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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sh Sep 24. 2024

구름이 둥실둥실 피어오를 때

구름을 향해 걷다.

해질녁 구름이 이끄는대로 하늘을 따라가다보면 토끼굴이나 블랙홀을 지나 어느덧 눈앞에서 여름과 겨울처럼 정반대의 하늘이 나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로 나에게 속삭인다. 미지의 우주를 머리 속으로 헤집고 다니거나 서로 다른 차원의 시간을 헤메이다가 나의 이야기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붉은 하늘이 되려 나를 쫓는다. 어둠이 붉은 구름을 완전히 삼킬때까지.


흘러가는 구름사이로 수많은 이야기를 보고 아름다운 망상을 많이 하는 사람은 예술적인 안목도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 현실감 또한 상승한다. 나의 삶은 내 그릇만큼의 내가 상상하는 범위에서 뻗쳐나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가끔 우주의 기운을 받은 어느 별에서 예상치 못한 인연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그것도 예정된 페이지의 등장인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현실감이 떨어지진 않지만 지혜가 커가는 만큼 운명론적인 믿음에 기대게 된다. 모든 철학자와 작가, 예술가들이 말년에 그렇게 흘러가다 사라져 갔듯이.


하루에도 수 백번씩 뭉쳤다 헤쳤다 실타래처럼 엉켰다 풀렸다 내 마음이 그렇다. 정처없달까. 아침에는 시원했는데 점심때가 되서는 무더위와 끈적한 습기에 그늘과 시원한 음식을 찾게하는 한낮의 여름처럼 잔뜩 지뿌린 얼굴로 회색으로 일렁이다가도 시원한 바람으로 풀어지는 장마철 어느날 아침에 창문을 열고 새로이 태어난 공기를 들이마시며 바라본 하늘에 피어난 구름을 보고 구름처럼 하얗게 뭉게이며 피어나는 내 마음이 아 그래서 내가 구름을 찾아가는구나 생각했다. 산책을 하더라도 까맣고 허연 구름들이 엉켜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내면 본능처럼 폭풍의 언덕을 내려가듯 길을 걷는다. 더 화려한 구름의 움직임을 쫓아서 캠퍼스같은 하늘의 예술질을 선망하듯 눈을 떼지못하고 목을 치켜올리며 하루종일 거북이처럼 딱딱하게 굳어가는 목에 새로운 각도를 불어넣는다. 나 자신에게 하루의 유일하진 않지만 귀한 편인 신선함을 선사한다.

이 구름에 대한 선망이 어디서 시작됐을까? 또는 이루어졌을까?

아마도 수없이 오갔던 그 길일까..

너무나 많이 오가면서도 시작도 끝도 알 수 없었던 나른한 오후의 그 길.

안개를 헤치고 가듯 미지의 세계를 꿈꿨던 그 길.

많은 현실에 대한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이 하늘이라는 캠퍼스에 물들었던 그 길에서 나의 망상도 번뇌도 구름처럼 피어나고 흩어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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