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지키려다 사라진 말들에 대하여
도움이 늘 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도움은 말을 삼키게 만든다.
일터에서 누군가의 배려를 경험한 뒤,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진다.
불편한 점이 분명 보이고, 더 나은 방법이 떠올라도, 괜히 입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이 사람이 이미 나를 도와줬는데.”, “괜히 문제 제기하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을까?”
그 마음은 어느새 우리를 ‘말하지 않는 방향’으로 데려간다.
조직에서 침묵은 대개 두려움에서 시작된다고들 말한다.
괜한 불이익이 걱정돼서, 평가가 나빠지거나 관계가 틀어질까 봐.
하지만 실제로 그보다 더 미묘한 이유가 많다.
도움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과 동시에, 조심해야 한다는 신호를 함께 받는다.
그 신호는 이렇게 속삭인다.
“이 관계를 흔들지 마.”, “괜한 파장을 만들지 마.”
그래서 우리는 그 불편함을 문제로 만들기보다 감정으로 꾹꾹 눌러 담는다.
그리고선 의견을 내기보다는 현 상황을 이해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침묵은 그렇게 순응의 얼굴을 하고 우리에게 나타난다.
특히 선의로 제공된 도움일수록 침묵은 더 단단해진다.
비판은 배은망덕처럼 느껴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도움의 감사함을 지워버리는 행동처럼 여겨진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예의 바른 선택처럼 보이게 된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불만만이 아니다.
아이디어도, 개선의 가능성도, 조직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었던 말들 역시 함께 사라진다.
조직 침묵은 누군가가 일부러 입을 다문 결과라기보다 관계를 지키려는 마음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풍경에 가깝다. 그래서 침묵은 무책임의 증거가 아니라 지나치게 책임을 느낀 결과일지도 모른다.
도움을 받았기에, 관계를 소중히 여기기에, 우리는 말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이 반복될수록 조직은 점점 조용해지고, 동시에 변화하기 어려운 곳이 된다.
어쩌면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왜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는지가 아니라,
왜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처럼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