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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우 Oct 27. 2024

야시장

중편 소설 ≪하늘을 사랑한 소녀≫

08.

 다음 날 우리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만났다. 갈 길이 멀었기 때문이었다. 스카이는 뺏 아저씨에게 동력기가 달린 작은 배 한 척을 빌려 집 앞으로 찾아왔다. 우린 낮부터 동력기를 켤 필요조차 없는 배를 타고 14층이 있는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 도착해선 배를 잘 묶어두고 숲을 지나 도로를 건넜다. 스카이는 뺏 아저씨에게 빌린 지도를 손에 들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세 시였다.
 여태 이용했던 시장 출입구의 반대편에 있는 다른 출구로 벗어나자 낯선 길이 튀어나왔다. 조금 걷다 보니 차 두 대가 겨우 지나다닐법한 좁은 도로로 좁혀졌다. 우리는 오른쪽 가장자리에 붙어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도로 우측에는 드문드문 철판이 덧대어진 집들이 있었고 좌측에는 드넓은 농지가 펼쳐져 있었다.
 얼마 후 갓길에 세워진 툭툭이라는 탈것의 기사가 우리를 불러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나는 마음을 졸이며 스카이를 바라봤는데 그 애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걸어가면 금방이예요.”
 기사는 싸게 해주겠다고 연신 말했지만 우리가 고개를 젓자 쌩하니 가버렸다. 뒤에는 ‘하드 록 카페’라는 뭔지 모를 광고판이 부착되어 있었다.
 잠시 뒤 왼쪽의 넓은 지대도 막히면서 맞은 편과 데칼코마니 한 듯 집들로 가득한 공간이 나왔다. 한 집에서 아이 네 명이 쪼르르 나왔다. 나와 눈을 마주친 한 아이가 손을 모아 인사했고 나 역시 손을 모아 인사에 화답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사라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들뜬 마음은 가는 길 내내 콧노래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오랫동안 땅을 밟아본 적이 있었나?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새로운 길과 사람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근처 노상 가게에서 설탕 묻은 빵과 빙수를 사 먹었다. 스카이는 뺏 아저씨의 일을 도우면서 모은 돈을, 나는 엄마의 심부름을 하면서 모은 돈을 지불했다.

 스카이는 세 시간이 넘어 걸릴 거라고 했었지만 실제로는 두 시간이 조금 넘어 걸렸다. 그 애가 사람이 없는 길에서 약간의 힘을 썼기 때문이었다. 물론 허공에 높이 떠오른 건 아니었다. 발 아래 약간의 공간만 두고 바람을 이용해 달렸을 뿐이었다. 우린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리버사이드 야시장에 도착했다. 14층이 도착하기 전부터 14층인 것을 깨달았듯이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갈래로 흩어져있는 화려한 빛줄기와 쿵쿵거리며 진동하는 음악은 멀리서부터 그곳이 그곳인 것을 표출하고 있었다.
 “리버, 도착한 거 같아.”
 스카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얘기했다.
 시장 입구에 설치된 태양 모양의 전광판 하나가 우리를 환영하듯 색깔을 바꿔가며 파도치고 있었다. 내가 전광판을 가리키자 스카이도 빛이 파도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자신을 흔드는 손길에 깨어난 듯 고개를 돌렸다. 눈을 마주친 우리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주색 여자가 손에 띄우고 있는 장소에는 모든 것이 다 있는 것 같았다. 푸른 눈의 외국인도 있었고, 차력 쇼를 하듯 입에서 불을 내뿜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스카이를 이끌고 사람들이 모여 연주하는 곳에도 가보고, 철사를 구부려 정교한 모형을 만들어 파는 상점도 구경했다. 이제 막 어둠이 섞이기 시작하는 푸른 하늘도 상관없다는 듯 온갖 즐거움이 만개한 곳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수 너머에는 없는 것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스카이를 만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는 매끈한 돌멩이 전시품을 만지던 스카이에게 말했다.
 “너와 같이 와서 좋아.”
 “나도 그래.”
 그래, 그때까진 괜찮았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우린 이것저것 구경하며 형형색색의 전구가 켜진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 한적한 곳에 들어서게 되었다. 건너편은 여전히 소란스러웠지만 이곳은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너른 길이었다. 길을 걷던 스카이는 한 표지판을 발견하고 멈추었다.
 “리버, 저기 화장실이 있다는데 들렀다 갈래?”
 나는 시장에 들어서기 전에 한 번 다녀왔던 터라 아직 괜찮았다.
 “난 괜찮아. 여기 있을 테니 다녀와.”
 “그럼 금방 다녀올게.”
 스카이가 돌아올 때까지 남은 시간 동안 뭘 할지 생각하려고 했다. 그 애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면서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옷도 구경하고, 둥그런 철판에 구워주는 크레이프도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있는 수조에 발을 담그는 체험도 있던데… 그것도 해보고, 무료 음료를 주는 곳이 어딘지 찾아보자고 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앞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하필.
 5미터 앞에 옷을 딱딱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있었다. 엄마가 그들을 피해 돌아가던 때가 생각났다. 내 손을 꽉 잡았던 엄마의 손바닥이 축축해지던 것도.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얀색 치맛자락을 쥐었다 놓으며 나 또한 그를 피하기 위해 몸을 홱 돌렸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길 건너 골목길로 뛰어들 생각이었다. 그곳에는 여러 골목길이 있었으니 어느 한 곳이라도 좋았다.
 “얘, 꼬마야 거기 서봐라.”
 그러나 기세 좋게 나를 발견한 남자가 묵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나는 기름칠이 덜 된 기계처럼 뻣뻣하게 그를 돌아보았다. 침을 꿀꺽 삼키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네?”
 그는 나를 한 번 훑어보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꼭 누군가를 찾는 모양새였다. 그러는 사이 나 또한 그를 흘끔 볼 수 있었다. 까만 벨트에 까만 신발이 당장이라도 내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네 부모님은 어딨니?”
 “부모님이요?”
 머리가 마비된 듯 새하얘졌다.
 “그래, 네 부모님 말이다. 엄마나 아빠.”
 부모님이라고 한다면 그와 마주치면 꽤 오랫동안 벗어날 수 없는 부모님을 말하는 듯 했다. 저녁용으로 산 생닭을 주어야만 벗어날 수 있는 부모님, 그마저도 지금은 멀리 떨어진 호수에 있을 부모님, 신분증이 없는 부모님과 신분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호수.
 ‘리버, 멀리 가지 말고.’
 그런데 말을 듣지 않고 호수를 벗어난 건 누구지?
 “금방 오실 거예요.”
 내 말에 그는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었다. 한번 기다려보자는 자세였다.
 “그럼 여기에서 같이 기다리자꾸나. 요새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많아서 말이지. 네가 그런 아이는 아니겠지?”
 그는 코 앞까지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니예요. 아, 부모님은 저기에 있어요. 지금 가야 해요.”
 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을 무작정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곤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래? 같이 가자.”
 그러나 남자가 바로 옆에서 따라왔다.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악 소리와 어긋난 박자로 심장이 쿵쾅거리고 춤추던 별들은 혼란스러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께름칙한 비명으로 들렸고 어둑한 하늘은 이제 막 재앙이 시작되려는 전조로 보였다.
 스카이.
 나는 스카이와 헤어졌던 곳을 바라보았다. 멀리 스카이가 보였다. 그 애는 나와 같이 있는 남자를 보고 낌새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도로를 살폈다. 몇 대의 차가 양옆으로 주차되어 있었을 뿐 빛을 내고 달려드는 차는 없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나는 몸을 돌려 도로에 뛰어들었다. 내 움직임을 포착한 남자가 본능적으로 내가 메고 있던 가방을 잡아챘고, 나는 가방을 벗어 던진 뒤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길 건너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내 옷이 검정색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하며.
 “거기 서!”
 사람들이 있는 넓은 길목 여기저기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인파를 헤치고 달려가던 어느 순간 더 이상 사람들과 몸이 닿지 않고 땅을 딛는 속도가 빨라진 게 느껴졌다. 옆을 돌아보자 스카이가 있었다. 반대편에서 달려와 어느새 합류한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부모님이 어디 있냐고 했어. 잡히면 안 될 것 같아서.”
 양옆으로 그토록 기대했던 광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최고의 오아시스, 매일 선착순 10잔 무료’ 간판에 인쇄된 여자가 땋은 머리를 늘어뜨린 채 우리를 지긋이 응시했고, 녹색 원피스를 중앙에 진열한 가게의 모든 원피스가 우리를 맞이하듯 바람에 살랑였다. 목에 진열 판을 걸어 기념품 자석을 파는 아이는 입을 헤 벌리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하얀 치마를 입고 있는 여자애를 잡아!”
 우리는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빠르게 따라붙고 있는 남자의 옆에는 어느새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두 갈래 길이 나오자 우리는 왼쪽으로 꺾었다. 최대한 많은 인파와 섞일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스 음식을 파는 야외 레스토랑의 웨이터가 놀란 듯 들고 있던 물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딱딱한 옷을 입은 자들이 끈질기게 따라오고 있었다. 주변을 살피던 스카이는 멀리 보이는 다리를 가리켰다.
 “다리를 건너자, 리버.”
 물이 흐르고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 애의 손을 잡고 있는 힘껏 뛰었다. 숨이 차오르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긴 하얀색 치마를 입고 있는 내 모습이 눈에 잘 띄는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를 놓친 듯 했다가도 나를 다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따라오길 반복했다. 다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곳만 넘으면 얼마 안 가 시장의 불빛도 끊기고 어둠에 몸을 숨길 수 있을 터였다.
 길을 건너 다리에 들어서자 발밑으로 가벼운 나무 밟는 소리가 텅텅텅 울렸다. 다리는 길에 비하면 매우 좁았다. 서너 사람이 겨우 지나갈 폭이었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이 멀리 보였다. 우리는 몇 사람과 부딪칠 뻔하여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끝없는 다리가 영원한 터널같이 느껴졌다.
 “이 불량한 녀석들! 당장 멈춰 서지 못해?”
 멀지 않은 곳에서 우레같은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나는 겁이 났다. 뒤를 돌아보지 않기 위해 달빛인지 불빛인지 모를 빛이 흐르는 강에 시선을 맞추었다. 비상용으로 보이는 몇 대의 요트와 배도 보였다. 다리가 곧 끊겼다. 조금만 더 가면 됐다.
 하지만 잡힐 것 같았다. 따라붙는 소리가 빠르고 컸다. 무서웠다.
 “잡힐 것 같아, 스카이.”
 스카이가 내 손을 꽉 쥐었지만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부터 모든 게 느리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다리에 올라와서 우릴 향해 팔을 뻗고 있는 두 명의 남자, 그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어깨를 움츠리고 피하는 사람들, 내 시선을 따라 뒤를 바라보는 스카이, 그리고 머리 위에 드리워지기 시작하는 거대한 그림자.
 나는 내게 쏟아질 것 같은 그림자에 고개를 쳐들었다.
 “스카이!”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몸이 저절로 경직되었고, 스카이는 자리에 멈춰선 나를 잡아채 계속 달렸다. 우리가 다리를 벗어나자마자 공중에 떠올랐던 요트 한 척과 작은 배 한 척이 진입로를 막으며 곤두박질쳤다. ‘이곳에서 최고의 순간을 남기세요.’ 강철 표지판이 ‘남기세요.’만 남긴 채 그대로 찌그러져 버렸다. 분홍색 빛을 내뿜던 커다란 하트 모양의 구조물도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로 마지막 심장박동을 파직 거리다가 유명을 달리한 듯 픽 꺼졌다. 이곳저곳에서 비명을 내질렀고 다리 근처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스카이의 손에 이끌려 어둠만 도사리는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떠오른 몸이 어느 건물의 옥상에 안착했다.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누가 다쳤으면 어떡해!”
 숨이 차올라 가슴이 따끔거렸다. 스카이 역시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 애는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바라보다가 마찬가지로 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안 다쳤어.”
 나와 스카이는 바닥에 드러누워 한동안 숨을 골랐다.
 그들은 더 큰 사고에 가려 우릴 찾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 그들은 손전등을 들고 끔찍하게 부서진 잔해들을 들춰보고 있었다. 곧 경찰차 여러 대가 도착했고, 작업자를 불러 다리를 막고 있는 요트와 배를 원래 위치로 내려두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과 수첩을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얘기했다. 우리가 있는 건너편 건물까지 오는 바람에 숨을 죽이고 어둠 속으로 몸을 더 밀어 넣어야 했다.
 “정말이라니까요. 배가 공중에 떠올랐어요! 못 믿으시겠으면 여기 어디 CCTV 확인해 보세요.”
 “여기엔 없고, 다리 건너에 있는 두 대를 확인해 보도록 하죠.”
 그들과 동행한 다른 경찰이 말했다.
 “날벼락이죠. 가게 쪽으로 떨어졌어봐요.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어요.”
 ‘위험해질 거야.’
 스카이가 특별한 힘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 했던 말이 겹쳐 들렸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애가 가진 힘을 간과하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그 애의 힘은 때로 파괴적이기도 해서 상황에 따라 원치 않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었다. 스카이가 나를 지키고자 힘을 사용했을 뿐이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것처럼. 나는 스카이가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자. 이곳엔 다시 오면 안 돼.”
 우리의 일탈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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