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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랑 Oct 28. 2024

미세먼지 주의보

소설 6

  연일 계속되는 미세 먼지는 밤거리의 불빛마저 감싸 안고 있었다. 희뿌연 베일에 가려져 멀리서는 보려고 애써도 잘 보이지 않는 신부의 슬픈 얼굴처럼 어쩐지 현실적이지 못한 광화문 거리를 지나 재현과 만나기로 한 종로의 한 주점에 들어갔다. 먼저 와 있던 재현은 갑작스런 약속에 불안한 듯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물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경수가 죽었다.”

  나는 차가운 냉수에 목을 축이고 나서야 겨우 입을 뗐다.

  그 말을 들은 재현은 하얗게 질렸고, 우리는 서로의 시선을 피한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물컵을 든 재현의 손은 떨렸다. 나는 경수의 일을 재현에게 말해 주었다. 내 말을 듣는 내내 재현의 입에서는 신음 소리에 가까운 낮은 숨소리만 흘러나왔다.

  술이 한잔 들어가자 재현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경수가 입양한 아이는 친조카가 아니란 말이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 어떻게 경수에게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어?”

  연거푸 술잔을 들이키던 재현은 소리 없는 울음을 토해 냈다.

  나와 경수와 재현은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 친구였다. 모두가 사진에 관심이 많아 사진 동아리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어 더욱 친해졌다. 그 후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하여 졸업한 우리들 중 나는 두어 번의 도전 끝에 기자가 되었고, 재현은 대기업에 입사 했으며, 경수는 포토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이틀 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국과수에서 경수의 부검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담당 형사는 아무런 연고가 없이 차디찬 주검이 되어 있는 경수에 관한 일은 누구보다 나에게 먼저 알렸다. 책상을 두고 나와 마주하고 있던 형사는 담배 한 대 피우자며 경찰서 건물 밖으로 나를 이끌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요. 이신희가 칼로 찔렀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현경수의 몸에는 작은 거울 조각들이 스쳐 지나간 자잘한 상처들이나 날카롭게 벤 상처들만 있지 어디에도 칼에 찔린 곳은 없다는 거요. 배는커녕 가슴이나 옆구리에도 그렇게 깊은 상처는 없답디다. 현경수의 사인은 목 부분의 경동맥이 손상되어 생긴 과다 출혈이라고 하던데……. 또 상처는 목뼈에 닿을 정도로 깊지만 칼로 인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하고.”

  몇 달 전 끊었던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자 현기증이 났다.    

  형사가 말을 이었다.

  “상처의 깊이가 일정하지 않고 갈수록 좁아지는 것으로 보아 살해 도구는 아주 예리한 삼각자 같은 모양일 거라고 하네요. 더구나 이신희처럼 처음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누군가를 칼로 치명상을 입힐 정도로 찔렀다면 자신의 손에도 상처가 생기죠. 찌르는 순간의 충격 때문에 칼자루를 쥔 손이 칼자루를 지나서 칼까지 닿으니까. 그런데 이신희의 양손 모두엔 그런 상처라곤 없더라구요.”

  형사는 갑자기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신문을 돌돌 말아 손에 쥐고 앞으로 쭉 뻗으며 칼로 누군가를 찌르는 시늉을 했다. 형사는 증거가 수집 되는 대로 검사가 기소를 할 테고 이신희는 머잖아 구치소로 이송될 거라 했다. 

  “하지만 이렇게 증거도 없고 살해 정황과 자백이 안 맞아서야 어떻게 무얼 끼워 맞춘들 기소나 할 수 있겠소?”

  형사는 다시 담배에 불을 당기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계속 무어라 구시렁대며 한숨을 쉬던 형사는 이신희의 진술을 마저 들어야 한다며 취조실로 들어갔다. 취조실 유리창 너머에는 진열장에 오래 방치된 낡은 마네킹처럼 이신희가 앉아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이 보일 리 없는데도 이신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미처 피할 틈도 없이 그녀의 시선과 마주친 듯했다. 그녀는 입술만 작게 달싹거리며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데자뷰를 느꼈다. 유난히도 미세먼지가 많아 목 위까지 옷깃을 끌어 올려 얼굴을 파묻고 다니던 사건 당일, 버석거리는 긴 웨이브 머리와 작은 얼굴로 일산 가는 버스 노선을 묻던 버스 정류장의 그 여인의 모습과 겹쳐졌다. 

  ‘왜 그랬나요?’

  ‘내가 경수를 죽인 거예요.’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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