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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교사는 괴로워!

by 커리어걸즈

사립 고등학교를 합격한 순간부터 첫 일 년은 내리막길이었다. 1월에 합격 통보를 받고, 3월부터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학부 졸업, 대학교 기숙사 퇴소, 이사 등 많은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학교가 처음이다 보니 모든 일이 낯설고 어려웠다. 첫 1-2년 동안 겪었던 일화다.


신입 선생님의 암흑기

2월 신학기 준비기간부터 학교로 출근했다. 업무 분장이 이 시기에 나오고, 학교에 오래 근무한 선배 교사는 분주히 신학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큰 교무실에서 멀뚱멀뚱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100-200개 쌓여가는 메신저를 정신없이 누르고 참조 파일을 누르며 담임 업무의 개념을 아주 느리게 배워갔다.


교장, 교감과의 신규 교사 대면식에서 분명 ‘멘토 교사’가 학교 생활의 기본을 잘 지도해줄 거라 약속했다. "혹시 제 멘토 교사는 어떤 선생님인가요"라는 제 질문에 선배 교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저희한테 편하게 물어보세요."라고 답변했다. 그렇습니다. 맨땅에 해딩으로 시작한 교직 생활이었다.


옆자리 선배 교사가 저에게 담임 업무에 필요한 zip 파일을 쿨(메신저)로 보내고 쿨하게 퇴근했다. 파일 하나 하나를 열며 ‘자리표 만들기’, ‘명렬표 출력’, ‘조퇴증 만들기’ 등 처음 보는 자료의 홍수 속에 멈춰있었다. 외롭고 고된 시간들이었다.


사립학교라 이미 동료 교사들 간 라포는 10-20년 동안 쌓인 상황이었다. 나는 이 학교 졸업생도 아닌 외부인 출신이었다. 한 학급에 30명 남짓의 학생들이 있는 큰 학교이다 보니 선생님들의 수도 100명이 넘어간다. 선생님들 성함과 얼굴을 매칭하고, 업무 하나 하나를 배웠다.


신학기 준비기간 동안에는 밤 7시까지 학교에 남았다. 대부분 3-4시에 퇴근하고 교무실에 홀로 남았다. 신입생 자료 제작으로 늦게까지 남았던 교무부에 한 선생님은 창의부에 홀로 남은 나를 보며 "쌤은 학교 일을 잘 모르나 보네요?"라고 다른 선생님에게 말했다. 그 말이 들렸다.


정말인데요? 학교 일 잘 모른다. 초임이었을 때의 기억은 물음표로 시작해서 느낌표로 끝난다. 그만큼 처음이고 모르는 일 투성이어서 혼란스러웠다. 힘들긴 했지만, 이 시기가 있었기에 후배 교사가 생긴다면 조금은 더 든든한 멘토교사가 되어줄 수 있다. 신규 교사의 암흑기를 이븐하게 겪어봤는걸요? 이 또한 교사로서의 자아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소중한 경험이다.



학교 일은 느슨한 듯 체계적으로

신입은 학교에서 나이도 경력도 가장 적은 교사다. 그래서 선생님들 간 관계를 살펴가며 업무에 임해야 한다.


교사는 하루에 무수히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쿨 메신저, 담임 반 학부모로부터의 연락, 타 부서로부터의 전화 등 많은 연락을 주고받으며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한다. 예를 들어, 학부모가 선택과목 변동 수요조사에 대한 질문을 하면 학생의 내신, 학교 생활, 출결 등을 감안해 답변을 조정해야 한다. 또한, 교내에 수요조사 결과를 공개하면 안된다는 쿨 메신저 공지가 있으면 이를 염두에 두고 교육과정계(선택과목 담당자)에게 학부모 문의 내용을 짧고 간결하게 공유해야 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 3차 함수 그래프를 그리며 업무 간 연계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업무에 임해야 한다. "학교 일은 빨리 하면 안 된다."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담임 선생님들! 급식 희망 조사를 이번주 금요일까지 받습니다. 설문지를 아이들에게 배포해주세요."라는 쿨이 월요일날 오면 월요일날 당일에는 해당 업무를 처리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갑자기 설문 내용에 변경사항이 생길 수도 있고, 추가 공지가 발생할 수 있다. 설문에 학부모 서명란이 있어서 미리 받아두었는데 알고보니 학생 대상 설문이어서 "학부모 서명은 따로 받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라는 변경사항이 생기는 일이 다반사다. 물론, 학생의 점수 서명을 받는 업무는 학교의 일정을 칼같이 지켜야 한다. 업무 담당자, 일의 성격, 시기 등을 고려해 업무의 처리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합니다.


교사 간 업무에 대한 컨펌도 여러 비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여러 차례 이루어진다. 같은 과 동료 교사를 복도에 우연히 만났다. "쌤! 우리 수행평가 발표 언제 하면 좋을까요?"라고 자연스럽게 수행평가에 대한 말을 꺼내면 "5월 둘 째 주 즈음에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확인하고 연락 드리겠습니다."라고 두루뭉실하게 답하는 게 안전하다. 수행평가 같이 교과 내에 협업이 필요한 업무는 변수가 많고 모든 선생님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쿨 메신저로 수행평가 진행 기간에 대한 전체적인 동의를 구하고 수행평가 서식 샘플을 제작해 교사들에게 복사본으로 공유한다. 이후 수행평가 안내문을 제작해 교과 회의 때 최종 일정 및 안내 사항을 최종 컨펌한다. 수행평가라는 구체적인 앤드게임은 있지만, 그 과정에서 동료들과의 기묘한 협업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파워J인 나는 미리미리 계획하고 추진하는 성향이지만 P형인 동료교사들은 J의 추진력을 부담스러워할 수 있어 구두로 한 번, 메신저로 한 번, 천천히 업무에 대한 순서를 안내함으로써 일을 느긋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게 키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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