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속 이야기 5화
진정한 여자가 되고 이런 걸 다 떠나서 생리는 너무나 귀찮은 것이다.
일단 생리가 시작되기 전부터 불편하다. 얼굴에 뾰루지가 생기고 가슴이 빵빵해진다. 아랫배가 사르르 기분 나쁘게 묵직해진다. 이유도 없이 짜증이 나고 예민해진다. 생리가 시작되면 이 복잡하고 못마땅한 감정은 절정에 이른다. 단순히 생리통 때문만은 아니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챙겨가야 하는 생리대도 귀찮다. 울컥 나오는 생리혈이 느껴질 때의 불쾌감이란. 괜히 울적해지고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는 식욕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난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는 “나 그날이야!”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30년 동안 거의 매달 해온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운 것.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고,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많은 여자들의 생리 이야기를 들으며 살고 있어도 여전히 생리는 귀찮고 싫은 것이다.
생리에 대해 가장 싫은 것을 뽑자면 제 때 오지 않는 생리가 아닐까. 여자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정확히 들어맞는 생리예정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편한 일인지. 중요한 일정을 조절할 수도 있고 여행 날짜를 정할 때에도 마음이 편하다. 배란일도 예측할 수 있다. 규칙적인 생리를 하는 경우, 다음 생리 예정일의 14일 전이 배란예정일이다.
최근 1년 간 생리날짜를 계산해서 고심한 끝에 결정한 여행일정이었는데, 이 심술 맞은 생리가 며칠씩 날짜가 미뤄지고 당겨지더니 연달아 몇 번이나 여행과 겹쳐 물놀이를 못 하게 되자 남편은 핀잔을 했다.
“넌 산부인과 의사나 돼가지고 이런 것 한 번을 못 맞추니?”
“여보가 이번 달에 날 속상하게 해서 내가 스트레스받아서 이렇게 꼬인 거잖아.”
그렇다. 스트레스도 불규칙한 생리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방학이 되면 엄마와 함께 생리 불순으로 산부인과를 찾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초경시기와 그 간의 생리 양상을 확인하고 초음파 검사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엄마와 아이의 심각한 얼굴이 민망할 정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크느라 고생하는 거라고, 호르몬이 변하면서 우리 몸도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에서는 생리를 조절하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체계가 성숙되어 안정되기 전까지는 8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보통 12세 전후로 초경이 일어나니 20살, 진짜 성인이 될 때까지는 얼마든지 불규칙할 수 있다.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지만 몸 안에서 혼란스러움이 안정을 찾아가는 시간이 무려 8년이나 걸리는 것이다. 생리는 때가 되면 저절로 일어나는 성장과정의 일부이지만 여자는 이 고통과 불편함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다 큰 어른도 불규칙한 생리 때문에 산부인과를 찾는다. 흔하고도 어려운 질환인 다낭성난소증후군, 스트레스, 과한 다이어트와 급격한 체중증가, 약물 복용, 생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호르몬들의 이상(갑상선호르몬이나 유즙분비호르몬 등) 등 다양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초음파 검사와 함께 혈액검사가 필요하기도 하다.
생리는 얼마든지 불규칙할 수 있다. 안 할 수도 자주 할 수도 있다. 다만 너무 잦은 생리는 빈혈을 일으킬 수 있고 생리대 사용으로 인한 외음부 불편감이 생길 수 있어 진료가 필요할 수 있다. 3개월 이상 생리가 없을 때에는 자궁내막증식증 등의 확인을 위해 반드시 병원에 내원하도록 한다.
생리할 때가 다 되었는데도 생리할 것 같은 조짐이 없으면 시험이나 여행처럼 중요한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봐 불안해진다. 피임약을 복용하면 생리주기를 조절할 수 있으니 중요한 일정이 있을 때에는 1-2개월 전에, 최소 2주 전에 병원에 내원하여 상담을 받으면 된다.
예정된 날짜가 지나도 생리가 없으면 임신을 걱정한다. 딸의 생리가 없어서 함께 내원한 엄마들 중에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임신한 건 아니겠죠?’라고 입을 소리 없이 뻥끗거리는 엄마도 있다. 생리가 몇 달째 없어서 병원에 왔다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어른들도 많다.
제멋대로 찾아오는 생리 때문에 폐경이 다가오는 건 아닌지 씁쓸한 표정으로 진료실을 찾아오는 여자들도 있다. 그리 귀찮았던 생리도 앞으로 영영 만나지 못할 거라 상상하면 자연스러운 노화과정에도 괜스레 슬퍼지는 것이다.
매달 찾아오는 귀찮음이 내 몸의 질서를 확인시켜 준다.
여자는 일정하고 규칙적인 일들이 자유로움을 준다는 아이러니를 품고 산다. 그날이 오지 않아도 걱정이고, 그날이 왔다고 짜증을 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