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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울 (Soul)': '22'의 심리

살고 싶다는 열망, 작은 것들의 소중함

by cogito

최근 나 자신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이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실은 나는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인 내 삶을 되돌아보면,

'이렇게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외모, 능력, 습관 등등...

바꾸고 싶은 것들은 넘쳐나지만,

이들을 뜻대로 바꾸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조차 불투명하다 - 마치 뿌연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이렇게 불만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렇다고 삶을 송두리째 바꿀 엄두는 나지 않는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머릿속에 먹구름처럼 낀 무기력을 떨쳐내지 못한 채,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흘러 보내는 나 자신...


이런 스스로의 모습이 못 미더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나의 반짝이는 순간들이,

웅크려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워준다.


오늘만 해도,

저녁 상에 차려놓은 고기 반찬은 정말 맛있었고,


마트의 과일 코너에서 나는 딸기 향은 너무도 싱그러웠으며,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꽃봉오리를 보며 내 마음속에도 작은 설렘이 피어났다.


이처럼 사소하지만 빛나는 순간들이

인생을 '살 맛 나게' 만들어주고, 내게 버틸 힘을 준다.


-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이런 소소한 행복일지도 모른다.



영화 '소울'에서,

조와 22가 주고받는 인상적인 대화가 있다;


길거리에서 먹은 피자의 맛,

사탕의 짜릿한 단맛,

그저 거리를 한가롭게 걸어 다니는 것...


- 이러한 작은 순간들조차 행복하다는 22에게, '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건 것들은 의미 있는 목적들이 아니야, 22. 그냥 평범하게 사는 거지."
(Those aren't purposes, 22. That's just regular old living.)


22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를 만끽하고 있는 가운데, 조는 '더 크고, 의미 있는 목표를 좇으라'며 22의 행복에 찬물을 끼얹는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일상에 안주하기보다, '거창한 것'을 추구하도록 요구받는다;


명확하고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큰 성과를 이루어야만 인정받으며,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성장'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그런데, 진짜 '평범한'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까?




사람은 살면서 '큰 것'을 이뤄내고, 후세에 기억될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 -


이러한 일종의 '가스라이팅'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삶에서 끊임없는 불안을 끌어안고 산다.


아직 성취를 이루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의미 없을까 봐 두렵고,

이미 성취한 사람은

그것을 유지하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삶을 거부하기도 한다;

새로운 기회를 차단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다.


- 영화 '소울'의 캐릭터, '22'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22는 누구보다도 삶을 경멸하는 영혼(soul)이다.

그는 모든 것이 따분하다는 비관적인 태도를 일삼으며,

수많은 멘토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삶에 대한 열망을 품지 않았다.

(- 아니, 품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22는 정말 삶을 '따분'하다고 생각한 걸까?

어쩌면 그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그냥 두려웠던 것 아닐까?




우리는 모두 지구에 그냥 던져진 존재들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자신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가질지 확신할 수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막막하고 불확실한 것이기에,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내면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22는 스스로를 ‘불량 영혼’이라 부르며

냉소를 무기로 삼는다.

"삶은 별거 없어. 어차피 다 의미 없는 거야."


-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혹시라도 실망할 것에 대비해 마음의 방어벽을 세웠다.


항상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영혼 '22'.... 뭔가 귀엽다.



그러나, 22는 지구에서의 시간을 보내며,

여태껏 느껴본 적 없었던 '떨림'을 경험한다.

따뜻한 햇볕,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입안에서 퍼지는 피자의 맛


—이 모든 감각의 향연이 22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것들은 대체 뭐길래? 왜 이토록 마음이 움직이는 걸까?


결국, 22는 깨닫는다.


삶이란 정해진 목적이 있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그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은 삶이 아니라,

삶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었다는 것을.



실은, 삶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다.

내 기분과 목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고,

평생 간직할 것 같던 꿈도,

시간이 지나면 현실에 부딪혀 희미해지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과정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 나가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22는 마침내 삶을 향해 첫 발을 내디딘다.

두려움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한다.


삶을 거부했던 영혼이,

처음으로 삶을 향해 열린 순간.

- 이를 지켜보는 나 역시, 작은 행복들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아닌,

'난 살고 싶고, 떡볶이도 먹고 싶어!'를 외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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