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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병일기, 중성화 수술을 마쳤습니다.

나도 내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by 정벼리

호두가 중성화 수술을 했다. 수술 한 달 전부터 동물병원에서는 개월수도 찼고, 몸무게도 충분히 나가게 되었으니 첫 발정기를 겪기 전에 중성화 수술 스케줄을 잡자고 권해왔다. 호두는 암컷 강아지인데, 생후 6개월이 지나고 몸무게가 2kg이 넘으면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발정기를 겪고 나면 장기의 크기가 발정기 전보다 커져 수술부위가 커질 수 있으니 가급적 발정기 전에 수술을 권한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몇 주 뒤 아이가 방학을 맞으면 며칠간 집을 비울 예정이었다. 호두가 집에 오기 전부터 계획된 여행계획이었는데, 강아지를 데려갈 수 없는 곳이라 우리 가족은 애견호텔 이용을 고려하고 있었다. 집 근처 애견호텔에서는 중성화 수술이 이루어진 강아지만 숙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어차피 해야 할 수술이니, 눈 딱 감고 해치워버리기로 마음먹고 일정을 잡았다.


수술 예약을 하고 병원을 나오던 길에 아이 품에 안긴 호두와 눈을 맞추고, 괜찮아, 좀 아파도 하는 게 너에게도 좋대, 중얼거리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두는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만 갸우뚱했다. 마치, 뭐라고 하는 건지 나는 잘 못 알아듣겠어,라고 말하듯이.


집에 돌아가서는 수술 준비를 하나씩 시작했다. 플라스틱 투명 넥카라와 폭신한 쿠션형 넥카라를 종류별로 구비했고, 호두 사이즈에 맞는 환견복도 준비했다. 수술 부위를 강아지가 핥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들이다. 수술 후 먹이기 위해 죽 형태의 회복식도 준비했고, 기운 나게 하기 위해 캔에 든 강아지 전용 햄도 준비했다. 구매후기에 강아지들이 아픔도 잊고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며 평점이 아주 높은 상품들이었다. 수술 후 소독솜과 약 등은 병원에서 챙겨준다고 하여 따로 준비할 것은 없었다.




수술날 오전에 호두를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간단한 진료 후 호두는 수의사 선생님 품에 안겨 진료실 뒤 쪽 입원실과 수술실이 있는 공간으로 향했다. 예방접종 때도 몇 번 와본 병원이었지만, 오늘은 주사로 끝날 일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예감한 것처럼 호두는 끼이이잉, 불만과 불안이 반반 섞인 울음소리를 남기고 들어갔다.


수술은 20분 내외로 간단히 끝나지만, 마취가 깰 때까지 입원시켜 병원에서 지켜보며 관리하는 것이 좋으니 서너 시간 뒤에 데리러 오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더 할 일이 없었다. 집에 와서 깨끗이 청소를 하고, 호두의 방석과 헝겊 장난감들을 깨끗이 빨아 건조기에 돌렸다.


그날 오후, 호두는 아직 마취가 완전히 깨지 않은 듯 자울자울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는 자꾸 제 몸을 숨겼다. 하우스도 방석도 마다하고, 자꾸만 소파 뒤 10센티 남짓한 공간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어가 잠을 잤다. 한 번씩 뒤척이면 많이 아픈지, 소파 뒤에서는 깨앵, 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배를 꿰맨 강아지를 안아 들을 수도 없고, 가족들은 소파에 나란히 무릎으로 올라 틈새 위로 호두를 바라보며 울상만 지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아픈 호두가 배변판에 소변을 보겠다고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오는 모습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재빠르게 움직였다. 아이는 강아지 회복식을 밥그릇에 담아와 호두에게 들이댔다. 남편은 소파를 30센티 정도 앞으로 끄집어내서 호두가 쉴 공간을 넓혀줬고, 나는 그 사이 청소기를 가져와 소파 뒤를 깨끗이 치웠다.


호두는 깨앵 깨앵, 소리를 내면서 회복식을 잘도 먹었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옳지 옳지, 연신 칭찬을 받았다. 죽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워낸 호두는 가족들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더니, 더는 소파 뒤로 몸을 숨기지 않고 거실 한복판 제 방석 위에 몸을 뉘었다.


넥카라사진그림.jpeg 환견복을 입고 넥카라를 착용한 호두


그때부터였다. 호두 녀석이 자리 보전하고 누워 가족들을 부려먹기 시작한 것은.


호두 녀석은 가족들이 아픈 저를 안쓰럽게 여겨 평소보다 너그럽다는 것을 간파한 것 같았다. 가족 중 누구라도 제 곁에 한 명 이상이 붙어서 쓰다듬어주기를 바랐다. 아무도 다가가지 않으면 방석에 누운 채 사람이 올 때까지 깨앵, 울었다. 고작 다섯 걸음 앞에 강아지 정수기 정수기와 사료 급식기가 놓여있음에도, 제 방석 앞에 따로 물그릇과 밥그릇을 대주지 않으면 물도 밥도 먹지 않았다. 게다가 회복식이 꽤나 맛있었는지, 하루 이틀 지나 일반 사료를 주니 입에도 대려 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애가 타서 사료를 한 알 한 알 손으로 입에 넣어주면, 그제야 모로 누운 채 마지못해 받아먹었다.


이 똥강아지 녀석이 아프다고 오냐오냐 해주니까 아주 끝이 없었다. 이틀 정도 수발을 들어주다가 남편과 나는 아 몰라, 호두 수발 손절(?) 선언(??)을 했다. 딸아이는 애절한 눈빛으로 호두 역성을 들었다.


"엄마 아빠, 호두는 아픈 강아지란 말이야. 보살핌이 필요해요. 좀 봐주세요."


아이가 제 편을 들어준다는 것을 아는 듯, 호두는 방석에 누운 채, 깨앵, 하고 제 녀석이 아픈 강아지라고 어필을 해왔다.


그 성화에 못 이겨 한동안 환부가 아물고, 넥카라를 벗을 때까지 돌아가며 호두 사료를 손수 먹여주었다. 어휴,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나 원래 강아지 안 좋아하는데. 다 낫고 나면 이 똥강아지, 그땐 국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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