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0
“경수야.”
여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렸고, 경수의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누나, 제발……. 우리는 안 돼.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야. 누나의 아빠가 내 친아버지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내 아빠가 네 친아버지라니.”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내게 말하셨어. 우리는 엄마만 다른 진짜 남매라고.”
“…….”
“처음 나와 엄마를 데리고 왔을 때 누나가 너무나 힘들어해서 차마 말을 못 했다고. 엄마는 아버지의 첫사랑이었대.”
“그럼…… 그걸 알고…… 우리 엄마가…… 집을 나가신 거야?”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한 마디씩 말했다.
“아버지가 결혼하시고 나서 그때까지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인 엄마를 우연히 만났대. 누나, 나 오른쪽 다리가 이상해. 나 좀 일으켜 줘.”
여자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고 유리조각을 밟고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두세 번 들렸다.
잠시 후 경수의 깊고 무거운 신음 소리가 들렸다. 몇 분 간 침묵이 흐른 후 종이 백을 집어 드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리고 ‘딸깍’하며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이어서 문이 닫히며 ‘차르륵’하고 잠금 장치가 자동으로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핸디캠 속 화면은 계속 소파 아래 거실 바닥을 비춘 채 그대로 있었고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핸디캠은 저절로 꺼졌다.
여자의 저 말은 무엇인가. 그녀가 이신희라면 이신희는 내게 무얼 숨긴 걸까. 현관문이 다시 열릴 때까지 몇 분간의 침묵 속에 감추어진 것은 무엇일까. 사건 당일 황급히 아파트를 벗어나는 CCTV 속의 이신희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건 당일 칼을 넣어 버렸다던 그 쇼핑백과 장례식장에 들고 와서 경수와 함께 태워 달라던 옷을 넣은 쇼핑백이 같았던 건 우연일까. 그녀는 왜 경수를 칼로 찔렀다고 했을까. 그녀가 감춘 건 경수에 대한 사랑 말고 또 다른 무엇이 있었나.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공허한 시선이 떠올랐다.
‘경수가 날 사랑했어요. 날 힘들게 했죠. 그래서 도망쳤어요. 그런데 그게 더 큰 구렁텅이었어요. 경수는 여전히 날 사랑했어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왜냐면 우리는 남매였으니까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 연락처에서 그녀의 이름을 검색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정 기자님이시군요. 무슨 일이세요?”
전화기 너머로 아직 찾지 못한 마지막 퍼즐을 손에 쥐고 있는 이신희의 목소리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