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이다. 나보고 이 공항에서 당장 나가라고 한다. 인도 뭄바이로 가는 비행기는 내일 오후이고 난 자이뿌르 공항에 도착하면 공항 안에서 노숙을 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자이뿌르 공항 규정에 의하여 난 공항 안에서 밤 새 머무를 수 없었다. 시간을 보니 새벽 두시였다.
이런! 인도는 1년 내내 더운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왜 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12월의 서인도는 뼈가 시릴 정도로 몹시 추웠다. 몇몇 외국인을 제외한 인도인들은 당연하다는 듯 모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준비해 두었던 재킷을 꺼내 입었다.
인도에 간다며 입고 있던 누비옷을 인천공항에 맡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던 것이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내 누비옷부터 당장 챙겨 오리라.
일단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숙소가 공항 근처에 있는지부터 검색하기로 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자이뿌르 공항 와이파이를 사용하려면 인도 현지 전화번호로 OTP(인증코드)를 받아야 한단다. 공항에 밤 새 머무를 수 없게 된 것도 나에겐 큰 문제인데 이번엔 공항 와이파이가 안 된다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사리(긴 천을 둘둘 말아 입은 인도 여성들의 전통 의상)를 입은 한 무리의 여인들이 소란스럽게 지나가고 나자 그 사이로 BMW마크가 새겨진 옷을 입은 공항 직원이 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저 사람이다 싶었다. BMW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신뢰하는 명성 높은 브랜드이다. 그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 옷을 입고 있는 저 사람도 왠지 신뢰해도 괜찮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뇌의 논리였다. 난 그에게로 가서 도움을 청했다.
"노 프라블럼!
나를 좀 도와줄 수 있냐는 질 문에 BMW마크가 새겨진 옷을 입은 공항직원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노 프라블럼이라 외쳤다. 인도에서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은 '아니', '싫어'라는 거절의 뜻이 아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것은 상대의 질문이나 요청에 대한 '예쓰', '오케이'이란 뜻의 인도인들만의 표현 방식이다.
나는 공항 직원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나는 OTP(인증코드)를 받기 위해 인도 현지인의 전화번호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공항 직원은 내가 전화번호를 묻자 약지 손가락에 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자신의 두 손을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당신의 휴대폰으로 OPT(인증코드)가 가면 그걸 저한테 알려주세요."
"노 프라블럼!"
공항 와이파이 사용을 위해 공항직원의 전화번호를 빌려 입력하였고 OTP(인증코드)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OPT(인증코드)는 오지 않았다. 몇 차례 더 시도해 보았지만 OTP(인증코드)는 오지 않았고 공항직원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공항에 근무 중이었던 다른 직원 두 명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동료 인도인들의 전화번호를 다시 입력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기다리던 OPT는 오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OTL 글자 모양처럼 공항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버렸다. 수 차례 시도했으나 OPT(인증코드)는 끝내 오지 않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외국인인 나는 당연히 알 길이 없었고 현지인인 인도 공항직원들도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절망 앞에 무릎 꿇은 나를 본 공항 직원 중 한 명이 다시 한번 외쳤다.
"노 프라블럼!"
그러더니 가지고 있던 무전기로 누군가를 호출했다. 이번엔 군복 같은 것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어느새 난 수많은 인도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OTP(인증코드)를 받기 위해 자신의 전화번호를 나에게 기증해 주었다. 하지만 직책이 높은 사람의 전화번호도, 직책이 낮은 사람의 전화번호도 둘 다 소용이 없었다. 인도의 와이파이 앞에선 브라만(인도에서 최상위 사제 계급)도 수드라(인도에서 최하위 계층인 노예나 천민)도 계급이 아무짝에도 소용없게 되는구나.
내가 신의 권위에 도전한 막강한 힘을 가진 현대 문명의 발명품에 감탄하는 사이 지나가던 사두(힌두교의 탁발승)가 우리의 상황을 전해 듣고 나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 무엇이 필요하기에 와이파이를 찾는가?"
나는 이 공항에서 밤새 머무를 수 없어서 공항 근처의 숙소를 검색하기 위해 와이파이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대가 가야 할 곳은 공항 근처의 호텔이지 와이파이 속이 아니라네.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지 말게나."
하면서 사두는 나를 에워싸고 있던 공항 직원들에게 이 근처 호텔에 가는 택시를 불러달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준 사두는 금방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아, 고맙다는 얘기도 하지 못했는데.' 나는 두리번거리며 사두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에 탄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택시 기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차를 멈추었다. 정말 그 사두 말대로 목표만 이루면 될 일이었다. 이렇게나 쉽게 해결되어 버리다니. 그나저나 쥐가 찍찍거리며 돌아다닐법한 싸구려 모텔에 내려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택시기사가 날 내려준 곳은 JW 메리어트 호텔 앞이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택시를 타는 순간 나에게 일어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느꼈는데 호텔을 보는 순간 곧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난 호텔 리셉션에 있던 직원에게 이 새벽에 여기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곧 다시 공항에 가야 해서 몇 시간만 눈 붙이고 떠날 거라고 얘기했다. 잠깐만 있다 갈 거니 가장 저렴한 방을 달라는 뜻이었다.
내가 기나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엄숙한 표정으로 조용히 있던 호텔 직원이 그제야 입을 떼었다.
"결혼식으로 인해 오늘 밤 모든 방이 예약되었습니다. 딱 한 방만 빼고요. 그 방이라도 묵으시겠습니까?"
직원이 얘기한 딱 한 개 남았다는 방은 바로 스위트 룸이었다. 몹시 피곤하고 지쳐있던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새벽에 또 와이파이를 찾아 검색을 하고 택시를 불러 이동하는 것이 꿈같은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난 예정에도 없던 초호화 스위트 룸에 몇 시간 묵게 되었다. 호텔 직원은 조식 쿠폰과 함께 호텔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500루피 바우처도 꼼꼼히 챙겨주었다.
스위트룸에 들어와 일단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매일 묵는 스위트 룸도 아닌데 그냥 자버리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호텔에서의 하룻밤을 제대로 즐기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커다란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하였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웰컴 스낵과 음료들을 욕실로 가지고 들어가 나만의 파티를 준비하였다.
욕실에서 반신욕 파티를 끝낸 뒤 대충 가운만 걸치고 이번엔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장에서 나와선 이번엔 헬스장으로 갔다. 그렇게 호텔에 있던 모든 시설들을 도장 깨기 하듯 하나씩 들르고 나니 벌써 공항에 가야 할 시간이다. 체크아웃을 하던 중 어제 받은 500루피짜리 바우처가 떠올랐다.
체크아웃을 하던 곳 옆엔 케이크 파는 곳이 있었다. 그곳 진열장엔 바나나 브레드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가격이 마침 500루피였다. 딱이었다. 이곳에서 500루피 바우처를 쓰면 되겠다 싶어 직원에게 바나나브레드를 하나 포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 프라블럼!"
노 프라블럼이라고 외친 직원은 진열장에 진열되어 있었던 바나나 브레드를 들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한참을 기다렸다. 이미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 바나나브레드고 500루피 바우처고 뭐고 다 포기하고 떠나려는 순간 케이크 가게 직원이 박스를 들고 나타났다.
난 케이크 가게 직원에게 방번호를 알려주며 내가 묵은 방에 500루피 바우처가 있다고 말했다. 바나나 브레드를 포장해 온 케이크 가게 직원은 잘 모르겠다며 바우처에 대해 알법한 다른 직원을 호출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또 다른 케이크 가게 직원은 이리저리 카운터 머신을 들여다보더니 방긋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노 프라블럼!"
나는 슬슬 인도인들의 노 프라블럼에 짜증이 났다. 매번 노 프라블럼이라고 외쳐놓고 정작 문제는 해결 못하니 이보다 더 책임감 없고 무능한 나라가 있을까 싶었다.
결국 바우처 사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케이크 가게 직원은 또 다른 직원들을 호출했다. 어디가 있었는지 모를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문득 삽시간에 열댓 명의 사람들이 나를 에워쌌던 공항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러 왔었지만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았던 어제였다. 어제도 사람들이 온다고 해결되지 않았었는데 오늘이라고 해결될까 싶어 이미 내 입은 오리처럼 뾰로통하게 나와있었다.
나는 참다 참다 이러다 비행기 떠나겠다며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며 이곳을 당장 떠나겠다고 외쳤다. 뒤늦게 달려온 매니저는 미안하다면서 뒷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일단 이거 들고 가라며 나에게 바나나브레드 가 든 박스를 건네주었다.
나는 얼떨결에 바나나브레드를 챙겨 들고 택시에 탔다.
택시기사는 캐리어를 트렁크에 대충 넣고 운전석에 다시 탔다. 내가 뒤를 돌아보니 트렁크가 열려있었다. 나는 문이 안닫혔다고 다급히 외쳤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자기도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노 프라블럼!"
나는 너무나도 황당했다. 문이 안 닫혔는데 문제가 없다니! 문이 열린 채로 도로 위를 운전하겠다는 인도의 택시기사가 좀 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택시기사는 인도의 험난한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과속방지턱이 있어도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속도를 내었다. 차는 심하게 덜컹거렸고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트렁크의 문은 비밀의 문이 열리듯이 내 마음을 졸이며 조금씩 벌어졌다. 난 열린 문 사이로 내 캐리어가 떨어질까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캐리어의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하지만 내 간절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트렁크는 이내 인도의 시내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활짝 열리고 말았다.
도로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내 긴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지붕이 없는 오픈카에 탄 느낌이었다.
우여곡절을 지나 드디어 뭄바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무언가에 홀린듯한 자이뿌르에서의 하룻밤이었다.
밤 새 호텔에서 혼자 축제를 벌인 탓에 한숨도 못 잔 나는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비행기 의자에 앉아 곯아떨어져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덜컹거리는 소리에 살짝 눈을 떠보니 내 앞에 기내식이 놓여있었다.
잠시 후 짜이(인도에서 '차'를 뜻하는 말)와 커피 서비스를 했고 나는 잠을 깨우고자 뜨거운 짜이를 요청했다. 뜨거운 짜이를 후후 불며 한 모금 간신히 마신 나는 또다시 잠이 들었다.
한참 꿈속을 헤매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곧 뭄바이 공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몽롱한 정신으로 살짝 눈을 떴다. 그런데 아까 받은 차가 아직도 내 앞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자다 방금 막 깨서 그런가 비행기에서 착륙하기 전에 등받이도 원상태로 복귀하고 마시던 음료는 모두 다 수거해 가는 것이 기본 상식이었는지 아니면 아니었는지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승무원을 찾았다. 그러다 건너편에 앉은 성격 좋아 보이는 인도 아주머니랑 눈이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더니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 프라블럼."
나는 컵에든 차가 쏟아질까 봐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컵을 손으로 꽉 잡고 있어야 했다. 트렁크가 활짝 열린 택시 안에서 내 캐리어가 떨어질까 봐 손잡이를 꽉 잡고 있던 내 모습이 지금 이 순간과 겹쳐져 보였다.
그렇게 뭄바이에 도착했다. 아직 인도여행은 시작도 안 했는데 이미 이미 인도에서 10년은 여행한 기분이 들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아라비아해에서 불어오는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순간 어디선가 '노 프러블럼'이 들려왔다.
어제 하루 동안 지겹도록 들은 말이다. 이 말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인도인으로부터 원했던 '노 프라블럼'은 '걱정하지 마. 내가 너의 문제를 책임지고 다 해결해 줄게.'였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겪었던 인도인의 '노 프라블럼'은 내가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이 아닌 문제를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자세였다.
'노 프라블럼'을 어제 나의 자세와 인도인의 자세로 나의 하루를 다시 돌이켜 보았다.
<노 프러블럼> 어제 나의 자세
1. 인도 자이뿌르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공항 규정으로 인해 난 공항에서 나가야 했다. 내가 그 새벽에 공항 밖에서 덜덜 떨었던 것은 다 자이뿌르 공항 규정 탓이다. 그러니까 공항은 당장 내 문제를 해결하라!
2. 급한 대로 공항 근처의 숙소를 검색하기 위해 공항 와이파이를 사용하고자 했으나 사용할 수 없었다. 이것은 다 공항 와이파이의 잘못이다. 그러니까 통신사는 당장 내 문제를 해결하라!
3. 수많은 인도인들이 나를 도와주려 했으나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것은 다 무능한 인도인들 탓이다. 그러니까 당장 누군가 나타나서 내 문제를 해결하라!
4. 사두가 불러준 택시 때문에 5성급 호텔에 와서 바가지를 쓰게 되었다. 5성급 호텔에서 준 바우처는 제대로 쓸 수도 없었다. 이게 다 예약이 꽉 차 방이 하나밖에 안 남았던 5성급 호텔 탓이다. 호텔은 당장 내 문제를 해결하라!
5. 택시 운전기사가 문을 연 채로 출발했기 때문에 난 공항에 오는 내내 두려움에 떨면서 내 캐리어를 꽉 잡고 있어야 했다. 이게 다 택시기사 탓이다. 택시기사는 당장 내 문제를 해결하라!
6. 인도항공사 직원 때문에 난 비행기가 착륙하는 동안 뜨거운 차가 든 컵을 들고 있어야 했다. 이게 다 인도항공 탓이다. 인도 항공은 당장 내 문제를 해결하라!
<노 프라블럼> 인도인의 자세
1. 공항에 밤새 머무를 수 없었다. 공항에 밤 새 머무를 수 없게된 일은 나에게 딱히 큰 문제가 아니다. 다른 방도를 찾아보면 된다.
2. 인도 공항 와이파이를 사용하려면 현지 전화번호로 OTP(인증코드)를 받아야 하는데 현지 번호로 OTP가 오지 않았다. 현지 번호로 OTP가 오지 않아 와이파이를 사용하지 못한것은 나에게 딱히 큰 문제가 아니다. 다른 방도를 찾아보면 된다.
3. 호텔에 도착했더니 방이 꽉찼다며 스위트룸을 내어주었다. 스위트룸에 묵어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긴것은 나에게 딱히 큰 문제가 아니다. 스위트룸을 즐기면 되고 방 값을 지불하고도 돈은 여전히 충분히 있다.
4. 케이크 가게에서 바우처 사용하는데 직원들이 어려움을 겪은것은 나에게 딱히 큰 문제가 아니다. 덕분에 바나나 브레드를 매니저로부터 건네받았고 뭄바이에 가져와 친구들과 맛있게 먹었다.
5. 택시 트렁크 문이 열린채 택시기사가 출발한 것은 나에게 딱히 큰 문제가 아니다. 사실 캐리어를 안 붙들고 있어도 밖으로 안 떨어졌을 것 같다. 여긴 인도니까.
6. 인도 항공에서 착륙할 때 테이블 위에 뜨거운 차가 든 컵이 그대로 올려져 있었던 것은 나에게 딱히 큰 문제가 아니다. 사실 그 컵을 손으로 안 붙잡고 있었어도 쏟아지지 않았을것 같아. 여긴 인도니까.
그렇다. 사실 택시 안에서 트렁크가 문 밖으로 떨어질까 봐, 착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뜨거운 차가 쏟아질까 봐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캐리어와 컵을 붙들고 있자고 선택한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들이 걱정되었고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었다.
결론만 따지자면 인도인들의 노 프라블럼처럼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나는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고, 또다시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고, 최종적으론 무사히 뭄바이에 도착했다.
하지만 난 매 순간 나에게 일어난 일이 '단순한 상황'이 아닌 '문제'라고 인식했다. '단순한 상황'을 '문제'로 인식하기를 선택하면 난 지난 하룻밤동안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다.
'상황'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마음의 고질적인 습관이다. 이 습관은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여있어서 매 순간의 상황들은 부정적으로 문제라 여기며 상대방을 탓하고 비난할 수밖에 없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뿐만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일지라도 그것을 '문제'가 아닌 '단순한 상황'으로 여길 수 있다.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 문제를 딱히 문제로 여기지 않는 '노 프라블럼'의 자세를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다.
문제라고 인식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을 괴롭힐지 아니면 문제라고 딱히 여기지 않아서 가볍고 즐거운 마음을 유지할지 그 선택권은 우리한테 있으며 우리에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생각과 마음을 스스로 선택할 권한이 있는것.
그것이 바로 신이 가진 권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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