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찹쌀떡
아이들을 위한 간식거리가 마땅치 않던 그 시절은 엄마들이 집에서 해주는 것이 유일했다.
엄마는 여름에는 찐빵을 해주셨고 가을에는 찹쌀떡을 만들어주셨다.
찹쌀밥을 절구로 찧어 떡을 만들고 그 속에 설탕과 계피를 약간 섞어 반죽한 삶은 팥을 넣어 만드셨다.
많이 만들어서 딱딱해지면 연탄불에 구워 먹었다.
연탄에 구운 찹쌀떡도 일품이었다.
엄마가 찹쌀떡을 만드는 날이면 우리들은 엄마주위에 빙 둘러앉아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빨리 만들어 우리를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큰오빠는 거기에 없었다.
큰오빠는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 어린 우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제일 먼저 만드는 찹쌀떡은 크게 만들어 "우리 집 맏상제 갖다 줘라!" 하시면 내가 접시에 담아 오빠방에 가져다주고 나왔다.
그다음부터 만드는 것은 좀 작고 다 같은 크기였다.
우린 이것을 먹었다.
"왜 우리 것은 작아?"라 물어도 엄마는 큰오빠는 부모대신이라 대접을 받아야 한다 하셨다.
"엄마~ 우리 집 맏상제가 뭐야?"
그 시절엔 어려서 그 뜻을 잘 몰라 엄마께 물었다.
엄마는 "부모 돌아가시면 네 큰 오라비가 부모 대신이다."라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오빠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식도 아닌 동생들이 주렁주렁 바라보고 있었으니..,
엄마는 왜 그렇게 가르쳤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큰오빠가 키우거나 책임진 형제는 아무도 없었는데 왜 부담스럽게 그렇게 하셨는지 모르겠다.
오빠 어깨만 무거우라고..,
사실 부모님이 연세가 드시니 돌아가실 때까지 큰오빠가 모셨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수고로 부모님의 전재산도 큰오빠가 다 받았다.
엄마가 차근차근 오빠에게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인데 아무도 "내 몫 내놔!" 하는 동생들은 없었다.
다행히 재산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큰오빠의 수고를 알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