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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심이 Sep 17. 2024

아빠의 이야기 12

아빠의 인생 






산청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입사 후 첨으로 내 고향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객지 생활을 할 때 

기차나 고속버스가 대구 근교만 와도 가슴이 설레곤 했었는데 

이젠 그러한 설렘은 맛볼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서울에 장만하던 집은 준공이 되었고 전세를 줬다가 팔아버렸다. 


아마 아직 그 집을 팔지 않았더라면 경제적으로 엄청난 도움이 되었을 텐데. 


이래서 사람의 앞날은 모르는 것이라 한다. 


사람의 앞날을 훤히 꿰차고 있으면 사는 재미는 오히려 없으리라 생각해 본다. 


하루는 서울 집 관련 일로 서울로 가는 길에 엄청난 안개를 만났다. 


예전에 속초를 가던 길에 만난 안개로 가슴 졸인 적이 있었지만 

이번의 안개는 그 정도를 넘어서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앞 차의 미등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로 

여기저기 사고가 많아 견인차는 감당을 못할 정도였고 

나는 가까스로 사고를 면했으나 

내 옆 차선 주행하던 차는 

앞차를 추돌하는 사고까지 목전에서 일어났다. 


도로마다 사고로 인해 찌그러진 차와 다친 사람들이 길가에 앉아있었고 

마치 전쟁터 같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급기야 앞쪽 어딘가에는 엄청난 연쇄 추돌 사고로 차량 화재까지 겹쳐 

열명 이상 목숨을 잃는 큰 사고가 났고 

경찰은 사고 수습을 위해 그 구간의 고속도로를 전면 폐쇄하는 바람에 

우린 국도를 이용해 서울까지 올라 간 일도 있었다. 


그 후 지금도 안개가 자욱한 날은 왠지 무섭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대구에 와서 전셋집을 얻고선 산청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을 대구로 초청을 해서 일명 집들이란 것을 했다.


그날은 화투놀이를 좋아하던 직원들이 밤을 꼬박 새워 화투놀이를 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직원들은 산청 근무시절, 1박 2일로 바다낚시를 간 적이 있는데 

무더운 여름날 땀을 흘려가며 무거운 짐을 들고 

갯바위까지 도보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은 후 

낚시는 잠시뿐이고 바닥이 울퉁불퉁한 갯바위에 엉덩이 배긴다고 신발을 깔고 둘러앉아 

밤새 뜬눈으로 화투놀이를 즐기고선 

갯바위의 원적외선으로 피로한 줄도 모르겠다고 하던 사람들이다. 


상인동에 집을 사서 뿌리를 내리고선 37개월 간의 나의 첫 고향땅 근무는 

끝이 나고 안동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안동에서의 근무기간은 6년 정도 되었지만 

반은 주말부부로 반은 가족과 같이 생활했다. 


안동으로 큰 녀석은 전학하여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단지 내 친구들과 딱지놀이든 구슬놀이든 간에 항상 잃고 왔으며 

본인보다 저학년에게도 당하고 오는 순둥이였다. 


작은 녀석은 교회 부설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한마디로 똑순이었다. 


어린 시절 우는 소리마저도 앙칼졌고 

집 주위에서 또래들과 소꿉놀이할 때 목소리도 제일 크고 또렷했다. 


큰 녀석이던 작은 녀석이던 귀여웠던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에 전기가 통하 듯이 뭔가 짜릿함이 전해온다. 








안동에서의 제법 긴 시간을 접고 다시 대구로 와서 정년퇴임까지는 대구를 떠나질 않았다. 


그동안 사회성이 떨어진 큰 녀석의 친구가 되어주라는 의미에서 반려견도 한 마리 키워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상인동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정년퇴임 몇 해 전에는 경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마누라의 퇴임 후 공기 좋은 곳에서 살자는 말에 선뜻 그렇게 하자고 했고 마누라는 곧장 이사 갈 집을 샀다. 


살던 집도 팔리고 

경산으로 이사를 하던 날 

난 휴가를 내고서 이삿짐센터에 서 오신 분들이 짐을 싸는 동안 

반려견인 초롱이 녀석이 설치니 

안고 있느라 진땀을 뺄 수밖에 없었다. 


요즘 흔히 나이가 들어 


“쓸모가 없어지면 이사할 때 버리고 갈지 모르니 반려견이라도 안고 있으면 떼놓고 가지 않는다."는 


농담을 한다.


어쩌면 이삿짐 센터 직원들도 그런 시각으로 날 보았을런지 모른다. 


아직은 경제 활동을 할 만한 나이로 보이는 사람이 주말도 아닌 중에 출근을 않고 개만 안고 있었으니... 


이삿짐이 다 실리고 출발을 한다고 이사 갈 집 위치를 묻는다. 


난 집을 살 때 관여를 안 했기 때문에 전혀 모르는 상태라 마누라에게 물어본다고 하니 

이삿짐 센터 직원들은 저 사람이 과연 이 집 식구 맞는가 하는 눈빛이다. 


마누라는 이사 갈 집에 잔금 관계로 먼저 출발한지라 전화로 위치를 받았다. 


이사 온 집에 짐을 정리하던 중 오해가 한 번 더 생길 일이 있었다. 


에어콘을 설치하는 사람이 왔는데 

에어콘이 거실용과 침실용이 있어 

침실용은 어느 방에 설치하냐고 묻길래 

마침 마누라가 오지 않았기에 

또 전화로 물어보니 

딸 애 방에 설치하면 된다고 한다. 


“마누라가 딸애 방에 설치하면 된다고 하는데요.” 


“따님 방이 어딥니까?” 


“...” 


난 물론 어느 것이 딸 애 방인지 모른다. 


한 번 더 이삿짐 센터 직원들과 에어콘 설치 기사까지 날 쳐다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퇴직을 하고 새로이 자리 잡은 직장과는 출퇴근거리가 여간 멀지 않아 불편함은 있어도 

공기도 맑고 물도 좋고, 운동하기도 좋은지라 살기에는 나름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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