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님들의 생리통.
나는 여자들 틈 속에서 사는 덩치 큰 남자랍니다. 재작년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무려 네 명의 여자들 틈 속에 살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여성적 감성이 풍부해지더랍니다.
각설하고 그러다 보니 여자의 몸으로 사는 고통을 세심하게 봅니다. 아내는 유독 생리통이 심합니다. 생리주기만 되면 나 조차도 생리통에 감염되어 집에서 기침조차 크게 하지 못합니다. 고통을 대신해 주고 싶을 정도랍니다. 아, 내가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지요. 그렇게 아내의 일주일치 고통을 접하다 보니 세상여자들에 대한 눈치도 빨라졌지요.
제가 영업 현장에서 남다르게 실력을 드높일 때 대부분의 고객은 비교적 교육 수준 높은 여성들이었지요. 자주 가도 반갑게 맞아주는 고객 여성님이 갑자기 낯설게 대해주면 아, 생리를 하는구나, 하고 이해를 했을 정도니까요. 대부분 제 생각이 맞았지요.
아내의 생리통이 유독 심한데 두 딸들도 아내를 닮아 생리통을 아주 심하게 겪는 걸 보면 참 대신 아파주지 못하는 남편의 한계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또 딸들이 아내와 똑같이 신경이 예민해지고 고통스러워하는 걸 나는 옆에서 감지하면서도 모르는 체 지나갑니다. 그때마다 남자로 태어난 게 참 다행이다는 안도를 나도 모르게 합니다. 사십 년 동안, 매달 겪어야 하는 일이니...... 정말 다행인 것이지요.
자주는 아니지만 2012년 어느 주기에 아내와 예쁜 딸의 생리주기가 겹쳤었었지요. 언젠가는 세 여자가 동시주기에 겹친 때도 있었지요. 그때 저는 완전 몸을 낮추어야 하고 조신무드로 돌입해야 하지요. 정말 생리통이 심한 아내와 예쁜 딸의 주기가 겹쳤었지요. 그때는 둘 다 신경이 예민한 데다 생리통까지 똑같이 덮치니 의욕들도 저하되어 가족 구성원들에게 조차도 배려는커녕 귀찮아 하기 일쑤였지요. 사실 생리가 아니어도 아내는 많이 지쳐 있었지요. 내 불찰에서 도래한 궁색한 살림에 아이들 교육시키느라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심정의 삶이었지요. 어느 것 하나 펑크 나면 줄줄이 균형이 무너질 것 같은 쳐지였을 때니까요. 그런 상태에서 생리를 맞았고 또 예민한 막내와 겹치다 보니 그만 충돌이 생겼어요. 평소 같았으면 웃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부딧친거였어요. 예쁜 딸이 무얼 요구했는데 아내는 그만 깜빡하고 무시를 해 버렸고 예쁜 딸을 그게 서운해서 토라져 자기 방으로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렸어요. 그때 생리통에 지치고 가족들 뒷바라지에 지친 아내의 어깨가 너무나 안쓰럽게 보였어요. 가슴이 갑자기 먹먹해지는 거였어요. 갑자기 무기력하게 보이는 모습도 층격처럼 아팠고요.
예쁜 딸방을 들어가니 예쁜 딸도 삐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어요. 먼저 말없이 다가가 가볍고도 따듯하게 예쁜 딸을 얼마동안 안아 주었어요. 그러고 나서 말해 주었어요.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빠가 요즈음 엄마에게 잘 주지도 못하는데 너희들 조차 엄마에게 마구 짜증을 내면 엄만 얼마나 힘들겠니? 아빠 마음이 무너지듯 아프다.
내가 니 기분 다 이해하고 사랑하니 가서 엄마마음 풀어주면 안 되겠니?
녀석의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어요. 그리고 을먹이며 아빠 알았어요, 하고 아내에게로 갔어요.
녀석도 그때 아빠의 심정을 다 이해하는 것 같았어요. 아내를 얼싸안고 용서를 빌었으니까요.
그날 저도 혼자 이불속에서 혼자 울었어요. 가족 구성원들의 피할 수 없는 고통과 내가 피치 못할 인위적 고통을 안겨준 책임 때문이었지요.
가족 구성원중에 하나만 인상을 찌푸려도 분위기가 가라앉는데 둘씩이나 찌푸리니 무거움이 낮게 드리운 기분이지요. 그럴 때 풀어가는 방법은 이해, 긍정 배려....... 그리고 빠른 소통이지요. 특히 안방마님의 기분은 가족들에게 아주 절대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게 생리통이전에 나의 불찰에서 유래된 것이기에 유독 마음이 무거웠지요.
2012년에 쓴 우리 집 여자들의 생리통을 이렇게 올려봅니다. 고통은 너무나 리얼한데 리얼하게 표현을 못한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