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보라는 건 남편의 권유였다. 적당히 정신의학과에 대한 편견과 신뢰를 고루 가지고 있었기에 반반의 마음이었다. 정신의학과 진료 기록이 남았을 경우 보험 가입이 까다로워진다는 이야기는 어차피 더 이상 들 보험금의 여력이 없었기에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걱정이 된 것은 정신의학과에 다닌다는 타인의 시선과 이까짓 고통도 견디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정신의학과에 다닐 만큼 정신이 아픈 혹은 이상한 사람으로 비칠까 봐도 두려웠다. 병원 대기실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걱정했지만 머릿속으로 짧은 멘트를 생각할 만큼의 의욕도 나지 않았다.
병 주고 약주나, 하는 냉소를 품고 남편 손에 이끌려 집 근처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처음 방문한 병원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깔끔하고 세련되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다. 거슬리는 장식 하나 없이 하얗고 깨끗했다. 잔잔하게 배경음처럼 들리는 클래식 음악이 ‘환영합니다, 여기는 정신의학과입니다.’라고 안내하는 것 같았다.
친절하지만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간호사가 나의 신분을 확인하고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나의 증상에 대해 묻는 까다롭고 귀찮은 질문들이 빼곡했다. 한숨을 내쉬고 내가 한 달 동안 얼마나 잠을 자지 못했는지, 식욕이 얼마나 떨어졌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며 답에 체크를 해 나갔다. 의식하지 못하는 내 행동들을 집요하게 묻는 질문들이 다소 피곤하게 느껴졌다. 이 질문들로 내가 증명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확인받는 것도, 확인받지 못하는 것도 불편할 것 같았다.
예약을 하고 갔음에도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위한 대기 시간은 길어졌다. 시험을 끝낸 후련함으로 검사를 마치고 나니 주변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범해 보이는 외모의 보통 사람들이 간격을 두고 외따로 앉아 있었다. 저 사람은 무슨 사연으로 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올라왔지만 천천히 관찰해 보기엔 가만히 둔 두 손이 떨릴 정도로 상태가 너무 불안정했다.
더디게 흐르는 대기실의 시간을 속절없이 견디던 그때, 병원의 문이 열리고 30대처럼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간호사에게 다가간 그는 귀가 아프다고 했다. 당황한 간호사는 귀는 이비인후과를 가보셔야 할 것 같다며 말끝을 흐렸고, 그는 다시 귀가 아프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다는 간호사는 잠시 앉아 계시라며 안내했다. 문득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실감이 났다. 귀가 아프다는 그에겐 미안했지만, 내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내 이름이 불렸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여자 의사가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었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마음도 잠깐, 왜 왔냐는 의사의 물음에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나름 비극적이라고 생각한 내 사연을 이야기해 나갔다. 냉철한 눈빛의 의사가 휴지를 내 쪽으로 살짝 미뤄줬다. 그동안 다녔던 병원의 경험을 토대로 정신과도 사무적으로 약만 처방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대한 것보다 내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갖고 들어주는 느낌이었다. 초진이라 그랬는지 의사의 질문들이 이어졌고, 십 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밖에서 대기하는 환자들한테 미안해질 정도로 진료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쏟았다는 부끄러움과,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친 후련함과 함께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든 약 봉투를 안고 나의 첫 정신의학과 방문은 끝이 난다. 안정제 복용으로 증상은 나아지지 않아 결국 2주 후 다시 병원에 방문해서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다. 가장 낮은 용량으로 시작해서 조금 더 용량을 높였다가 쏟아지는 잠의 부작용으로 다른 약으로 바꿔가며 지금도 먹고 있다.
약을 먹은 후 요동쳤던 감정은 수평선을 그은 듯 꽤나 잠잠해졌다. 너무 슬프지도 너무 기쁘지도 않아서 이게 맞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속으로 수없이 목탁을 두들겨도 참을 수 없었던 아이들에 대한 화가 줄어든 것을 느낀다. 우울증을 겪고 인생사 더 별거 없다는 깨달음을 얻어서였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약을 먹은 시점에서 나아졌으니 우울증 약 만세라고 외칠법하다. 마음의 감기라고 하지 않던가.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우울증 약을 먹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난 약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뒤에 이야기할 예정이지만 운동, 다이어트, 운전 등 꽤나 많은 일을 벌여 나 스스로를 임상실험하고 있으니까. 약의 비중이 내 우울증 극복 노력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다른 걸 시도하는데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앞으로 정신과의 고요한 대기실에서 얼마간 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알 수는 없다. 예약을 하고 가도 가끔은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해서 약의 효능을 시험하게 하지만, 냉철한 눈빛의 의사 앞에서 나처럼 울고 있을 그 혹은 그녀를 위해 인내심을 발휘해야지. 시끌벅적한 소아과에서의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던 아이와의 기다림을 생각하면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정신과 대기실의 고요함은 얼마든지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
의사는 약을 먹는 걸 행여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지만, 선량한 피해자에게 내려진 사약 같은 느낌에 사실 아직도 억울하긴 하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일단은 일어서고 봐야지. 오늘도 긴 기다림 끝에 받아 든 우울증 약과 우울을 꿀꺽 삼키며 더 나아질 내일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