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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랑 Oct 28. 2024

미세먼지 주의보

소설 7

  다음 날 신간 서적 목록 기사를 정리하던 나에게 김 기자가 말했다.

  “그 사건 말이야. 일산 30대 독신남 사망 사건. 그게 뭔가 모호한 점이 있어.”

  김 기자는 기사의 아웃 라인을 보여 주었다.


  -의붓누나가 살해한 것으로 추정. 뚜렷한 증거는 없고 용의자의 자백만 있다. 피해자 현모 씨는 2년 전 의붓누나인 이모 씨의 아이를 입양한 상태였다. -


  김 기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의붓누나에다 아이 입양이라……. 딱 감이 와. 이거 치정 살인이네, 치정 살인이야. 내가 이 바닥에서 이런 비스무리한 사건 사고 많이 봐 왔는데 이렇게 남녀가 얽힌 살인 사건은 대부분 치정 살인이더라고. 그런데 상대가 의붓동생이고 용의자가 순순히 자백을 했다는 건 좀 이례적이지 않아? 암튼 이 기사 잘만 쓰면 이슈가 되겠는걸.”

  김 기자는 대어를 낚은 듯 눈을 번들거리며 떠들어 댔다. 나는 그게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나 역시 아무것도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며칠 후 담당 형사로부터 이신희가 풀려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신희의 자백 말고는 아무런 물적 증거도 없고, 그 자백 내용마저도 충분한 살해 동기가 되기엔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더구나 진술한 내용과 결정적인 사인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범행 도구도 일치하지 않다는 게 기소를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였다.       

  “이신희에게 범행 도구는 어디 있냐 했더니 자기가 현경수를 찌르고 난 후 그 칼을 처음에 들고 왔던 쇼핑백에 넣어 가지고 가서 쇼핑백에 넣은 채로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렸다는데,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이미 쓰레기 처리장으로 간 걸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지 그걸 어떻게 찾누.”

  점심때 경찰서 근처 해장국 집에서 만난 형사는 해장국에 들깨가루를 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대체 경수는 어떻게 죽은 겁니까?”

  “일단 사건 현장에서 수집했던 증거와 사진으로 과학수사대가 다시 분석을 좀 해 봤어요. 현경수 시신 근처에 깨어져 흩어진 거울 조각들을 죄다 꺼내 살펴봤겠지. 그런데 그 조각들 중에 현경수 목의 경동맥 절단면과 아주 유사한 모양을 한 거울 조각을 발견했대요. 끝이 날카로운 삼각자 모양인데, 다른 조각보다 눈에 띠게 좀 크다고 하더군요.”

  형사는 해장국에 공기 밥을 수북이 떠 넣어 말았다. 해장국을 한술 떠 입 가까이 대고 후후 불더니 후루룩 입에 넣고 쩝쩝 소리를 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현경수가 어떻게 죽은 거냐고 했죠? 그거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 같습디다. 아니 명백히 그렇게 결론을 지었어요.”

  “극단적 선택이요?”

  “그렇다니까. 자살 말이오.” 

  나는 숟가락을 들려다 말고 도로 내려놓았다. 아직 숟가락을 대지 않은 내 앞에 놓인 해장국 뚝배기 안쪽엔 빨간 기름 띠가 들러붙고 있었다. 

  “현장 사진을 다시 살펴보니까 현관에 쓰러져 있는 현경수 오른손 근처에 아까 말한 그 거울 조각이 있더라구. 안 그래도 과학수사대가 그 거울조각에서 지문을 채취했나 봐요. 거울 조각들이 거의 대부분 흥건한 피에 잠겨 있어서 좀처럼 지문을 얻기 힘들었는데 그 조각은 신발에 비스듬히 걸쳐 있어서 피가 닿지 않은 부분이 있었답디다.”

  나는 식어 가는 해장국을 응시했다. 붉은 기름 띠는 더욱 선명해졌고 그 사이사이로 덩어리진 선지들이 융기하듯 몸을 떠올렸다. 시간이 흐르자 가라앉은 탁한 국물 위로 맑은 국물이 올라왔고, 갈색의 선지 덩어리들은 더욱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형사는 뚝배기를 두 손으로 들고 국물을 들이켰다. 국물이 넘어갈 때마다 목울대가 따라 움직였고 그 굴곡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뚝배기를 내려놓은 형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글쎄, 그 조각에서 현경수의 오른손 엄지의 지문이 뚜렷이 나왔다지 뭐요. 뭐 다른 손가락 지문도 나왔겠지만. 그런데 기자 양반, 식사 안 하슈? 이거 나만 맛나게 먹으니 미안하네.”

  나는 억지로 해장국에 숟가락을 넣어 휘저으며 먹는 시늉을 했다. 가라앉은 탁한 국물이 부유하듯 올라와 붉은 기름 띠와 섞여 들었다. 선지 덩어리들은 흙탕물에 몸을 감춘 물고기처럼 표면에서 사라졌다.

  “그럼 이신희는 집에 돌아간 겁니까?”

  나는 매스꺼운 속을 달래려 애꿎은 깍두기만 씹어 대며 물었다. 

  “아마 집으로 갔겠죠. 그런데 그 남편이라는 작자는 즈이 마누라가 유치장에 갇혀 있는데도 어째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는지 참 나. 그쪽도 벌써 쫑 난 거 아닌지 몰라요. 참, 그리고 애는 그날 이후 사회복지사 통해서 당분간 어디 보호 시설에 머물고 있대요. 이신희 남편이 그동안 애의 존재를 몰랐다는데 애랑 함께 다 같이 살 수 있을지 몰라.”

  “…….” 

  “그런데 보통 자살을 하려면 손목을 긋지 스스로 목 부분 경동맥을 찔러서 하는 건 좀……. 뭐, 죽으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죽겠지만 말이오.”

  형사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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