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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sh Sep 24. 2024

아버지와 딸들

한약방을하면서 침을 놓으시던 나름 구태하지 않고 진보적인 편이셨던 아버지도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딸을 연달아 둔 후에야 아들을 본 남다른 가족사를 겪으며 살아 온 긴 이야기들, 가족들의 희노애락,남들보다 조예있는 차와 커피, 음식과 함께 성장해 온 문화생활, 전통과 미래에의 비젼 사이에서 세대간의 문화변동사를 글로 써보고 싶습니다.

어린시절의 한약방 풍경들

아버지가 불편한 다리로 훌륭한 솜씨로 침을 놓고 약을 다리며 동네 거지나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먹이고 재우는 동안 아버지가 직접 심은 밤나무로 가득한 밤산으로 사과과수원으로 일꾼들 밥해 먹여가며
홀로 전전긍긍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거쳐 열명의 딸들이 한약방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도시로 서울로 떠나 만난 사람들 이야기, 나의 사춘기와 청춘사, 그리고 나이들어가는 이야기, 그 속에서 삶의 지혜와 감성으로 부푸는 문화이야기,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접목한 영어교육의 시도, 자연주의 육아를 지향했으나 자연적이지 않게 된 자녀양육기 등을 다루고 싶습니다. 완성본은 아니지만 일부를 저장했고 급조한 블로그도 첨부해봅니다.

아래는 부분발췌
기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을 바라보다가 언젠가 아버지와 나섰던 어느 하루의 외출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린시절 흔치않게 장거리 나들이를 하게될 때면 만화경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며 바뀌는 풍경들을 보면서 아득한 먼 그리움이랄까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주는 미지에의 동경으로 마음이 부풀어 오르곤 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알지 못하는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속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건강검진이라는 꽤 먼 진주로의 외출을 나서게 되었다. 그때로서는 그나마 큰 도시였던 진주로의 입성과 동시에 지독한 매연과 경적소리, 멀미가 날 것같은 온갓 음식냄새들..내 감각에 처음으로 두드리는 도시가 주는 인상에 정신이 혼미했더랬다.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아득한 현기증이 느껴지는 듯했다.

딸들을 줄줄이 나은 엄마에게 아버지는 한약을 지어서 먹여가며 기어이 아들을 보고야 말았는데 바로 내가 터를 잘 팔아서 남동생을 볼 수 있었다는 덕담과 함께 나는 집에서 유일하게 젖을 못 먹고 컸다는 이유로 여름마다 책을 읽던 들청에서 아버지가 나를 위해 지어주신 쓰디쓴 한약을 매번 불려내려와 마시고 돌아가야 하는 곤혹스러운 기억
을 가지고 있다. 써서 먹다가 토하기도 여러번, 비위가 약했던 나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는 어느 가을 날 나를 앞세우고 생전 처음 건강검진이라는 대단한 임무를 위해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었다.


우리가족의 격식을 따지지는 않지만 안목있는 차생활의 원천은 거슬러 올라가보면 결국은 아버지의 한약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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