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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 며느리로 산다는 것

1화. 결혼

by 권에스더

봄이 되면 피부가 타기 시작을 해서 여름이면 절정을 이루다 장마 때 좀 하예지던 나였다. 피부는 어려서는 희었는데 중학교 때부터 새까맸다. 내 맘대로 해를 피하지 못할 때가 많아서였다.


그때는 선블록이 없었다. 몸은 말라서 볼품이 없었다. 한마디로 별로인 외모였다. 그럼에도 대학초부터 남편을 사귀었다. 늘 있다 보면 남편은 내 옆에 와있었다. 우리는 위말하는 CC였다.

일 년 이 년 사귀다 보니 결혼시기가 되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의 결혼은 힘들었다.

어머님의 명목상 이유는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라서였다. 그래서 대학시절 남편은 나에게 전도하려고 무진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내 눈에 남편은 광신자 같아 보여 싫었다.


내심 어머님은 내가 상냥하지도 않고 외모도 맘에 안 들어 반대를 하신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는데 우리 부모님은 중간에 우리 딸이 행복하다면 허락하겠다고 마음을 바꾸셨다.


어렵게 가 어머님, 아버님의 결혼 승낙이 있고 나자 상견례가 있기 전 아버님은 나에게 줄 결혼 예물을 준비해 주셨다.


곧 독일로 떠나야 하니 필요 없다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아버님은 "그게 그런 게 아니다!" 하시며 바쁘게 진행을 하셨다.


아버님은 보석방에 같이 가서 예물을 맞춰주시고 옷도 맞춰주셨다. 어머님은 예물 중 일부는 나와 같은 것을 같이 장만하셨다.

그동안 아들 키우느라 고생했다고 아버님이 해주신 것이었다. 아버님은 어머님의 옷도 구두도 골라주시는 분이었다. 그 시절엔 보기 드문 남편이었다.


옷은 디자인도 옷감도 마음에 들어 독일 갈 때 가져가 가끔 의 잔치 때 입었다.

그 당시는 개미허리라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O라인이다.


한복도 새색시라 색동 한복으로 마련해 주셨다.

이 한복을 독일에서 입었던 적이 있는데 동네양아치들이 휘파람을 불어 길가기가 쑥스러웠던 적이 있다.


아버님은 나에게 구두도 시주셨다.

까만 도마뱀가죽으로 된 것인데 옆라인이 V자로 파인 세련된 것이었다.

이렇게 나를 데리고 다니며 하나하나 준비해 주셨다. 아버님은 참 자상하신 분이었다.


다 준비가 되자 양가 상견례날을 잡았다.

우리 가족과 만난 자리에서 예물을 우리 부모님께 드리며 "이것은 며느리에 대한 사랑의 표시"라 하셨다.


감동스러웠다!

사랑받는다는 생각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물질만이 아니라 준비과정을 함께 해보니 제일 좋은 것을 주려하시는 마음이 느껴져 드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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