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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의 첫 캠핑, 여기도 우리 집이야.

강아지와 함께 한 첫 여행

by 정벼리

봄가을이면 일 년에 며칠 없는 좋은 날씨가 가버릴까, 부랴부랴 캠핑모드에 돌입한다. 호두를 가족으로 맞았다고 달라질 것이 있나. 지난 봄, 우리는 호두를 데리고 캠핑을 떠났다.


조금의 난관은 있었다.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아 몰랐었는데, 많은 캠핑장이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없도록 자체 규정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오토캠핑장 특성상 사이트 사이 간격이 그리 넓지 않으니, 반려동물을 동반할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요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캠핑장에 어린 자녀를 동반하는 집도 많고, 또 강아지가 밤중에 짖기라도 하면 소음 민원도 제기될 수 있을 테니까. 선천적인(?) 강아지 공포증을 안고 살아온 나로서는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당장 나만해도 캠핑장에서 옆집 강아지가 우리 사이트로 넘어온다면 혼비백산해서 텐트 밖으로 나가지도 못할지도 모른다.


아주 신중하게 캠핑장을 골랐다. 호두와 차로 장거리 이동은 처음이니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아야 하고, 강아지 동반 입장이 가능한 캠핑장이어야 했다. 그렇지만 얄궂게도 호두 말고 다른 강아지는 여전히 무서운 나로서는 '애견'을 주 테마로 내세운 캠핑장을 방문할 자신은 없었다. 선택지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면서 글쎄, 글쎄, 망설이기만 하는 나에게 남편은 애견캠핑장 한 군데의 사진을 내밀며 말했다.


"차라리 여기는 어때? 각자 사이트 내에서 강아지를 오프리쉬*로 풀어둘 수 있게 사이트마다 울타리가 쳐져 있으니, 다른 집 강아지와 오히려 마주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 오프리쉬(Off leash) : 목줄을 채우지 않고 강아지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두는 것


남편의 말도 일리는 있다 생각되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온 캠핑장의 사이트마다 죄 강아지가 있다니. 아무리 사이트마다 울타리가 있어도 화장실이나 개수대 가는 길에 산책 중인 다른 집 강아지를 마주치지 않을 재간이 없는데, 그때마다 소스라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내가 받을 스트레스는 차치하고, 나랑 마주친 강아지 보호자는 얼마나 황당하겠어. 기껏 애견 동반 캠핑장을 찾아왔더니, 다른 캠퍼가 강아지랑 마주쳐서 발작을 하다니.


결국 일반적인 캠핑장이지만 추가요금을 지불하면 강아지를 동반할 수 있는 캠핑장을 골랐다. 예약할 때에는 사이트 위치를 확정해주지 않고, 도착하는 순서대로 원하는 사이트를 배정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 가족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화장실과 개수대에서 가까우면서 다른 캠퍼들과 동선이 최대한 덜 겹칠 수 있는 끝자락 사이트를 선점할 수 있었다.




남편이 텐트 치는 동안 나와 아이는 호두를 데리고 아직 한산한 캠핑장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시작했다. 우리 사이트에서 큰길 건너에는 화장실과 개수대 건물이 있고, 그 위쪽으로는 매점과 캠핑장 주인집이 있는 건물이 붙어 있었다. 캠핑장 주인 부부도 하얀 푸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마침 강아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 주인아주머니와 마주쳤다. 하얀 푸들은 아기 강아지가 궁금한지 자꾸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싶어 했다. 그런데 호두는 주인집 푸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겁에 질려서 낑낑대며 나와 아이 뒤쪽으로 숨고 싶어 난리법석이었다.


자꾸만 코를 킁킁대며 다가오는 푸들 덕택에 나도 점점 다리가 굳었다. 꼬맹이가 겁이 많네, 하고 웃는 주인아주머니를 향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사이 아이가 앞으로 나섰다.


"호두가 아기 강아지라 겁이 많아요. 그리고 사실 저희 엄마도 다른 집 강아지를 되게 무서워해요."
"어머나, 엄마가 강아지를 무서워하는데도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게 해 주셨구나!"
"네, 맞아요. 그래서 저희 강아지는 제가 보호자예요."
"어유, 작은 아가씨가 아주 씩씩하네. 이따 매점 오면 아줌마가 아이스크림 하나 선물할게."
"우와, 고맙습니다!"


세상에 이런 효녀를 보았나. 아이는 그 뒤로도 캠핑장에서 강아지 보호자 노릇을 톡톡이 했다.




텐트가 완성된 뒤, 식사를 준비하며 둘러앉았지만 호두는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바깥에 나와있는 것이 좋은지 팔짝팔짝 뛰어다니다가, 나비를 보고 으르렁거리기도 했고, 옆 사이트에 새로운 캠퍼가 등장하자 가까이 다가갈 용기도 없으면서 멀찍이서 왈왈 짖어대기도 했다. 의자에 올려놓으면 내려달라 낑낑, 내려놓으면 다시 저도 무리에 끼워달라 낑낑. 강아지 한 마리가 추가되자, 캠핑은 전에 없이 정신이 없었다.


허둥지둥 대고 우왕좌왕하며 식사를 마치고 정리를 끝낼 때 즈음, 그제야 호두는 캠핑장에 적응이 되어가는 듯 아이 발치를 졸졸 따라다니며 주변을 탐색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무 둥치 아래 풀숲에 뛰어들어 땅바닥을 파바박 파보며 혼자 놀기 시작했다.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아이가 멀찍이 반대편 사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저 집엔 강아지가 두 마리예요!"


중형견 두 마리가 야전침대 위에 나란히 앉아 의젓한 자세로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아주 만렙의 자태였다.


"우와, 둘 다 캠핑 초고수인가 봐. 호두도 저만큼 얌전하게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부러운걸!"
"엄마, 쉿! 호두가 들어."
"엥? 뭐라고?"
"강아지들은 생각보다 똑똑하단 말이에요. 다른 강아지랑 비교하면 얼마나 속상하겠어."
"푸하하. 호두가 뭐가 똑똑해. 야, 쟤 이제 풀 뜯어먹는다."
"아까 매점 앞에서도 먹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먹어도 되는 돌나물이라 괜찮대요. 먹어도 되는 풀도 알아보고, 얼마나 똑똑한데!"


어휴, 제가 보호자라고 나서더니 강아지 역성도 아주 열심히 든다.


호두와 함께 한 첫 캠핑


호두는 캠핑장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텐트 안 공간이 아늑하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바깥에 좀 앉아있으려면 닫아 놓은 방충망 지퍼를 향해 머리를 부비며 열어달라고 보채고, 배변을 위해 캠핑장을 빙 둘러 걷다가도 우리 텐트가 보이면 어서 텐트로 돌아가자고 우다다다 달리기 시작했다. 텐트도 우리 집인걸 알고 있는 듯 했다.


밤에는 온 가족이 한 공간에서 함께 잠드는 것에 퍽이나 신이 난 것 같았다. 한쪽 구석에 강아지 방석을 깔고 푹신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음에도, 몇 번이고 제 방석을 뛰쳐나와서 가족들이 누운 침낭으로 뛰어들어와 나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평소에 텐트 가장 구석자리는 외풍 때문에 남편이 눕고, 가운데에는 아이가, 그 옆으로 내가 눕곤 했는데, 호두의 기습공격 때문에 잠자리도 바꿨다. 내가 구석에 눕고, 가운데엔 남편이, 그 옆으로 아이가 누워 호두와 함께 잠을 청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이가 먼저 잠들었고, 호두도 이불 바깥으로 고개만 내민 채 모로 누워 자울자울 잠들어가고 있었다. 퍽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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