽에서 유행했던 예술과 학문의 경향을 일컬어 낭만주의라고 한다.
 https://namu.wiki/w/%EB%82%AD%EB%A7%8C%EC%A3%BC%EC%9D%98

부를 쌓은 시민계급의 성장과 산업혁명의 여파로 예술(회화, 음악)의 주요 소비층이 귀족에서 부르주아지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현상을 비판했던 카를 마르크스의 저서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의 언급을 들어보자.


부르주아지는 출생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 봉건시대의 굴레를 무자비하게 뜯어내버렸다. 그리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벌거벗은 이기심과 감정 없는 '현금 지불'이라는 관계만이 남게 됐다.


이 언급을 통해서 낭만주의 시인들이 추구했던 시의 주제를 살펴볼 수 있다. 과거가 되버린 '종교적인 외경심, 기사도의 열정, 속물적인 감상주의'는 시인들이 추구해야 할 목표가 되었다. 이 주제의 영국 낭만주의의 출발이라고 평가되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를 살펴볼 것이다.



4.워즈워드의 시에서 나타난 낭만주의 시대의 특징


1780년대부터 1830년대까지의 낭만파 시인들은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이 불러온 사회적 정치적 풍경의 급격한 변화를 가깝게 목격한 최초의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근대문명의 전반적인 결함을 인식하고, 공적인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산업문명으로 사회가 발전해감에 따라 위협받거나 심지어 파괴되고 있다고 느껴지는 특정한 인간적 가치관이나, 능력이나, 에너지를 예술 속에서 구현하는 것을 추구했다."
19세기 영국 ‘문화 비평’의 낭만주의적 기원

"위협받거나 심지어 파괴되고 있다고 느껴지는 특정한 인간적 가치관이나, 능력이나, 에너지"라는 문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워즈워드의 시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의 발췌 부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late and soon,

Getting and spending, we lay waste out powers;

Little we see in Nature that is ours;

We have given our hearts away, a sordid boon!

This Sea that bares her bosom to the moon,

The winds that will be howling at all hours,

And are up-gathered now like sleeping flowers,

For this, for everything, we are out of tune;

It moves us not.--Great God! I'd rather be

A Pagan suckled in a creed outworn;

So might I, standing on this pleasant lea,

Have glimpses that would make me less forlorn;

Have sight of Proteus rising from the sea;

Or hear old Triton blow his wreathed horn.



워즈워드는 이 시에서 세속적 삶으로 인해 보지 못하는 '자연'을 한탄한다. 하지만 "내가 만약 이도교였다면"라고 가정을 하면서 '새로운 자연'을 보고 느낄 수 있을텐데 하고 마무리한다. 산업혁명과 계몽주의, 세속적 삶으로 인해 망가진 자연은 '죽은 자연'이다. 낭만주의 시인인 워즈워드가 이 '죽은 자연'을 '자연'으로 복귀하려 시도한다. 다음은 또 다른 워즈워드의 시 <Lines written in early spring>을 가져와보겠다.



I heard a thousand blended notes,

While in a grove I sate reclined,

In that sweet mood when pleasant thoughts

Bring sad thoughts to the mind.


To her fair works did Nature link

The human soul that through me ran;

And much it grieved my heart to think

What man has made of man.


Through primrose tufts, in that green bower,

The periwinkle trailed its wreaths;

And ’tis my faith that every flower

Enjoys the air it breathes.


The birds around me hopped and played,

Their thoughts I cannot measure:—

But the least motion which they made

It seemed a thrill of pleasure.


The budding twigs spread out their fan,

To catch the breezy air;

And I must think, do all I can,

That there was pleasure there.


If this belief from heaven be sent,

If such be Nature’s holy plan,

Have I not reason to lament

What man has made of man?



이 시에서 워즈워드는 정확히 자연을 보고 있다. 2연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연결보다 자연과 인간의 연결을 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이 시에서 오직 자연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한 짓'도 '신의 계시'라고 말함으로써 '인간과 인간의 연결'도 자연으로 보려고 한다. 여기서 <프랑켄슈타인>도 마찬가지이다. 빅터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인간과 인간의 연결'을 추구해야 됨을 조언한다. 하지만 빅터는 '자연과 인간'을 추구한다. '세속적 삶'에 대해서 다룬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는 <Lines written in early spring>으로, '세속적 삶'이 자연으로 바뀌는 낭만주의 시인들의 전개를 살펴보면 1대 낭만주의 시인인 워즈워드는 종교과 자연을 엮으며 시를 전개했다. 그는 종교시대를 다시 불러오려고 노력했지만 시들의 결과는 반대방향을 불러왔다. 자연을 예찬하면서 자연을 탄생하게 한, 하나님 또한 예찬하고, 그의 반대인 '세속적 삶'을 반대에 놓았지만 그 세속적 삶 또한 하나님의 계시라고 보면서 긍정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워즈워드의 시 속에서만 탄생한 것이 아니다. 다음은 블룸의 글을 불러오겠다. 



5.결론


낭만주의의 움직임은 자연에서 출발하여 상상력의 해방(때로는 내키지 않는 해방)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이었으며,  상상력의 해방은 주로 정죄적(淨罪的)인 성격,  즉 구원을 지향하고 사회적 자아를 파괴하는 성격을 띠었다.  .  .  .  의식(意識)을 강화 및 확장하고자 추구했지만,  그러한 추구는 의식을 좁혀서 오직 자아에 몰두하도록 만드는 망령의 그림자를 수반하였다.  (Bloom,  6)
윤효녕. (2002). “기쁨”에서 “아름다움”으로. 외국문학연구, (11), 321 page


블룸은 이러한 낭만주의 시의 움직임이 "의식을 좁혀서 오직 자아에 몰두하도록 만드는 망령의 그림자를 수반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시에서의 운동 뿐만 아니라 회화에서의 운동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의 인상주의 작가들 에두아르 모네와 끌로드 마네, 그리고 드가에서 탈인상주의 작가인 조르주 쇠라의 등장으로 고흐, 세잔, 고갱과 이에 이어 '자아에 몰두하도록 만드는' 오스트리아 출신 표현주의 작가들 코코슈카, 클림트, 쉴레의 등장은 블룸이 시에서 주장한 바와 틀리지 않다. 자연을 모방하던 인상주의 작가는 결국 '상상력의 해방, 사회적 자아를 파괴하는' 움직임인 탈인상주의로, '자아에 몰두하도록 만드는 망령의 그림자'인 표현주의로 전개되었다.

여기서 <프랑켄슈타인>을 불러와보자. '상상력의 해방'은 빅터가 창조주가 된 계기이고, 그로인해 빅터는 '사회적 자아의 파괴'와 '자아에 몰두'를 불러왔다. 

앞의 문장에서 빅터의 아버지는 사회적 자아를 파괴하지 말라고 빅터에게 조언했었다. 'a calm, peaceful mind'는 자아에 몰두, 상상력의 해방과는 정반대의 형상을 띄고있다.

필자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계몽주의와 과학만능운동, 오컬트 속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 낭만주의 시대의 특징들 속에서 탄생하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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