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소리 하기 정말 싫어 - 교사의 속마음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훈육의 숙제
야만과 낭만의 8-90년대를 지나고 세월은 흘러 ‘체벌’은 ‘꾸중’으로 바뀌었다. 40대가 기억하는 '빠따'는 이제 30대의 '꾸중'으로 자리 잡았다.
학교에서도 '훈육'이란 말 대신 '생활교육'이나 '생활지도'라는 부드러운 표현을 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교육 방식은 변했지만, 그 안에 담긴 교사의 마음만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마음을 깎아내는 순간들
꾸중을 하는 순간, 두 개의 마음이 동시에 아파온다. 듣는 이의 마음도, 하는 이의 마음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듯하다.
거울 앞에 서서 싫은 소리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는 해야만 하기에,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진다.
사랑이기에 피할 수 없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꿈꾼다. 아이와 늘 웃음꽃 피우며 지내기를. 교사라면 늘 생각하며 학교로 발길을 재촉한다. 오늘은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으로 가득하기를.
하지만 인생이란 거친 바다로 나아가길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때론 등대가 되어 바른길을 비춰줘야 한다. 부모도, 교사도 아닌 이들은 평생 이런 쓴소리를 해주지 않는다. 결국, 고쳐지지 않은 잘못된 습관은 주위 사람들을 하나 둘 멀어지게 만든다.
무너지는 마음의 벽
싫은 소리를 한바탕 하고 난 후의 마음은 어떠한가? 오래된 시멘트에 손이 닿으면 먼지와 함께 부서지듯 마음이 무너진다. 목소리를 높였다고 해서 마음이 후련할 리 없다. 오히려 아이와의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로워지고, 감정은 폭풍우 치듯 요동친다. 한바탕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가면 지친 몸은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듯 기운이 빠진다.
사랑하기에 더욱 아픈
눈을 감고 지나치기엔 너무나 소중한 우리 아이들. 내 자식이기에, 내 학생이기에 쓴 약을 먹이듯 싫은 소리를 전한다. 하지만 그 말을 하고 나면 가슴 한켠이 저며오듯 아프다. 왜일까? 그 이유는 단 하나,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정말 싫은 소리 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