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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에 가려진 순결

여자의 속 이야기 8화

by 김수다

“관계 경험 있으세요?”


산부인과에서는 질 안을 벌려 살펴보거나 검사 기구를 질 내로 넣어야 할 때가 있는데 이러한 검사 과정에서 처녀막이 손상될 수 있어 검사 전에 일반적으로 확인하는 질문이다. ‘당신의 처녀막이 온전한 상태입니까?'의 완곡한 표현. 하지만 아무리 산부인과 의사의 질문이라 하더라도 성생활이라는 게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부분이라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질문을 하는 나조차도 그러하니까.


‘처녀‘

나는 항상 저 단어가 불편했다. 성경험의 유무와 함께 순결이라는 대단한 가치를 단단히 묶어두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처녀’는 사전적으로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 아가씨와 같은 뜻이지만 왠지 성경험이 없는 여자라는 의미로 들린다. ‘숫처녀’라는 단어도 있지만 남의 성경험 유무를 저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무례한 단어는 사용하고 싶지 않다. ‘처녀작’처럼 어떤 일을 처음 할 때나 손대지 않은 순수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굳이 ‘처녀’라는 접두사를 사용해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처녀’라는 단어가 불편한 건 내가 엉큼하고 음흉해서일까.



여자의 질 입구를 둘러싸고 있는 말랑말랑한 부분을 처녀막이라고 한다. ‘막’이라는 단어가 마치 질 입구를 다 막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질 입구가 막혀 있다면 생리혈도 배출되지 않고 성관계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막을 열어주는 치료를 해야 한다.

처녀막은 사람마다 모양과 양이 다르며 성관계, 과격한 운동이나 외상과 같은 자극에 의해 찢어질 수 있다.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오니 속옷에 피가 묻었다는 아이들도 있고, 처녀막 조직의 양이 적은 사람은 어찌해도 피가 안 날 수 있다.

피가 안 난다고 처녀막이 없는 사람, 순결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으며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도 아니다. 그 작은 조직은 처녀의 상징이 되지 못한다. 2020년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집에도 ‘처녀막’이 아니라 ‘질입구주름’로 용어가 변경된 것도 그러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나의 첫 경험, 나 역시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는 의아해했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너 정말 처음 맞아?”




‘순결’은 무엇일까.

결혼할 때까지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나만 알고 남들은 아무도 모르면 그만인 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는 몇 명이라도 괜찮은 것일까. 이쯤 되면 ‘순결’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탁하고 ‘사랑’도 참 얄팍하다. ‘사랑’이 몇 분내 외의 어떤 몸짓으로만 충족되는 그런 욕구가 아닐 텐데 말이다.


연애도 해보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본 이 40대 아줌마에게 ‘순결’은 어떤 의미일까.


어쩌다 보니 벌써 결혼한 지 15년이 되었다. 즐겁고 재밌었던 순간이 더 많았지만 투닥거릴 때도 있었고 동네 창피하게 소리 지르며 싸우던 날도 있었다. 이제는 서로의 일상보다는 아이 교육과 부모님의 건강이 우선이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었던 그때의 열정은 꿈처럼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며 함께 겪었던 우여곡절이 우리를 단단하게 해 주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기대할 일도, 실망할 일도 많지 않고 뜨겁고 애틋했던 그때의 감정이 그립지도 않다. 그저 모든 것이 소중한 추억으로 마음에 남아있다.

긴 시간 내 곁을 지켜 준 내 사람이 보여주는 장난과 미소에 일상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

상대를 향한 존중과 감사, 함께 쌓아 온 시간에 대한 책임을 경건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이것들을 앞으로도 지키고 싶을 만한 가치라고 여기는 것,

나 역시 그 사람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자 하는 노력하는 것,

무엇보다 나의 그러한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것,

나의 ‘순결’은 이런 것이다.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열렬히 사랑하는 젊은 연인들에게도 이 ‘순결’을 말해주고 싶다.

단순히 성기의 결합만으로 ‘순결’을 말하기에는 사랑이 너무 가볍지 않은가. 지조와 절개를 품은 마음을 귀하게 여기기를 바란다. 더 이상 처녀막에 순결을 가리지 않았으면 한다.




“관계 경험 있으세요?”


이 질문이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와의 마음의 관계, 몸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와 함께 있을 때 나와 나의 관계가 소중하다면, 그것이 진짜 순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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