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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 없는 나의 가방

내 가방에 내가 없다 7화

by 김수다

그저 하루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그런 날. 유난히도 길었던 토요일이었다.

해지기 전부터 외식을 졸라대는 남편과 아이 덕에 우리 세 식구는 밖으로 나왔다. 아직 거리는 환했고, 파란 하늘과 붉게 물든 구름, 어느 집에서 풍겨오는 짭짤한 요리냄새, 낮보다는 한결 선선해진 공기가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는 다독임 같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네 단골 고깃집, 콸콰알콸스르르치익- 한숨에 들이켠 쌉쌀한 맥주 한 잔에 고단함을 씻었다.



엄마로 사는 여자들에게 주말은 직장이 아닌 집으로 출근을 하는 날이다.

의무의 공간, 대가 없는 일터. 차라리 돈이라도 받는 직장이 나을 수도.

쌓여 있는 빨래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색종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남편의 야식 흔적. 모든 것이 내 손길만 기다린다. 엄연히 쉬는 날인데 쉴 틈이 없다.

눈 밑의 다크서클이 내 마음 같고, 주부습진으로 건조하고 까슬거리는 손끝이 내 기분 같다.


“다 익었다.” 남편이 아이의 접시 위에 고기를 놓아준다.

아이는 아이대로 조잘거리고, 남편은 남편대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하소연한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쉬지 않고 말을 하느라 먹는 걸 깜빡한 아이에게 밥에 계란찜을 비벼주며 한 입 먹고 말해,라고 잔소리를 했다.

가끔 남편의 말이 쉬는 틈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고기를 씹었다. 오늘따라 고기가 맛이 있는데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다.

아이가 이에 뭐가 끼었다며 손가락을 입속으로 가져갔다. 후다닥 가방에서 치실을 꺼내 주고 물티슈로 손을 닦아주었다.


별게 다 있는 내 가방. 텀블러, 물티슈, 티슈, 머리끈, 치실, 밴드, 작은 안연고와 소독솜, 손톱깎기, 종이비누와 손소독제, 책 한 권과 작은 장난감, 혹시라도 아이 이가 빠질까 봐 멸균거즈도 한 장까지.

“거기 입 옆에 뭐 묻었어. 거울 좀 봐봐.”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남편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 거울 없는데.“ 급한 대로 휴대폰 카메라를 켜서 얼굴을 살핀다. 여전히 눈밑은 까맣고 립스틱 하나 챙기지 못해 입술이 허옇다.

“가방에 그렇게 많은 게 들어있는데 거울은 없어?”

길거리 가게 유리창에 비치는 우리 가족. 아빠 손을 잡고 깡총거리는 아이와 뒤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엄마인 내가 보인다.

좀처럼 나를 볼 일이 없어 거울은 필요 없었을 뿐인데.


괜히 가방을 열어 속을 들여다본다.

내 물건 하나 들어 있지 않은 내 가방이다. 오늘따라 옷에 고기 냄새가 유난히 많이 베인 듯하다.


<함께 하는 작가들>

지혜여니 https://brunch.co.kr/@youni1006

따름 https://brunch.co.kr/@blueprint22

다정한 태쁘 https://brunch.co.kr/@taei2411

김수다 https://brunch.co.kr/@talksomething

바람꽃 https://brunch.co.kr/@baramflower-jin

아델린 https://brunch.co.kr/@adeline

한빛나 https://brunch.co.kr/@growdream

새봄 https://brunch.co.kr/@spring-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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