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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랑 Oct 28. 2024

미세먼지 주의보

소설 3

  사흘 후 경찰서에서 용의자가 검거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생각보다 빠른 검거였다. 문화부 기자인 내가 사회부 김 기자를 대신해 조금이라도 진척이 있거나 단서가 나오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담당 형사에게 부탁해 놓은 터였다. 나는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피해자의 신원을 다시 자세히 물었다. 

  “이런 거 막 보여 주고 그러면 안 되는데…….”

  형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피해자의 사진과 함께 신원이 입력되어 있는 컴퓨터 화면을 보여 주었다. 사진 속에는 양 옆머리를 짧게 깎은 단정한 모습을 한 경수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무언가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날카롭게 내 몸을 꿰뚫고 나간 느낌이 들었다. 원치 않았던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이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게 알고 보니까 내연 관계인 여자가 죽인 거 같더라고.”

  형사는 손가락 사이에 끼운 볼펜을 까딱거리며 성의 없이 말했다. 형사가 앉은 낡은 회전의자는 비스듬히 앉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렸다. 

  “내연 관계요? 그럼 여자가 살인 용의자라는 겁니까?”

  경수가 죽던 날 그 시각쯤에 쇼핑백을 든 긴 파마머리 여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가 사는 아파트 12층에서 내리는 모습과 한 시간 후쯤 그녀가 급하게 1층 현관문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고 했다. 경찰이 경수의 휴대폰 사용 내역을 보니 사건 바로 두 시간 전에 어떤 사람과 통화를 했고, 그 사람이 엘리베이터의 여자와 동일 인물이었던 것이다. 용의자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고, 그녀는 순순히 자백했다. 이름은 이신희. 나이는 39세.

  저녁에 나는 가볍게 맥주나 한잔하자며 담당 형사를 불러내 사건의 경위를 처음부터 자세히 물었다. 나보다 두어 살 많아 보이는 형사는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가끔씩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놓는 둥 마는 둥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 현장이 처참했어요. 현관이 온통 피바다였지. 신발이며 쓰러진 우산이며 죄다 피로 흥건했단 말이요. 게다가 깨져서 여기저기 흩어진 거울 조각까지…….”

  “거울 조각이요?”

  “그래요, 거울 조각. 현경수의 몸 여기저기에 거울에 긁히고 찔린 듯한 상처들이 여럿 있었는데 아마도 넘어지면서 생긴 모양이더라고. 과학수사대가 현관의 거울이 깨진 모양으로 봐선 심한 몸싸움이 있었던 같다고 하던데. 일단 이신희의 과실치사로 추정하고 있소만…….”

  형사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이신희 그 여자가 현경수 집에 자기 아들을 만나러 갔던 거래요. 현경수가 데리고 있던 애가 그 여자 아들이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내가 현경수와의 사이에서 낳았냐 했더니 아니라고 펄쩍 뛰더라고. 그럼 현경수가 왜 그 애를 데리고 있냐 했더니 그냥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자기가 현경수를 죽였으니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거요. 그 여자 말은 자기는 몇 년이고 감옥에서 살 테니 그냥 처넣어 달라는 투였어. 그래도 무슨 살해 동기가 있어야 할 거 아니오. 그래서 현경수와 그 여자 주변을 좀 뒤져 봤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경수는 2년 전 천사원에 있던 현재 그의 아들이 된 무영이, 즉 이신희 아들을 입양했다. 독신이라 입양이 쉽지 않았을 테지만 오래전부터 경수의 됨됨이를 봐 왔던 수녀가 천사원에서 그가 무영이를 입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고 했다. 

  “이신희가 애 엄마라면서요. 그런데 무영이라는 애가 왜 천사원에 있었으며 또 왜 그 애를 경수가 입양했죠?”

  “서류를 보니까 주영호라는 사람이 애의 친부라네. 그리고 이신희는 현재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는 상태이고. 그 남자와 혼인 신고 한 건 2019년인데 둘 사이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니는 딸이 두 명 있더군. 이신희가 애 둘 딸린 남자의 재취 자리에 들어간 것 같아요. 그런데 이신희는 저렇게 입을 꼭 다물고 있으니. 참 나.”

  “제가 이신희씨를 한번 만나 봐도 되겠습니까?”

  “정 기자가 왜?”

  형사에게 내가 현경수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고 말하자 형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시던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형사는 내게 다음 날 경찰서로 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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