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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카드를 잃어버렸어요

아직은 어린 너, 그리고 매일 자라나는 너

by 정벼리

요즘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우리 아이도 서너 개의 학원을 다니고 있다. 한동안은 학원비를 계좌이체로 결제했는데 이것도 쌓이고 보니 아쉬움이 있었다. 우선 학원 업종에서 결제되는 금액에 대해 적용되는 카드사의 청구할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연말정산을 생각해 봐도 카드 결제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비를 결제하겠다고 매달 학원들을 한 바퀴 돌 수는 없는 노릇이라, 몇 달 전부터는 아이에게 카드를 주어 학원비를 결제하도록 했다. 두세 달 정도 별문제 없이 카드로 학원비를 납부했다.


그런데 지난주에 드디어 사고가 터졌다. 하교 후 미술학원에 도착했을 무렵에 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미술학원비를 결제하려고 카드를 찾는데, 가방을 아무리 뒤져도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나. 다시 한번 가방 구석구석을 잘 뒤져보라는 심드렁한 나의 대답에 아이는 쩔쩔매며 말했다.


"미술학원 선생님이랑 가방 거꾸로 뒤집어서 전부 살펴봤는데도 없어. 아무래도 내가 잃어버렸나 봐. 흑..."


울먹거리는 말투에 일단 괜찮으니 수업 들으라고, 선생님께는 엄마가 원비 따로 납부한다고 말씀드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곧장 카드사 앱을 열어 분실신고와 재발급신청을 했다. 그리고 이어 은행 앱을 통해 학원비 계좌이체까지 마치고, 잠시 아이 일은 잊어버렸다. 사고가 안 났으니 다행이고, 저녁에 앞으로는 잘 간수하도록 일러주면 될 일이라고 여겼다.




몇 시간 뒤, 학원 끝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집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날도 추운데 연락도 없이 밖에서 뭐 하냐며, 문자를 보는 즉시 엄마에게 연락하라는 타박을 메시지로 남겼다. 그리고 패밀리링크를 통해 아이의 위치를 들여다보니, 아파트 단지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대체 집에 안 가고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뒤, 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 전화도 안 받고, 밖에서 뭐 하고 놀고 있냐는 물음에 울먹거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카드를 길에 떨어뜨렸나 싶어서, 집 앞에서부터 학교에 갔다가 다시 학원까지 가보며 길을 둘러봤는데 카드가 없어요. 누가 주워간 것 같아요."
"별이야, 추운데 안 찾아도 돼. 그냥 집에 가."
"누가 카드를 주워서 1억짜리 보석을 사버리면 어떡해요? 그럼 우리 집은 어떻게 먹고살아요. 엉엉..."
"엄마가 이미 분실신고 했지. 그리고 엄마 카드로는 하루에 1억은커녕 1천만 원도 안 긁혀. 얼른 집에 가."
"엄마, 정말 죄송해요."


아이는 전화기 너머로 오열을 했다. 혼자 마음고생을 했구나 싶어 짠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한참 다 큰 것 같다가도, 한 번씩 이렇게나 아직 어리고 순진한 모습을 보여주어 나를 웃긴다.




오늘도 엄마는 아이를 쑥쑥 키워야 하기에, 퇴근 후 진지한 대화의 장이 열렸다. 오늘의 해프닝도 성장의 계기로 삼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카드는 어떤 구조로 결제가 되는지, 카드의 한도금액은 무엇이고 적정 한도는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맞는지, 카드를 왜 잘 간수해야 하는지, 부득이 잃어버렸을 때에는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가방에 중요한 물건을 넣을 때에는 어떻게 넣어야 분실위험을 줄이고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지 등등. 엄마의 입장에서는 교육이라 부르고, 아이의 입장에서는 잔소리 폭탄이라 부를 수 있는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났다.


아이는 한숨을 폭 내쉬며 말했다.


“엄마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걸 보니, 다음에 또 잃어버리면 진짜로 엄청 혼날 거 같아. 어쨌든 미안해요.”


음…? 뭔가 찝찝하지만, 그래.

어쨌든 다음부턴 조심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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