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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들지 못했던 가방

내 가방에 내가 없다 3화

by 김수다

“걔랑 있으면 내가 공주가 된 것 같다니까.”

대학교 2학년 때 만났던 동갑내기 그 친구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얼굴도, 목소리도 흐릿하지만 가끔 작은 액세서리나 양말 같은 귀여운 선물을 수줍게 내밀던 모습만은 또렷한 남아있는 그 사람.

만난 지 1년쯤 되었을 때였을까. 난데없이 가방을 사주겠다고 했다.

당시에도 명품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보통은 부모님이 사주신 것이었지만 남자친구에게 선물로 받았다고 자랑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가방 선물 같은 건 안 해줘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었다.

어떤 가방을 사주려는 걸까. 너무 내 속이 드러나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혹시라도 갖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면 냉큼 대답을 해야 할지, 그래도 한 번 더 거절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선물 받은 가방 사진을 올리는 상상은 겸연쩍으면서도 신나는 일이었다.

지금껏 그런 선물 없이도 잘만 지내왔는데, 아르바이트하며 힘들게 모은 돈으로 선물을 산다는 건 나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뜻일 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나를 사랑하는 만큼 더 큰돈도 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겨버렸다. 마치 금세 부풀었다가 터져버리는 풍선처럼.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학교 앞으로 나를 만나러 온 남자친구는 대뜸 커다란 쇼핑백 하나를 내밀었다. 고민 많이 하고 골라온 가방이라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화려한 장식이 많은 회색 가죽 가방.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내가 기다렸던 브랜드도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가방은 고맙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그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한참을 바라봤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20만 원쯤이나 하는 가격을 보고 미안함에 마음이 쓰렸다. 내가 뭐라고, 나를 위해 이렇게 큰돈을 쓰다니.

그러다 문득 서운함이 몰려들었다. 이왕 사줄 거 내 마음에 드는 걸로 사주지, 나한테 한 번이라도 물어나 보지. 나도 친구들에게 비싼 가방 선물 받았다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스물두 살 아가씨가 선물로 받았던 가방은 사랑의 크기와 무게를 재는 저울이었다.

선물의 가격이 나의 가치와 비례한다는 어리석음과 선물의 크기로 애정의 크기를 잴 수 있다는 허영심을 담은 채 결국 나는 그 가방을 한 번도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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