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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재의 가치 Sep 22. 2024

1부. ‘나’는 누구였을까

1장. 완벽을 추구하며 모든 것을 통제하길 바라면서 눈치 빠른 착한 아이

 ‘나’를 어떻게 하면 정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완벽을 추구하며 모든 것을 통제하길 바라면서 눈치 빠른 착한 아이‘


적어도 여태까지는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완벽하고 능력 있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잘한다는 칭찬을 들을 땐 즐기곤 했다. 속으로 ‘내가 좀 잘났긴 하지.’라는 생각 따위를 일삼으며. ‘신여성’이 정확히 무얼 뜻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신여성이 될 거야.”라는 말을 즐겨 하기도 했다.

 물론 영웅 소설이 그렇듯, 또 잘나가는 드라마가 그렇듯, 성장과정에서 단 한 번의 실패도 겪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한 번도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머릿속에서 나는 다른 이들보다 센스도 넘치고 이것저것 잘하는 것도 많고 눈치까지 겸비한 이 시대의 인재였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도 한몫했다. “어쩜 이렇게 못하는 게 없어요.”, “진짜 너무 센스가 넘친다.” 등등. 그런 줄로만 알았다, 내가. 그냥 완벽하면서도 심지어는 가끔 덜렁이는 인간미까지 갖춘, 남 부러운 줄 모르는 잘난 나. 이만하면 외모도(물론 다이어트는 늘 어렵지만) 나쁘지 않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학 출신에, 이른 나이에 얻은 직장까지. 부모님은 늘 이런 얘기를 듣곤 했다. “어머, 너무 부럽다 정말.”


 지금 생각해 보면 MBTI 검사를 할 때마다 J의 비율이 늘 90% 이상으로 나오는 덴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항상 완벽해야 했으니까. 모든 상황이 내 통제 아래에 있는 것이 심적으로 늘 편했고, 한 가지라도 내 통제를 벗어나면 짜증이 났다. (나는 J가 계획형이 아니라 통제형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항상 계획을 세워 통제를 벗어나는 경우에 대비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계획을 세운 바는 꼭 끝내야 직성이 풀렸다.


 한번은 친구와 약 2주간 프랑스 여행을 갔다. 체력까지 생각하며 도착한 날은 쉬고 다음 날 디즈니랜드, 그 다음 날은 시내 투어, 다시 그 다음 날은 몽생미셸 투어, 이런 식으로 미리 계획을 세운 후 티켓까지 다 준비해갔다. 그런데 몽생미셸 투어 가는 날, 약속 시간보다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30분을 기다렸는데 업체 가이드가 등장하지 않았다. 추위에 벌벌 떨다가 겨우 한국 지사에 연락해보니 업체 측 실수로 우리 이름이 다른 투어에 들어가 있단다. 친구랑 열심히 화를 내보았지만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것은 여전했고, 바로 다른 계획을 세워야 했다. 우리의 ‘완벽한’ 프랑스 여행을 망칠 수는 없었으니까.

 몽생미셸 투어는 다음 날로 할인가에 예약해주겠다고 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체력까지 ‘완벽’하게 고려하여 계획을 짠 우리에겐 다음 날부터 쓰려고 했던 48시간짜리 뮤지엄 패스가 있었다는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을 하루에 다 가기에는 시간이나 체력 모두 충분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몽생미셸 투어를 안 갈 수는 없었기에, 결국 투어를 못 가게 된 그 당일에 저 세 뮤지엄을 다 돌았다. 심지어 48시간짜리 패스가 아까워서 중간중간 다른 곳도 더 들렀다.


 그게 체력적으로 가능했냐고 물어본다면... 엄청난 기침과 두통에 시달리고 3만보쯤 걸어서 허리랑 다리가 남아나지 않았다고 하겠다. 약국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겨우 약을 먹고도 정신을 못 차려서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무얼 봤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아플 정도면 ‘다음에 파리에 다시 오지 뭐.’라며 호텔에서 쉬든지, 전력난으로 인해 예전처럼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몽생미셸 투어를 포기했을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보던 그런 예쁜 야경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다른 소도시가 예뻤던 것에 만족한다.)

 그렇지만 ‘완벽’한 여행을 만들어야 했던 나는 어느 순간 ‘여행’이 아닌 ‘고행’을 하고 있었다. 그 정도였다. ‘완벽’에 대한 강박과 그에 따른 통제 성향은.


 아이러니한 것이 있다면 가정교육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지나치게 몸에 배어있다는 것과 타인의 눈치를 지나치게 본다는 것이다. 내 계획과 삶은 완벽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상황도 고려해야 하고, 설령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대의 눈치를 엄청 보는 상황이라니. 이게 무슨 스스로 만드는 지옥인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면 가정에서 늘 타인을 배려하라는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배려했을 때 착하다는 칭찬을 듣는 내 모습도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갖추고 착하기까지 한 아이. 말 그대로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있었나 보다. 그러다 보니 눈치를 보는 것도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상대방이 무엇을 지금 원하고 있을까?’ 살피며 그 사람이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것을, ‘알잘딱깔센’하게 내어주는 것.


 거기서 그쳤으면 참 좋았을 텐데, 눈치를 계속 보다 보니 상대의 표정이 조금만 안 좋아도 ‘혹시 나 때문인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게 그냥 눈치를 지나치게 많이 봐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어젠가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내가 나 중심적인 사람이라 그런 것임을. (이미 앞에서부터 내가 얼마나 나 중심적인 사람인지, 나에 심취한 사람인지는 충분히 보였을 거라 생각한다.)

 이러한 성격은 때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상대는 그냥 단지 피곤해서 표정이 안 좋았을 뿐인데, 나 혼자 앞서 나가 계속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라고 묻는다든지. 그러한 과정에서 관계가 어긋나갈 때 받는 스트레스는 또 어마어마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떠날까 두려움이 엄습함과 함께, 자책하는 날들도 있었다.


 가장 싫었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떠날까 두려워서 그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계속 내가 무얼 잘못했느냐고 묻는 것이 오히려 상대를 떠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그게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혼자 멍들어 갔다.


 그리고 지나친 배려 덕에 누군가가 “뭐 하고 싶어?” 내지는 “뭐 먹고 싶어?” 등을 물어올 때 “아무거나, 너 하고 싶은 대로.”라고 대답하는 게 일상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단순히 배려를 넘어서서 정말 내가 무얼 하고 싶고 무얼 먹고 싶은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색깔을 잃어간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러한 경험들이 모여 담임 반 학생들 상담할 땐 도움이 되기도 했다.


“쌤, 진짜 전 너무 소심하고 이런 제가 싫어요.”

“알지, 집에 가면 자꾸 아까 내가 한 말과 그때 친구의 표정이 생각나고 너무 신경 쓰여서 잠도 안 오고 장문의 카톡을 썼다 지웠다 보낼까 말까 고민하고 그러지?”

“아니, 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쌤은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렇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나를 떠날까 너무 무서워서 눈치 보는 소수의 몇 명 빼고는) 내가 내면에 이러한 고민들을 품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누구나 날 보는 사람들은, 제자들도 다 나더러 ‘밝은’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멍들어 가는 그 시간 속에서 ‘밝은 사람’이라는 말이 나를 옥죄어 오는 경우도 있었다. 나도 항상 밝을 수만은 없는데 밝은 사람으로 비쳐야 할 것만 같아서. 그래서 포스트잇에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라는 문구를 적어 책상에 붙여두기도 했다. 그리고 그래야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멍들어 가던 시간을 뒤로 하고 우울증 판정을 받고서야 이러한 내 모습을 처음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전까지는 늘 이뤄야 하는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 감정에, 내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럴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으니까.

 한국 나이 서른에 드디어 정년까지 보장되는 정교사가 되었고, 그때가 되니 행복할 것만 같았던 시간이 오히려 방황의 시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떠한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데다가 사회적으로는 ‘서른’이라는 때, 어른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은 느낌. 그동안 미뤄왔던 내 감정과 내 정체성에 대해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힘듦과 교사로서의 고민들. 그 모든 것들이 소용돌이쳤고, 이제 글로써 하나씩 풀어가 보려고 한다.


 그 어떤 것에도 의욕이 쉽사리 생기지 않는 요즘, 유일하게 의욕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글쓰기이므로.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완벽’한 성격을 추구하지만 속으로는 멍들어 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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