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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살공주 Sep 14. 2024

뚝딱이 요리사의 인생요리 , 맛 보실까요?

뚝딱이 요리의 개똥철학(?)


어릴 때부터 나는 요리를 무척 좋아 했었다. 특히 요리의 응용력이 좋아서 재료만 대충 갖춰져 있어도 결코 실망 따위를 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감자 요리, 버섯요리, 매운탕, 찌개 등은 항상 제 맛을 살려서 끓여 내는데 자신이 있었으며 지금도 김치와 봄나물을 감칠맛 나게 무쳐놓는 것은 다른 여자나 남자들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이렇게 추운 요즈음 큰딸이 아빠 비지장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라면은 무려 방법만으로도 십여가지 요리를 하는데 우리 딸들은 지금도 아빠의 라면을 가장 좋아한다. 케익도 멋지게 장식까지 만들 수 있으며 버섯 피자 등은 가끔 식구들 생일에 실력 발휘를 한다. 냄새 안나는 수육은 감히 짱이다. 이렇게 추운날 식구들이 모두 교회를 가고나면 나는 마치 의식을 거행하듯 엄숙하고도 정성스럽게 칼국수를 삶아서 갖은 맛을 낸다. 하느님께 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가족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내 칼국수요리는 하느님도 홀딱 반할 정도는 된다.

스물두 살 때 농촌부락 (4-H)청소년회, 회장을 맡아 이끌어 가면서 생애에 가장 기막힌 요리를 해 보았다. 앞으로도 내게는 전무 후무한 요리로 기록 될 소지가 농후해서 가끔 회상을 한다. "자, 같이 드시며 끝까지 볼까요. 절대로 실망하지 않습니다. 기절과 감동맛을 보여드리지요."  그리고 혼자 실죽 웃는다.

아마도 싱그런 바람이 불어오는 유월의 후반기였던 것 같았다. 시골 면단위에서 순수한 농업을 꿈꾸는 청소년들(4-H 회원들) 끼리 모여서 호연지기와 이상 실현을 도모하는 행사로 2박3일, 캠프회가 열렸었다. 삼탄강(영화 박하사탕 마지막 장면을 찍은 곳) 유원지에서 이박삼일로 짜여지고 남녀 혼성으로 사십여명 정도가 모여서 행사가 꾸며지는 의미 넘치는 행사였다. 

그 행사에서 나는 정말이지 잊지 못할 요리의 재료와 기상천외한 맛으로 절반에 인원을 감동과 기절에 가까울 정도로 뚜렷한 요리를 해 냈었다. 내가 식사 당번으로 배정된 것은 행사 이틀째 점심이었고 내가 자진했던 요리는 소시지를 곁들인 무우 찌개였다. 나 말고도 여자 세 명과 남자 한명이 더 있었는데 담당들이 배정 되어있어 자신의 분야만 확실하게 하면 되는 거였다. 사실 나는 당번이 되기를 바랬던 사람이라서 그날 새벽부터 일어나 신나는 맛을 고민했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시간 강 쪽을 바라보며 답배를 피우는데 타지에서 온 듯한 남자들 서너명이 투망으로 피라미를 많이 잡으며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소주 됫병 값 정도를 가지고 그분들에게 피라미 두 사발 만 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두 사발 정도를 나눠주고 떠났다. 

나는 피라미 무우찌개를 구상하며 피라미가 많이 들어간다고 연신 광고를 했다. 모두들 은근히 피라미를 기대하는 눈치였고 나는 정말이지 온갖 정성을 다 들여서 찌개를 준비해 나갔다. 먼저 양은솥에 무우를 썰어넣고 간장과 기름에 한동안 볶았고 그 다음 물을 붓고 소시지와 손질한 피라미를 썰어 넣었다. 오늘 나만의 요리 비법도 썰어 넣었다. 고추장을 풀고 풋고추를 숭 숭 썰고 양파도 썰었으며 각종 양념을 풀어놓으며 정말이지 성스런 요리를 했다. 

유월의 뙤약볕은 뜨겁게 모래사장을 달구고 있었고 장작불을 지피며 하는 요리였기에 이마에 땀이 비오듯 흘러 내렸다. 나는 그다지 개의치 않고 연신 호호 불어가며 맛과 간을 맞췄다. 마치 요리에 무슨 기를 불어넣듯 진지했으며 찌개 맛이 최고이기를 엄숙하게 기도까지 다 하고 말았다. 

양은 솥 가득히 끓어오르는 저 붉고 먹음직스런 찌개를 보며 남에게 무엇인가 해 주기위해 정성을 들이는 것도 커다란 행복임을 느꼈다. 

이윽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피라미 소문 덕분인지 아니면 일품의 맛 때문인지 찌개는 그만 조금 모자라고 말았다. 밥도 국도 남았고 반찬도 남았는데 찌개만은 예외였다. 들과 강에서 먹는 음식은 자유로움과 주변 경관의 정취로 맛이 유별남을 알았지만 분명 예외였다. 나는 모자라 먹어 보지도 못했지만 대단히 흡족했으며 오후의 일정들이 내게는 깨소금 같은 시간이었다. 오늘 자정에 품평회를 해 볼 생각이었다. 대단히 경건하고 엄숙하고 감동의 요리였기 때문에 평가를 받고 싶었다.

드디어 하루를 평가하는 평가회도 끝날 즈음이었다. 밤 열두시가 가까워져오고 있는 시간이었다. 구슬픈 소쩍새 울음소리 먼데서 들리고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일어섰다. 

"오늘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졸린 사십 명의 눈초리가 내게 쏠렸다. 

"저는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요. 오늘 점심찌개 감동 하신 분 박수 좀 쳐주세요."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고맙습니다. 오늘의 기막힌 재료를 공개하겠습니다." 

나는 숨겨 두었던 증거품인 뱀의 머리와 꼬리를 들어 보여주었다. 다들 토끼눈 이었지만 그래도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에이, 그래도 숫 갈질 하다보면 대번에 눈치를 챌 텐데요?" 

"그래서 삼 센치 정도로 자르고 그 자른 토막들을 마치 장작 패듯이 사등분으로 갈라서 넣었기 때문에 나도 피라미와 구분을 못했는데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강가를 산보하다가 한 오십 센치 되는 이놈을 붙잡아 숨겨 두었었지요.“ 

“맛이 없었으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재미있다는 표정의 남자들이었다. 

남자들은 더러 낄낄거리며 어쩐지 맛이 이상하더라, 를 연발했지만 절반 인원의 여자들은 갑자기 증오의 눈빛과 함께 뱀찌개 식사 후 열두시간이 다 되어 감에도 풀밭으로 뛰어나가 몆몆은 토악 질을 하는 거였다. 적당히 즐기려던 나는 갑자기 죄책감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엎질러진물 이었고 여기저기에서 켁, 켁 소리가 고요한 여름밤을 장식하고 있었다. 원시인, 미친놈, 갖은 욕설들도 간간히 내 귀에 들려오고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던 나는 술을 병 채로 입에 대고 마시며 속죄처럼 잠들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시간부터 행사가 종료 때 까지 나를 야만인 대하듯 하며 눈길조차 주지 않는 여자들도 있었다. 정말이지 그 정도로 여파가 클지 몰랐고 워낙에 장난끼가 많았던 청소년 시절 아닌가. 훗날 그 뱀고기를 먹은 여자들을 만났는데 좋은 추억이라고, 그때 아니었으면 뱀 고기를 언제 먹어 보냐며 신나게 웃는 게 아닌가. 그 사실을 확인하면서 나는 그때의 요리가 생애에 최고였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지나가고 나니까 모두들 그때 그 찌개가 맛있던 모양이었다. 


그 사건이후에 편해 진 것은 어느 모임이고 식사당번으로 추대된 적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그래도 딸들이 크면서 자주 요리를 합니다. 지금도 뚝딱이 요리사입니다. 음식에 궁합을 잘 알아서 냉장고 남은 바찬으로도 뚝딱 해 내는 솜씨가 있습니다. 다 큰 딸들이 가끔 제 요리를 찾기도 합니다. 요즈음 뚝딱 해낼 수 있는것은 참치를 볶은 덧밥 입니다. 그러나 전국을 다니며 장사를 하는 지금은 손을 놓고 있습니다. 너무 바쁘다 보니 귀차니즘에 빠져있기도 하고요. 갑자기 한파가 쎄게 내습을 했네요. 그래도 딸과 아내를 위해서 가끔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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