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와 고갱의 작품 중 당구대가 있는 그림 두 점이다. 배경은 남프랑스 아를. 고흐는 카페 주인을 중심으로 고립된 손님들을 연출하였으며 고상한 모습을 담은 마담 ‘지누’의 자화상을 별도로 여러 점 남겼다. 고갱은 고립과 사교의 개념을 혼합하여 그 중심에 큼지막이 마담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미술계 평론은 두 거장의 좋지 않은 감정으로 말미암아 마담의 묘사 범위가 달라졌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 관심은 오로지 당구뿐이다.
그림 속 당구대는 목수들이 손으로 직접 빚은 작품이며 발통은 로구로식이다. 지금은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어릴 적 한국의 당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기도 하다. 얼핏 봐도 사람 크기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시절 카페에 보급되었던 소형 당구대로 추정된다. 위로는 잔디를 본뜬 녹색천이 깔려있고 흰색 공 두 개와 붉은색 공 한 개가 놓여있다. 당구대에 포켓이 붙어 있지 않을까 유심히 살펴보지만 찾아지지 않는다. *캐롬 당구대다.
고흐의 그림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측은한 모습이다. 당시 카페는 술에 취해 귀가하지 못한 사람들이 밤을 새우곤 했단다. 그래서인지 다들 지루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눈치다. 술잔이 놓여있는 테이블은 사람들이 없다. 막 나간 손님을 배웅한 듯 주인의 포즈가 어색해 보인다. 시계를 쳐다보니 바늘은 자정이 넘어가고.
고흐와 달리 고갱은 사람들의 대화를 더했다. 네 명이 진지하게 무언가를 고민하는 눈치지만 어떤 얘기가 오가는지 모른다. 옆 테이블 손님 중 한 명은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 한 사람은 엎드려 잠잔다. 자면서 대화를 엿듣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구대 밑 고양이도 뭔가를 유심히 듣고 있는 눈치다. 마담의 의미심장한 곁눈질이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동떨어져 있는 당구공이 수구(手球)라면 50-30=20으로 겨냥할 수 있는 빈 쿠션이다. 눈 감고도 칠 수 있는 포지션을 내버려 두고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일까.
유럽 혁명의 발화점 프랑스에서 고갱이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자유주의 언론인이며 외할머니는 혁명운동의 토대에 도움을 준 사회주의 작가이자 활동가로 전해진다. 방수포 판매원, 통역사를 거쳐 주식 중개인이 되면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폴 고갱. 이후 프랑스어 교사 · 파나마 운하 건설 노동자 ·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오는 동안 고흐 형의 권유로 아를에서 고흐와 함께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고갱의 집안을 배경으로 그림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프랑스혁명을 시작으로 확산한 유럽 혁명의 격변기를 지켜본 폴 고갱. ‘혁명의 소리’를 그림으로 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혁명가들이 선술집에 모여서 진중한 대화를 이어간다. 옆에서 졸고 있는 사람은 첩자일지 모른다. 원근법으로 꽉 찬 마담의 얼굴에서 중요한 인물임이 엿보인다. 마담이 정보를 흘렸는지 ·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 목표를 성취했다는 표정이다. 반만 채워진 술잔과 가벼운 미소가 이를 증명해 주려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선술집은 혁명의 교두보 역할을 한 소리 공장이었다. 사람들은 소리를 담고 전달하기 위해 밤낮없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주로 카페에서 임금을 받았다고 하니 즉석 해서 술과 당구로 마음 달래며 내일을 기약한 것 같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도 하며 시위 계획을 철저히 도모했으리라. 일찍부터 선술집 문화가 발달했기에 빠른 정보력이 계급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않았을까.
* 주머니가 없는 당구대에서 수구 두 개와 적구 두 개(또는 적구 한 개)를 가지고 경기하는 방식이다. 직선 레일(사구) · 보클라인(난이도 높은 사구) · 원쿠션 · 쓰리쿠션 · 아티스틱(예술구) 종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