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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본업

여자의 속 이야기 7화

by 김수다

딸아이가 생리를 시작하게 되면 걱정거리가 하나 늘어난다. 아이의 생리는 규칙적인지, 생리통이 심하진 않은지, 몸의 변화에 대해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리대 뒤처리는 잘하고 다니는지, 그리고 혹시 남자친구가 생기지는 않는지까지. 옛 어른들의 ‘아들엄마는 아들 고추 하나만 걱정, 딸엄마는 온 동네 고추 걱정’이라는 주책맞은 말씀이 그저 웃기지만은 않은 때가 되는 것이다.


2024년 우리나라 청소년 건강행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5만 4천여 명의 중고등학생 중 6.4%가 성관계 경험이 있으며 첫 성경험의 시기는 평균 13.6세라고 한다.

청소년의 성생활은 정확한 성교육과 자기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경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염려가 된다. 피임에 대해 알지 못할 수 있고, 알더라도 콘돔 사는 것이 부끄럽고 산부인과 가는 것이 어려워서 제대로 피임을 못할 수도 있으며 이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성병에 대한 노출 위험성도 큰데,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임신을 계획할 때에 난임이라는 슬픈 후유증으로 남을 수 있다. 게다가 이 성경험이 과연 정말 원해서 그리 된 일인지, 누군가의 강요나 협박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범죄와의 연관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이후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남아 몸과 마음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나 역시 딸 키우는 엄마, 산부인과 의사로서 이런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늘 고민이 된다. 그래서일까. 진료실에서 접수창에 10대 환자들이 보이면 일단 긴장부터 된다.



그날도 그랬다.


뽀얀 피부, 까만 긴 생머리, 여느 고등학생들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해 보이는 앳된 얼굴의 17살 여학생이었다. 보호자도 없이 혼자 진료실로 들어온 그 아이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블랙 롱패딩과 잠옷으로나 입을 법한 수면바지를 입고 왔다. 패딩의 한쪽 어깨가 훌렁 내려와 가슴팍이 훤히 보이는 걸로 봐서 속옷만 입고 옷도 입지 않은 채 겉옷만 입고 온 모양이었다.

무슨 일로 병원에 왔냐고 물으니 지난밤에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시도하다가 피가 났다고 했다. 피가 나는지 확인해 보자고 하니 대뜸 팬티를 안 입었단다. 지금 보니 추운 겨울에 슬리퍼 차림이다. 양말도 짝짝이, 게다가 한쪽은 발바닥 쪽 재봉선이 발등에 있는 걸 보니 양말도 급하게 뒤집어 신은 것 같았다.


“저는 어제 처음이었는데요. 진짜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남자친구가 손가락을 넣었는데 피가 나더라고요. 그게 정상이에요? 제가 질이 작아서 그래요?“


아무리 내가 생판 모르는 남이고 산부인과 의사라도 어린 여자아이가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이 아이의 말에 깜짝 놀라는 나의 모습에도 놀랐다. 산부인과 의사노릇한다고 쿨한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는 꼰대 어른이네, 싶어서 말이다.


그 아이는 다리를 벌리고 누워서도 계속 질문을 했다.


“저 왜 피난 거예요? 제가 이상한 거예요? 남자친구가 앞이 아니라는데 질이 원래 그렇게 뒤에 있어요? 생각보다 엄청 뒤에 있나 봐요? 대체 어디다가 해야 해요? 처녀막은요?”


17살 그녀는 피가 난 게 무섭고 걱정되었던 것이 아니라 ‘첫’ 경험을 제대로 못한 것이 억울한 것 같았다. 질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하려다가 실패한 속상함과 처녀막의 온전함을 묻는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설명하기 어려운 좋지 않은 감정들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귀가가 늦어지는 딸을 뜬 눈으로 가슴 졸이며 기다렸을 그 아이의 엄마가 상상되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누군가에게 나의 성생활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성과 관련하여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이성에 대해 반감을 가질 일도 없었는데 말이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늘 비밀스러웠고 밖으로 드러내면 안 되는 금기였다.

나는 혼전순결의 찬반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을 만큼 성에 대해 보수적인 시대에 성교육을 받고 자랐다. 여고시절, 친구들과 함께 결혼하기 전까지는 성관계를 하지 않겠다는 혼전순결서약서를 썼다.

엄격한 부모님에게 성에 대해 이야기를 할 필요도, 기회도 없었다. 해지기 전이 나의 통금시간이었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숨긴 적은 없었지만 부모님의 눈이 항상 날 따라다니는 것만 같았다.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자존심이 상하거나 편견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쉽게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어쨌든 나 역시 딸 가진 엄마다. 혼전순결서약서를 쓰게 할 생각은 절대 없지만 우리 딸의 훗날 어떤 연애를 상상하면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밑에만 봐도 해봤는지 안 해봤는지 알 수 있다고. 산부인과 의사가 되고 나니 확실히 알겠다. 밑에만 본다고 해봤는지 안 해봤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걸. 내가 알 방법은 없겠지만 우리 딸도 조금 더 크면 아마 친구들끼리 이런 얘기를 속닥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우리 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엄마가 뭐 하는 사람인 줄 알지?“


”엄마? 엄마잖아.“


난데없는 질문에도 잘만 대답하는 우리 딸이다. 그래, 엄마는 젊고 어린 여성들에게 콘돔사용과 피임법에 대해 시원시원하게 말해주는 공감과 이해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 음흉한 속뜻과 딸에 대한 불안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엄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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