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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Oct 27. 2024

Mia의 브런치 인턴작가 스토리~~

제 3화 점집에서 알려준 진로

난 아직 2024년을 보낼 마음이 없었건만, 회사는 올해의 마무리, 그리고 내년 준비를 시작하고자 한다. 평소보다 일정이 빨라져, 마음이 조급해 진다. 올해는 유난히도 나에겐 사건사고도 많았었고, 한 해가 가는것을 바라볼때면, 조금은 마음이 무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가는 한 해라면 빨리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힘들었기에...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이번이 3회차... 누군가 내 글을 볼 것을 생각하니 무작정 처음 글을 올렸을때와는 사뭇 다르지만, 이왕이면 내 글이 작게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크다. 이제 단풍도 조금씩 드는 걸 보니... 내가 좋아하는 청명한 가을 하늘과 상쾌한 공기, 울굿불긋 예쁜 단풍들을 가득 볼 것 같아 오늘도 기쁜 생각을 내어 본다. 


튀지 않은 아이...

초등학교 3학년때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담임 선생님은 기독교또는 천주교 신자이셨다. 착하셨다. 그런 선생님께서 나를 조금씩 이뻐해 주셨다. 난 반장도 아니었고, 공부도 잘하지도 못했고,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는 일도 없는 지극히 조용한 아이였으나, 선생님께서 무슨 일이신지... 나를 예뻐해 주셨고, 그 당시 엄마들의 뜨개질 옷이 유행했었는데... 엄마가 만들어 주신 뜨개옷을 보시면서, 선생님도 참고하시며... 선생님의 둘째딸과도 같이 놀개 해 주셨다. 점점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보니 문뜩, '왜 선생님이 날 좋아하지? 난 평범한 아이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수 시험,100점 만점에 20점을 받았다. 선생님도 내 시험지를 보시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셨고, 처음으로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 사랑받는 아이가 공부를 못하다니...' 엄마한테 주산학원을 보내달라 졸랐고, 엄마도 크게 반대하지 않으시고는 학원에 보내 주셨다. 그리고, 난 밥 먹는거 빼고는 동아전과, 표준전과 두 개를 비교하며 계속 이 두 책만 봤다. 그 때의 창피함은 나에겐 큰 충격이었던거 같다. 그랬더니, 4학년 2학기 쯤 성적이 조금씩 오르더니, 5학년 부터는 전과목 올백은 못받았지만, 거의 올백에 가까운? 점수를 받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길을 열어 준 선생님을 만났던 것이다.  하지만, 뭐든 다 좋은건 없나보다...  중학교 시절, 시험공부를 크게 해 보진 않았지만,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고, 이 때부터 벼락치기 습관과 승부욕 보다는 안주하는 버릇이 생긴 거 같다. 고등학교 1학년까진 어찌어찌 버텼지만, 고2부터는 성적이 서서히 하락을 면치 못했다. 

점집에서 알려준 진로

우리나라 대학 입시는 수험생 혼자만이 치루는것은 아닌거 같다. 가족이 함께 수험생이 되어, 함께 고민하고 마음 졸이는 것이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서 기도하면 영험하다는 소문에, 부산역에는 항상 팔공산행 전세버스가 있었다. 엄마는 밤 9시쯤 그 버스를 타고 기도하시고, 새벽에 오셨다. 언제 한 번 나도 따라 갔었는데, 그 새벽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밤이라서인지  전세버스는 정말 쌩쌩~~ 달렸고, 난 엄마가 그 차를 안 탔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 고생을 하는 엄마를 보니 마음이 찡했다. 엄마는 나 뿐만 아니라, 오빠, 그리고 나의 외사촌 언니들까지 모두 기도를 하셨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하신거 같다. 나의 오빠의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으셨는지... 엄마는 유명하다는 철학관에 오빠와 나에 대한 상담을 받으셨고, 그 중 한 분이 말씀하신데로 난 진로를 택했다. 그리고는,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지만, 그 분이 말씀하신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교 시절 

난 학교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그 당시, 2년정도 된 신설학과인 임상병리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난 더 좋은 대학교를 가고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시점에는 IMF가 시작된 시기였다. 1학년 땐 열심히 놀았지만, 한 편으론 어떻게 취직을 해야 할 지 막연히 걱정을 하는 세대였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휴학을 1년씩 하는건 관례처럼 되었던 시절이다.  등록금으로 피가 마르는 듯한 엄마를 보면서, 오빠의 복학 시점에 맞추어 난 1년 휴학을 했고, 유명한 영어학원을 등록해 아침 5시부터 저녁 9시까지 영어에만 매진했다. 주말은 과외를 하면서 학원비와 용돈를 벌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난 힘들지 않았다. 영어가 머리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모님께 경제적 짐을 드리지 않는 내가 너무 좋았다. 대학교 3학년, 우리과 누구나 그랬듯이 나 역시 유명한 종합병원 검사실에 취직해서 뽀대나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병원 실습을 다녀 온 후, 그 생각은 완전히 바꿨다. 진단 검사실 실습이 나에겐 너무나 답답했다. 평생 직업으로 살 자신이 없었다. 힘들게 보낸 내 대학 4년이 내 마음속에서 그렇게 무너져버린 것이다. 내가 졸업한 그 시점은 예전처럼 대학교 졸업만 한다고 취직이 되는 시절도 아니었다.. 청년 실업자가 가득한 시절이었다. 대학교 졸업식이 있던 그 때... 난 갈 곳도 없었고, 뭘 해야 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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