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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부패라는 오해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by 보나스토리

숙성이라는 미각의 진화, 부패라는 감각의 착각

어린 시절,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담근 된장 앞에서 코를 막고 "이거 썩은 거 아니야?"라며 울상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웃으시며 "이게 얼마나 좋은 건데"라고 하셨지만, 어린 나에게 그 진한 냄새와 끈적한 질감은 분명 '썩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치즈의 강렬한 냄새, 젓갈의 비린 향, 발효주의 시큼한 맛... 이 모든 것들을 처음 접하는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썩었다'라고 판단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숙성과 썩음은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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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 혼동에서 시작된 오해

숙성=썩음이라는 오해의 뿌리를 찾아보면, 먼저 언어적 혼동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어에서 '썩다'라는 단어는 매우 포괄적으로 사용된다. 음식이 상하는 것도 '썩었다'라고 하고, 발효되는 과정도 '썩는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김치가 잘 썩고 있네"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썩는다'는 것은 발효를 의미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부패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런 언어적 모호함이 첫 번째 오해의 씨앗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구 문화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 영어의 'rotten'이나 'spoiled' 같은 단어들이 때로는 발효 과정을 설명할 때도 사용되곤 한다. 특히 치즈 제조 과정을 설명할 때 "controlled rotting(통제된 부패)"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 역시 일반인들에게 혼동을 가져다준다.


감각적 경험의 착각

두 번째 오해의 원인은 우리의 감각적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후각과 미각은 생존을 위해 발달했다. 상한 음식을 먹으면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의 감각기관은 '이상한' 냄새나 맛에 대해 경계심을 갖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발효 식품들이 내는 강렬한 냄새나 독특한 맛은 우리의 원시적 경보 시스템을 자극한다. 청국장의 암모니아 냄새, 홍어의 톡 쓰는 맛, 블루치즈의 곰팡이 냄새... 이런 것들은 분명히 '평범하지 않은' 감각적 경험이다.

특히 현대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자극적인 냄새와 맛이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포장된 가공식품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전통 발효 식품의 강렬함은 때로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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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 푸드 큐레이터 조동천입니다. 음료와 음식에 담긴 감성과 문화,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과 교감하며 여운을 나누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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