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박찌개
모두에게 소울푸드 하나쯤은 있다. 나에게는 애호박찌개가 그렇다. 멸치와 다시마로 낸 육수에 고추장을 풀고, 양파와 애호박을 한 움큼 썰어 넣어 한참을 끓이면, 걸쭉한 국물이 우러나와 들큼하면서도 오묘한 감칠맛을 내는 애호박찌개. 그리고 이 애호박찌개를 떠올리면 함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부산으로 시집간 우리 막내고모다.
막내고모는 형제자매가 없어 허전했던 나의 유년 시절을 사소한 농담과 짓궂은 장난으로 따뜻하게 채워준 사람이었다. 때로는 누나처럼, 때로는 맞벌이로 바빴던 부모님을 대신해 엄마처럼 빈자리를 메워주곤 했다. 평생 나와 티격태격하며 함께 살 것만 같았는데. 고모는 회사 직원의 소개로 지금의 고모부를 만나 결혼했고, 고모부의 가족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고모에게 부산 시집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고모는 각종 제사를 도맡아야 했고, 매주 주말마다 왕복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요양원으로 도시락을 싸서 시어머니를 찾아봬야 했다. 효도는 셀프라는 말도 무색할 만큼. 그런 막내고모의 하나뿐인 엄마이자 나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날, 장례식장에 찾아온 시누이들은 고모가 남편을 찬바닥에 이불도 없이 재운다며 구박했고, 고모는 서러움에 하염없이 울었다.
그런 막내고모의 눈물과 애정과 사랑이 모두 담긴 음식이 바로 애호박 찌개이다. 어릴 때부터 입맛이 없다 하면 고모는 “그럼 애호박 찌개 끓여줄까?”라고 물었고, 나는 냉큼 “너무 좋지!”라고 대답하곤 했다. 고모가 부산에 내려간 이후로, 고모의 애호박 찌개는 쉽사리 먹기 힘든 음식이 되어버렸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고모는 가끔 직접 끓인 애호박 찌개를 소분해 택배로 보내준다. 나는 “그렇게 많이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라고 전화기 너머로 손사래를 치면서도,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는다.
그렇게 고모가 보내준 애호박 찌개를 먹다가, 문득 고모가 그리워 시를 쓴 적이 있다. 시를 다 쓰고 나서도 찌개는 여전히 따뜻했다. 무릇 사랑과 애정이 담긴 음식의 온기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애호박찌개
휘경동 골목길
비만 오면 물이 고이는 웅덩이
실수로 첨벙하고 밟고 나면,
헝겊으로 기워 만든 가판대 위
손 때 묻은 다라에 담긴
애호박이 퐁당하고 눈에 들어온다.
길쭉하니 못생긴
고향 촌바닥 샛길을 닮은
그 애호박을 두 개 사서
고추장찌개를 짜글하게 끓이고 나니,
막내 고모 시집가기 얼마 전,
허전한 마음에 그 시큰했던 노을이
창문에 내려앉아 있다.
그 노을이
눌어붙은 양은 냄비 가장자리를 타고 내려와서는
타향살이 쓸쓸함과 어우러져 맛을 내는
초저녁 애호박 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