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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교사의 행복

by 커리어걸즈

이전 에피소드에서는 교사의 비애만 읊어 교직생활의 어둠을 이야기했다. 이번 편에서는 교직 생활의 빛을 공개한다.


띵동! 장미허브 배달 왔어요

우당탕탕 1년차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학급 과제로 1학기 동안 식물을 키워본 적이 있었고, 그 기억을 되살려 고등학교 1인1역으로 ‘식물지기’라는 역을 만들었다. 동네 꽃가게에서 파는 장미허브를 사비로 구입해 식물지기에게 맡겼다. 역시 자리는 사람을 만든다. 역할을 맡은 학생은 해가 뜨는 각도에 맞춰 화분 위치를 움직이는 건 기본이고, 식물의 바이오 리듬이 좋지 않을 때는 영양제를 꽂아주는 섬세함도 보였다. 당시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해 만든 학급 다이어리에 담당자가 장미허브 잎사귀를 오려 붙일 정도로 역할 만족도가 높았다. 그렇게 작은 화분 속 장미허브는 2학기 말 우람한 밀림이 되었다. 종업식날 2학년으로 진급하는 식물지기에게 종업 선물로 장미허브를 선물로 간직하라고 했다. 신학기가 되었고, 운 좋게도 작년과 같은 반 담임을 맡게 되었다. 3월 입학식 날, 식물지기가 반 앞에 못 보던 화분에 담긴 장미허브를 갖고 왔다. 기존 식물에 있던 잎사귀를 다른 화분에 키워 갖고 온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돌아온 장미허브가 초임 때만 느낄 수 있는 싱그러운 추억으로 간직되었다.


다시 만난 병아리들

같은 1학년을 맡아도 학급의 바이브가 매년 다르다. 2년차 때 맡은 1학년 아이들은 극강의 ENFP였다. 초등 교실에서 볼 법한 왕성한 에너지로 학급 이벤트를 사랑하고 즐기는 아이들이었다. 다사다난한 1년이 지나고 아이들이 2학년으로 올라갔고 스승의 날이 찾아왔다. 벚꽃이 질 무렵이었고, 1학년 때 학급 임원을 맡은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하듯 도서관 앞에서 만나자고 연락했고,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장소로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작년 반 아이들이 벚꽃 나무 아래에서 밝게 웃으며 모여 있었다. 2학년이 되어도 저를 기억해준 벚꽃같은 병아리들이 눈에 선하다.


의외의 편지

예전에 1학년에서 7개 반의 수업을 맡아 아이들 이름과 얼굴 매칭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존재감을 뿜뿜 내뿜는 아이들이 있었다. 매 수업마다 졸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다. 그들을 초롱 학생이라 부르곤 했다. 인사성도 밝고 미소도 잘 짓는 학생이어 늘 눈에 밟혔다. 교과로 만난 학생들은 교과 수업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작년 스승의 날은 동아리 시간이 있는 금요일이었다. 담임 반 아이들에게 편지와 축하 인사를 받고 동아리 지도에 집중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초롱 학생이 동아리 교실로 들어와 쑥쓰러워하며 편지를 건냈다. 평소 수업을 재미있게 듣고 있고 늘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신학기 피로가 한번에 풀렸다. 초롱 학생처럼 스승의 날에 편지를 쓰는 아이들이 많았다. 선생님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학생들이 선물처럼 소중했다. 초롱 학생은 2학기 말에도 반짝거렸다. 겨울 방학식 날 메신저로 성적이 많이 올랐고 좋은 수업을 준비해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메세지를 보냈다. 학기 초와 말에 감사하다는 연락을 한 학생은 초롱 학생이 처음이었다. 메세지를 쓰는 것 자체는 10분도 걸리지 않지만 바쁜 와중에 교과 선생님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마음은 평생 간직될 것이다.

제자들로부터 받은 응원과 존경이 나의 에너자이저였다. 좋은 교사가 되도록 꾸준히 배움을 놓지 않고 학생들에게도 좋은 기운을 많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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