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렇구나"
"그게 끝?"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네 얼굴 보고 좀 놀라긴 했어."
"뭘 기대했냐.."
그는 낮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방 안을 걸어 다닌다.
왠지 모르게 통쾌하다.
내가 크게 동요를 하지 않은 이유는 솔직히 스크린 속 저 남자가 나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닌 것 같다.
내가 저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설령 내가 저 사람이었어도 지금의 나는 아예 다른 사람 같다. 저 때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으니 그저 다른 타인을 보는 것 같다. 아무 느낌도 나지 않는다.
이 방엔 적막이 찾아왔다.
그는 우울증에 걸린 것 마냥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주 기분이 좋다.
난 다시 방을 둘러보고 있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전구다.
왜 눈에 띄었냐 하면 먼저 누가 봐도 대충 시공했다.
전선이 다 보이게 놔둬서 안전한지도 모르겠다.
아마 저 미친놈이 뭣도 모르고 했겠지.
전구의 존재 의미도 모르겠다.
저 전구는 켜져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작동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되려나 궁금하다.
어디서 빛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방은 전등이 없어도 이미 충분히 밝다.
저 전구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제 우울증 걸리기 직전인 불쌍한 아이를 구제해 보자.
"야"
"뭐"
웃음이 나왔지만 웃으면 하나뿐인 대화상대가 진짜로 없어질 것 같았기에 필사적으로 참았다.
"아니 저 전구는 뭐냐?"
"이 세상 모든 게 존재하는 이유가 있지는 않아. 그냥 존재하는 것도 있는 거야."
그냥 장식품이라는 말이다. 정말 미적 감각이 없는 것 같다. 저딴 걸 장식품이라고 놔둔다니.
"그리고 난 우울증 걸리기 직전인 불쌍한 아이가 아니야."
그가 정색하고는 있었다만 이번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조금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네 상태를 봐라. 아니라는 말이 나오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나뿐인 말동무가 사라졌다.
소리 내어 웃었다. 크게 웃었고 오랫동안 웃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솔직히 너무 많이 웃기다.
얘는 조만간 다시 나타나겠지 뭐.
대책이 없는 것 같지만 그게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