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예쁨 받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모든 부모님이 하던 말씀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를 기가 막히게 잘 실천했다.
그 시절 나에게 선생님의 말은 곧 법이었다. 비록 숙제는 잘 안 했지만, 선생님이 부탁하는 건 뭐든 먼저 자원해서 나섰다. 학교에 있는 모든 선생님한테는 열심히 인사했다. 그분들이 날 몰라도 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슬기로운 생활에 '웃어른을 보면 인사를 열심히 해야 해요'를 배웠다. 길가는 아저씨 아줌마, 경찰관을 보면 열심히 인사했다. 심지어 에버랜드에 놀러 가면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열심히 인사하고 먹으려고 갖고 간 간식도 나눠줬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선생님에게 칭찬받는 게 낙이었다. 똑똑한 아이는 못되어도 착한 아이가 된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친구를 잘 도와야 한다는 가르침엔 오지랖 발동해서 얘도 돕고 쟤도 도왔다. 우유를 싫어하는 친구한텐 그 아이의 우유를 대신 먹어줬다. 급식 당번도 도맡아서 했다. 왜? 선생님이 하라고 했으니까.
사춘기가 찾아오고 엄마아빠에게 반항을 할지언정 선생님한테는 절대 반항하지 않았다. 그때도 늘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단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선생님께 예쁨 받기'가 1순위였다.
6학년 현장학습 때, 같은 반 아이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는 선생님 빽이 있잖아"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도 몰랐다.
"빽? 그게 뭐야?"
이미 아이들에게 나는 선생님한테 예쁨 받고 싶어서 미치는 애가 됐지만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그때 남자애한테 괴롭힘도 당했다. 덩치도 키도 나보다 작은 애한테 맞았다. 바로 선생님한테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문제 있으면 선생님한테 도움요청하면 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도와주지 않았다. 십수 년이 지나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남자애를 혼내긴 했지만, 나에게도 반응해주지 말라고 했다.
13년 인생 굳은 다짐이 조금씩 깨졌다. 그 담임교사는 애들한테 무시당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애들이 본인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교무실로 내려가서 울었다. 아이들의 무시는 더했지만, 나는 반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고,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다. 그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본인을 너무 의지한다"는 식으로 판단했다. 그저 웃어른들의 가르침을 잘 실현했을 뿐인데.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받지도 못했고, 이미 아이들에게도 멀어졌다. 그렇게 나는 은따가 됐다. 남자애들한테 괴롭힘도 당했다. 괴롭힘이 힘들어 가출도 생각하기도 했지만 견디기로 했다. 졸업이 코앞이었으니 몇 달만 견디면 됐다.
그렇게 난 졸업을 했다. 그 남자애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졸업식날 유일하게 나 혼자 울었다. 그 선생님은 그때도 본인이랑 헤어지는 것 때문에 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네 학교여서 나는 그 애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고 난 제대로 왕따를 당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