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11월 두 번째 토요일
“여보, 왜 화장실 물을 안 내렸어? 근데 여보 똥 많이 쌌네.”
연애 3년, 결혼 12년. 이 남자와 함께 한 시간이 15년이다.
지금까지 별의별 일들을 함께 겪었지만 그래도 남편에게 지키고 싶은 선이 있었다.
원초적이지만 어색한 것.
자연스럽지만 불편한 것.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들키고 싶지는 않은 것.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이마저도 무너지면 안 된다는 절규다.
우리 부부 사이에 남녀로서의 애정이나 설렘이 비록 머리카락만큼 가늘다 하더라도 이것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절실함이다.
남편 앞에서 트림을 하거나 (내 기억으로는) 방귀 한 번 뀐 적이 없었다. 벗은 몸은 보일지언정 훌렁훌렁 옷 벗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어서 다른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소변 소리가 크게 들릴까 세면대의 물을 틀어놓고 볼일을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똥이라니.
남편이 내 똥을 봤다니.
차라리 뱃속에 똥을 품고 사는 변비녀가 낫지, 남편이 내 똥을 보다니.
“아니거든. 나 똥 안 쌌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침에 똥 싸고 물 안 내렸더니만.”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 입을 삐죽거리고 소파에 앉았다. 남편에게 들킨 것이 부끄러운 것도 한순간, 울적해졌다. 내가 왜 그랬을까.
며칠 전 아침, 늘 그렇듯 딸아이는 킥보드를 타고 셔틀버스를 타러 갔다. 아이를 보내고 출근하러 가는 길에 같이 셔틀버스를 태우는 아이친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킥보드를 길에 그냥 두고 갔다고. 매일 반복하는 아침 일상인데 왜 깜빡했을까.
그리고 오늘, 남편에게 깜빡이는 내 정신머리를 한탄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또 이런 일이 생겼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걸까. 2025년이 얼마 남지 않고 곧 한 살 더 먹는다는 게 서글픈 요즘인데 자꾸 나이 든 걸 확인하는 일들이 늘어난다. 나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핑계될 게 마땅치 않아 자꾸 나이 탓만 하게 된다.
남편에게 똥을 들켜버렸고, 더 많이 깜빡할까 봐 하는 걱정은 나이 드는 게 싫다는 투정임을 알아버렸다.
앞으로 또 무엇을 더 깜빡하게 될까. 이러다 나도 놓치는 건 아닐까.
오늘도 변기에서 일어나며 다시 한번 나의 머문 자리를 확인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어느 공중화장실의 문구가 떠오른다. 내가 머무른 자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면 더 아름답게 남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이가 들수록 나의 머문 자리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