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방에 내가 없다 8화
아이의 세 돌이 지나고, 나는 임신과 육아로 미뤄두었던 전공의 수련을 시작했다. 지금은 수련환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 대학병원의 레지던트는 이름 그대로 병원에 사는 사람이었다. 공식적인 출근시간보다 1-2시간 일찍부터 일과를 시작해야 했고 응급환자가 있거나 수술이 늦게 끝난다는 이유로 퇴근시간이 지켜지는 날도 거의 없었다. 주말에도 어김없는 출근과 주 2-3회 병원을 지키며 환자를 돌보는 밤샘당직근무까지 있었던터라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하고 상의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남편 역시 주말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바빴기 때문에 무엇보다 아이 돌보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 시급했다. 결국 내가 일에 적응하고 우리 생활이 안정이 될때까지 남편이 퇴사하는 것으로 결정했고, 이 때 먼저 제안을 한 건 친정엄마였다. 아마도 의사 딸래미가 일도 안하고 집에서 애만 키우는것이 안타깝고 속상했던 엄마의 한풀이가 아니었을까.
”너 일한다고 류서방 일 못하게 하는 건 말이 안되지. 류서방도 한창 일할 나이고 너네도 지금 돈 많이 벌어놔야지. 엄마가 도와줄게.“
그렇게 엄마는 우리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아이 놀이방으로 쓰던 방을 치우고 침대와 티비를 급하게 사서 엄마방으로 꾸며 내어드렸다. 엄마와 함께 살게 될 4년, 짧기도 길기도 한 시간, 친정부모님께는 고마움보다 죄송한 마음이 컸지만 15년이 넘게 따로 살았던 엄마와 같이 살면 좋은 추억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내가 번 돈으로 커피도 마시고 같이 미용실도 가고 쇼핑도 갈 생각에 조금은 신나기도 했다. 가로등도 희미한 시골에 사는 엄마가 도시 생활에 재미를 붙이시도록 운동도 등록해드리고 엄마의 고등학교 동문 합창단 활동도 하실 수 있게 알아봐 두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딸은 엄마와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내 모든 제안을 거절하셨다. 게다가 아이가 낮잠을 안자게 되면서 어린이집 하원시간이 빨라져 엄마가 자유시간을 갖기가 어려워지셨다. 가사도우미 이야기도 몇 번이나 꺼냈지만 엄마는 남이 집에 오는 것이 싫다며 한사코 마다하셨다. 그렇게 시골에 아빠를 혼자 두고 올라온 엄마는 손녀의 양육과 집안일까지 모두 맡게 되셨다.
엄마에게는 미안했지만 엄마 덕분에 마음 놓고 일 할 수 있었다. 아직 어린 내 딸을 나만큼 사랑해주고 아껴줄 사람은 외할머니가 유일하다고 믿었으니까. 나보다 요리도 잘하고, 더 부지런하고, 더 다정한 할머니니까.
그렇게 친정엄마와 4년을 같이 살았다.
긴 시간 오래 떨어져 살았던 탓인지 서로의 살림살이가 많이 달랐다. 청소방법, 침구세탁주기, 냄비와 그릇 위치, 좋아하는 간장 브랜드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맞는 게 없었다. 쉬는 주말 데이트 신청에도 피곤한 딸 한숨 더 자라고, 힘들게 일해서 번 돈 쓰지 말라며 무조건 싫다, 안한다 하시는 엄마에게 서운함만 쌓였다. 아이가 가끔 투정이라도 부리면 할머니가 오냐오냐해서 그런건 아닌지 엄마로서의 권위가 흔들리는 건 아닌지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평소 회식이 잦고 친구를 좋아하는 사위는 장모님 눈치 때문에 맘 편히 술 한 잔 못한다 불만이었지만 엄마는 사위가 음주를 너무 좋아한다며 걱정하셨고, 남편은 장모님이 불편해 내가 일하러 간 주말에는 늘 외출을 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이 모두 답답했다.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빨래며 화장실 청소도 하려고 했지만 이미 엄마가 우리 부부가 사용하는 화장실청소까지 모두 해두셨고, 그럴 때면 나는 식모처럼 일만 하는 엄마가 미웠고, 매일 늦게 와서 집안일 하나 안하는 남편이 미웠다. 가끔 남편과 다투기라도 하는 날에도 엄마에게 고스란히 들통이 났고, 우리 집 근처의 작은 아파트 월세는 얼마쯤 하는지 알아보는 때가 잦아졌다.
가끔 친구 만나러 가실 때라도 ‘우리 딸이 사준거다’ 자랑 좀 하시도록 좋은 가방 하나 사러 나가자고 해도 엄마는 늘 싫다고 하셨다. 십년도 더 된 가벼운 나일론 소재의 보라색 가방만 들고 다니셨다. 그 가방도 내가 사준거였지만 어찌가 그 가방 꼴보기가 싫던지.
딸네집에서 아이 봐주러 올라와서 같이 사는 엄마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대접도 받고 즐거워 보였으면 했다. 저 집 딸은 엄마를 끔찍히 챙겨, 저 엄마는 딸이 저렇게 다 해준대, 살갑지 않은 딸이었지만 그런 말 듣고 싶은 욕심은 있었다. 저 집 딸은 자기만 꾸밀줄 알고 엄마는 매일 후줄근해, 이런 말을 들을까봐 괜히 엄마의 옷장을 몰래 열어보기도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4년이 지나고 본가로 다시 떠나는 엄마의 짐은 단촐했다. 여전한 그 보라색 가방과 쇼핑백에 담긴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다.
나는 엄마에게 지갑을 선물했다. 까탈스러운 엄마의 취향을 맞출 자신도 없고, 비싼 가방 샀다는 잔소리도 듣기 싫었다. 평생 단정함이 최고라며 수수한 차림이었던 엄마를, 굳이 내 마음 편하자고 바꾸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대신 용돈 두둑히 넣은 지갑으로 엄마의 가방을 든든하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가 지갑을 열 때마다 내 생각을 할까.
마흔이 넘은 다 큰 딸이지만 언제나 엄마의 가방 속에 함께 하고 싶다는 어린 마음을 엄마가 알아줄까.
나는 엄마의 보라색 가방에 그렇게 나를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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