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정의 생각구독, 그리고 기록의 의미
대학원 연구실에 인턴으로 처음 들어갔을 때 자기소개 주제가 참 참신했다.
‘기록으로 자신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기록은 지도 앱에 저장해 둔 즐겨찾기일 수도, 맛있는 곳을 갈 때마다 찍어둔 사진일 수도, 자주 이용하는 쇼핑몰의 구매내역일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록을 남기고 그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때 10년간 써온 일기장을 꺼냈다.
나 이외의 사람에게 보일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멋진 문장도 깊은 생각도 딱히 없는 내 일기장은 서랍 속에 꼭꼭 숨겨져 있었다. 누군가 내 일기장을 훔쳐본다면 당혹스럽고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지저분한 옷장을 벌컥 열고 특히 속옷 칸을 뒤지는 기분이랄까. 누군가 그 속옷이 자기 취향이 아니라며 바꾸라고 한다면? 그게 누구라도 소리를 빼액 질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오랫동안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중이다. 바로 윤소정의 생각구독. 동료 몇은 책도 아닌 글을 산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컨설팅펌에서 낭만적인 사람은 멸종위기종이다) 나는 그녀의 글을 많이 좋아한다. 요란하지 않지만 시원시원한 말투가 그대로 담겨있는 일기장 같달까? 그녀의 장애, 장애를 가진 아버지, 결혼과 이혼, 사업의 어려움까지 얼굴도 모르는 내가 알게 되었다. 딱 컨티뉴어스의 서평 그대로다.
"너무나도 날것이라 부담스러우면서도
위태로웠다가
여과 없는 솔직함에 인간미를 느끼기도 했다.
인향을 품은 사람은 미워할 방법이 없다."
이런 그녀는 그동안의 기록에 대해서 얘기할 때마다 눈물을 쏟아낸다. 그 마음을 얼핏 알 것도 같다.
2주에 한 번 상담을 한지 꽤 되었다. 모른 척하고 싶었던 시간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면, 오래된 목욕탕 수도꼭지에서 차디찬 냉수를 1도만 틀어도 용암 같은 온수가 나오는 것처럼, 예고 없이 눈물이 와르르 쏟아진다. 때때로 즐겁고 대체로 평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이 눈물은 황당하기도 화가 나기도 한다.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라고 말한다. '팔리는' 글을.
글을 쓸 용기를 주었던 나의 첫 글쓰기 선생님인 박은지 시인은 누구보다 밝고 즐거운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데뷔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발밑이 무너지거나, 흩어진 나를 찾아 이리저리 뛰거나, 가만히 울면서 오늘을 보낼 때마다 시의 힘을 빌렸습니다.
자존감이 무너지고 고민이 생길 때가 있지만 하얀 종이 앞에서는 떳떳하게 느껴져요. “
이들 덕분에 2024년 11월, 슬픔과 두려움을 마주해 보겠다는 용기를 얻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