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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시유 Sep 17. 2024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고양이

"어? 목에 빨간 망토를 두르고 있네!"


어디선가 슬그머니 나타난 이 고양이의 목엔 빨간색 반다나가 매여있었다. 그 빨간 반다나 때문에 난 이 정체불명의 고양이를 빨간 망토 '차차'라 부르기 시작했다. 앞으로 두 달간 살게 된 발리 집으로 이사 간 첫 날이었다.


차차의 코 왼쪽 부근엔 마치 뺑덕어멈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점이 있었는데 그 점 때문인지 차차는 어딘지 모르게 못생겨 보였다.



내 평생 이렇게 못생긴 고양이는 처음일세


차차는 귀여운 외모를 타고나진 않았지만 성격이 매우 좋았다.


내가 명상 수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마중을 나와 '어디 갔다 이제 와?' 하며 '씩' 웃어 보이곤 했는데 하마터면 내가 뱃속에서부터 키운 고양이인줄 나도 착각했을 정도였다.


차차는 종종 내가 방에서 온라인 코칭을 진행하고 있을 때면 내 무릎 위로 올라와 눕곤 했다. 그리곤 이내 그르렁그르렁 하는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그르렁 소리와 함께 몸에서 내던 진동은 강한 치유의 파동을 담고 있었다. 그렇게 내 무릎 위에서 곯아떨어진 차차를 보며 차차가 깨지않도록 작게 속삭였다.


'천사가 따로 없네! 어쩜 이리 사랑스러울까?'


다리는 저리는데 움직일 수가 없네


처음 그 집을 얻었을 땐 그 큰 집에 혼자 살면 좀 적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차차 덕분에 나의 발리에서의 생활은 활기가 넘쳤다.


밖에 나갔다가도 차차가 떠올라 서둘러 돌아오기 일쑤였다. 차차의 못생긴 얼굴이 이상하게 자꾸만 보고 싶어졌다. 보면 볼수록 묘한 매력이 있었다.


하루는 내담자분들과 늦게까지 카톡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마지막 내담자분과 상담을 마치고 나니 이미 날은 저물어 있었다. 나는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에서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제서야 텅빈 집의 적막함을 알아차렸다. 나는 다급히 차차를 불렀다.


"차차야! 어디 있어?'


잠시 후 차차가 내 목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나타났다. (여전히 목에 빨간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차차야! 와줬구나! 차차 완전 슈퍼맨~ 아니지! 슈퍼캣~"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슈퍼맨~처럼 나타나 주는 차차덕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디가드가 생긴 기분이 들었다.


얼마 후 친구들과 새해 연휴를 보내기 위해 며칠간 집을 비우게 되었다. 새해는 떠들썩했다. 우붓에서는 조용히 개인 수행을 하거나 내담자분들의 몸, 마음 청소를 도우며 지냈는데 오랜만에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떠들다 보니 도파민을 비롯한 각종 호르몬의 분비가 대량 분비되는것이 느껴졌다.


발리에서의 새해 첫날


그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던지 차차를 까마득히 잊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 우리 차차!!"


새해 연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일단 차차부터 찾았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차차를 발견했다.


집을 며칠간 비워놓느라 평소 활짝 열어놓던 방문과 창문을 단단히 잠가놓은 탓에 차차가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던 것이다.


하필이면 어제 많은 비가 내렸었는데.... 만약 밤새 발코니에 있었다면 몹시 추웠을 것이다.


그나저나 늘 활짝 열려있던 창문이 다 닫혀있었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발코니에서 발견된 차차


발코니에 누워있던 차차가 나를보자 갑자기 '에취!' 하며 재채기를 했다. 그러더니 1층 마당으로 내려가 마당 한켠에 토를 하기 시작했다.


"차차야 왜 그래. 대체 무슨 일이야?"


차차가 괜찮은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차차는 애타게 부르는 나의 목소리에도 뒤돌아보지 않고 마당을 가로질러 어딘가로 급히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 토를 하며 비틀거리던 차차의 뒷모습을 보자 갑자기 9년 전 이곳 발리에서 있었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9년 전)


치유의 샘물이라 불리는 발리의 어느 사원에서 정화 의식을 끝낸 후 친구들과 함께 다시 우붓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어디선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린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을 보자 한 지점을 빙빙 돌고 있던 까마귀들이 눈에 들어왔다. 까마귀들이 빙빙 돌고있던 바로 아래에 있던 진흙더미들을 걷어내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서 울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의 몸엔 어찌 된 영문인지 작은 가시들이 잔뜩 박혀있었다.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미의 흔적은 없었다. 너무 약한 몸으로 태어나 어미로부터 버려진 걸까?


벵갈리 구조 당시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온 뒤 나는 이 새끼고양이가 입양될 때까지 임시보호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곤 고양이에게 '벵갈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벵갈 호랑이처럼 건강하게 자라라는 뜻에서 붙여준 이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벵갈리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작고 귀여운 것이 꼬물딱 거리며 온 집안을 돌아다니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귀염뽀짝한 벵갈리


하지만 벵갈리는 며칠 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밤이었다. 난 벵갈리의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벵갈리는 바닥에 토를 하고 있었다. 동물병원이 모두 닫혀있던 새벽이라 나는 몹시 당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벵갈리의 그 작은 몸에서 뛰던 맥박이 더 이상 뛰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맥박이 뛰지 않는 벵갈리를 품에 안고 엉엉 울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벵갈리를 뒷마당에 묻어주었다.


벵갈리의 무덤


마당에 토를 하며 걸어가는 차차의 모습을 보니 9년 전에 죽은 벵갈리가 떠올랐다. 혹시 벵갈리가 다시 환생한 걸까?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리 성격 좋은 고양이라지만 처음 만난 날 내 무릎에 올라와 잠을 자지 않나... 차차는 나를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행동했었다. 차차 목의 목걸이를 보아하니 가족이 있는것이 분명한데...  차차는 내가 그 집에 이사간 그날부터 우리집에서 거의 살다싶이 지냈었다.


고양이 목숨은 아홉 개(A cat has nine lives)라는 영어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의 기원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고대 이집트의 엔네아드(Ennead) 아홉 신' 설이다.


엔네아드 아홉 신 중에 창조신이자 태양의 신인 아톰(Atum)이 있다. 아톰은 여덟 개의 또 다른 신을 낳았는데 공기의 신 슈(Shu), 물의 여신 테프누트(Tefnut), 땅의 신 게브(Geb), 하늘의 여신 누트(Nuit), 풍요의 신 오시리스(Osiris), 어머니의 신 이시스(Isis), 전쟁의 신 세트(Seth), 보호의 여신 테프티스(Nepthys)이다.


그리고 태양신 아톰은 사후세계로 여정을 떠날때마다 고양이로 변장을 해서 갔다고 알려져있다. 아톰은 여덟 개의 또 다른 신을 낳았기 때문에 총 아홉 개의 생명을 상징하며 이것으로인해 고양이의 생명은 아홉 개로 알려지게 된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고대 이집트의 아홉 신


고양이 환생에 대해 다룬 영화도 있다. 영화 '10 라이브즈'에선 주인공 고양이가 여러번 죽고 환생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고양이는 환생, 즉 또 한 번의 기회를 통해 자신의 모순점을 조금씩 잡아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삶인 아홉 번째 삶에서 '남을 위해 살아봄으로써' 카르마의 반환점을 돈다.


카르마는 자신이 갚아야 할 자신의 영적 채무이자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거울이다. 그리고 카르마를 해소하기 위해 지구라는 배경에서 그에 상응하는 경험을 무한 반복중이다. 인간은 한 번 했던 행동을 또다시 되풀이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카르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비슷한 각본을 무의식적으로 무한 반복하며 살고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무한 반복하던 자신의 행동과 습관을 알아차리는 시점이 누구가에겐 온다. 깨달음이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던 행동과 습관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던 행동, 습관을 멈추고 자신의 모순점을 바로 잡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카르마의 반환점을 돈다. 


뫼비우스의 띠를 잘 살펴보면 한 번 꼬아진 부분이 있다. 이 꼬아진 부분이 바로 반환점이다. 그리고 반환점에서 다시 첫 시작점으로 돌아가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

카르마의 반환점



어느덧 발리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나는 내일 아침이면 발리를 떠난다. 침대에 누워 발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음미하는데 갑자기 1층에서 고양이가 앙칼지게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차차야! 하필이면 마지막 날 밤 이래야겠니?' 하면서 속으로 짜증을 내며 계속 잠을 청했다.


그런데 차차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긴 커녕 점점 더 시끄러워지면서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었고 난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나는 서둘러 로브만 걸친 뒤 1층으로 뛰어내려갔다.


"꺄아아아아악!"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서서 나는 비명을 질렀다. 태어나 처음 맡아보는 역겨운 냄새가 거실에서 진동을 했고 정체불명의 오물이 바닥에 범벅이 돼 있었다. 게다가 저건 뭐지...? 피 아니야?


차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싶어 애타게 불렀지만 차차의 인기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거실의 상황을 살펴보니 우리 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이 침입했던것으로 보였다.


차차는 나를 지키려고 했던 걸까....?


1층 거실에 서서 살며시 눈을 감자 차차가 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이 그려졌다.


차차는 타인의 생명을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이 선택을 하기 위해 그동안 몇 번의 환생을 거듭했을까...?


동물이 아닌 인간들 중에서도 타인을 위해 살아보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그 집을 떠날 때까지 결국 차차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못생긴 얼굴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리고 발리를 떠나는 비행기에 앉아 창밖 풍경을 내다보며 인간으로써 우린 동물보다 나은 선택을 하며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 카르마 정화 1:1 코칭

siyuvayu@naver.com



▶︎ 이어지는 글 보러가기: https://brunch.co.kr/@ce9f6fd49e9c44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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