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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fodq Oct 23. 2024

새파란 하늘 속에 먹구름.

섬광이 터졌다.

흰 벽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내 눈이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흰 빛만 보인다.

영원한 백색 섬광이 내 앞에서 생긴 것 같다.

머리가 아프다.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명이 들리는 듯싶기도 하다.

내 귀에 울리는 것이 환청인지 실제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머릿속에선 풍선이 하나둘씩 터지고 있다.

작은 어린아이 하나가 바늘을 들고 모든 풍선을 터트려버린다.

펑. 펑펑.

모든 풍선을 터트릴 심보인가 보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해맑게 웃는다.

남의 머리통을 풍선처럼 터트리려 하나보다.

아이가 놓친 풍선 하나가 저 멀리 날아간다.

파란 하늘로 날아간다.

새파란 하늘엔 먹구름이 껴있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더니 넘어지려 한다.

손이 묶여 있다는 걸 모른 체 바닥을 짚으려다

그대로 바닥을 향해 다이빙을 한다. 


 "안녕?"

누군가가 말을 건다. 그 누군가는 내 앞에 있는 여성이다.

아 이제 눈이 보이는구나. 심지어 여기는 흰 방이 아니다.

 "안녕?"

그녀가 다시 한번 말을 반복하고는 허리를 숙여 의자에 앉아있는 나의 눈높이까지 얼굴을 내린다.

그렇게 나는 그녀를 보았다.

 "안녕."

난 대답을 하였다. 동시에 그녀를 보았고 손에 땀방울이 맺혔다.

심장에서 피가 나오는 게 느껴졌다.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심장이 부풀어 오르고 호흡이 빨라진다. 쉽게 진정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혹시 남는 연필이나 볼펜이 있으면 빌릴 수 있을까?"

눈을 돌려 내 자리인지도 모르는 책상 위 필통을 뒤져 연필과 볼펜을 내주었다.

내가 무엇을 꺼냈는지 무엇을 주었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다시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이 중요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손에 연필과 볼펜을 쥐고 그녀에게 손을 어색할 정도로 빠르게 내밀며 고개를 돌린다.


펑.

섬광이 터져버렸다.

한 번은 더 보고 싶었는데. 갈 곳을 잃은 내 손이 허공을 떠돈다.


몇 초가 지났을까. 다시 눈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보인다. 이번엔 내 위치가 바뀌었다.

그녀의 옆모습이 보인다. 내 의자는 이미 그녀에게로 틀어져 있다.

갈색 머리에 작은 키, 동그란 눈에 아기자기한 코가 그 동그란 얼굴에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얀 털옷을 입었고 묶은 머리를 보니 마치 눈사람 같다.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다른 사람을 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녀가 허리를 숙여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의 눈높이까지 얼굴을 내렸다.

작은 소리였지만 내 귀에 직접 목소리가 박혔다.

 "혹시 남는 연필이나 볼펜이 있으면 빌릴 수 있을까?"

심장이 적출되는 소리가 들렸다.


펑.

섬광이 터졌다.


섬광이 다시 한번 터졌다.


펑.

또 한 번.


펑.

다시 한번 더.


어느 순간 귀가 들리지 않았다. 눈도 보이지 않았다.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섬광에 눈이 자극됐나 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지러웠다.

심장이 눌리는 기분이었다. 아니 눌리고 있었나 보다.

답답하고 먹먹하고 짜증 났다. 슬프고 우울하고 화가 났다.

울고 싶고 자고 싶고 죽고 싶다. 그만두고 자고 싶다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어지러운지 모르겠다.

모든 걸 제쳐두고 오랫동안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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