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공짜는 없다.
한밤중에 병원을 방문한 나는 바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누워 있는 내 배에 온갖 기계를 붙이고 태동검사가 시작되었다. 신랑이 짐을 챙겨 돌아왔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신랑은 입원하는 걸 알게 되면 걱정한다며 시댁에 알리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알리지 않았다. 겉으로는 걱정할까 봐 이겠지만 아프다고 하면 안 좋아할 것 같은 걱정이 더 클 것 같았다.
그렇게 3박 4일 일정도 병원에 입원을 하고 태동검사를 매일 하며 안정을 되찾아갔다. 6개월에 접어들어 배도 나왔는데 그 배로 버스 출퇴근도 힘들지만 저녁 7시가 되어도 눈치 보느라 집에 못 가는 현실이 결국 이 상황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입원을 기회로 삼았다. 의사 선생님께 회사 제출용 소견서를 써달라고 했고 선생님은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써주셨다.
그다음 주에 다시 출근을 하게 되었고 난 의사 소견서를 관리부 직원에게 내밀었다. 단축 근무를 제안한 것이다. 오후 4시 퇴근으로 제안을 했다. 그리고 대표이사에게 관리부 직원이 결제를 받으러 갔다.
다행히 단축근무가 허락되었다. 4시 퇴근이면 러시아워도 피해서 버스도 앉아 갈 수도 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오전부터 배는 뭉쳤다. 딱딱하게 바가지를 얹어 놓은 듯 앉는 것도 불편하게 뭉쳐있었다. 가끔 마사지를 해주면 아이가 다시 움직이고 말랑말랑해졌다. 그래도 4시에 퇴근이라 마음은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현실은 4시에 먼저 벌떡 일어나서 갈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4시... 점점 4시 반.... 어쩔 때는 5시가 되어서야 갈 수 있었다. 심지어 또 월례회의가 있기 전날은 여전히 야근을 해야 했다. 여전히 4시 칼퇴근은 먼일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이제 슬슬 출산휴가를 준비해야 할 때쯤 관리부 직원이 나에게 와서 얘기했다.
" 사장님이 지금까지 일찍 간 시간 체크해서 연차에서 까라고 해서요. 그래서 계산해 봐야 돼요."
" 참 너무하시네 그럼 야근한 시간은 빼주는 거래요? 연차보다 시간이 더 되면 월급에서 까는 거네요? "
참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시에 제대로 퇴근한 적도 별로 없는데 그 시간마저 다 빼라고 하는 것이다.
회사 출퇴근은 지문을 찍고 출입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초단위까지 나왔다. 관리부직원을 그걸 다 계산을 했다.
오래 다닌 회사라 연차가 쌓여 18일이 되지만 거의 써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돈으로 주지도 않았다. 포괄 임금제라서 연차에 야근까지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출산 이후로 붙여 쓸 수도 있는 내 연차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 계산을 해봤는데 다행히 연차만큼이라서 월급을 공제할 필요는 없네요."
난 이제 출산휴가 3개월을 쓰고는 바로 출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최대한 애 낳기 전까지 회사를 나와야 했다.
어느 날부터는 거의 5시 이후로 퇴근을 했고 가끔은 야근을 하고 7시 넘어서 퇴근을 했었다. 다행히 동료분이 우리 동네 근처 사셔서 시간이 맞을 때는 집 근처까지 차로 데려다주게 되었다. 정말 감사했다. 사실 일찍 퇴근을 한다 해도 만삭으로 좌석버스에서 서서 가기란 쉽지 않았다. 집과 방향이 달라 두 정거장 전에 내려다 주면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가끔 동료와 시간이 안 맞아 결국 줄을 서서 버스를 타고 갈 때면 참 힘들었다. 그때는 좌석 버스라도 입석이 되었기에 숨 막히게 서서 가야 했다. 앉아 있는 이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특히 내 앞에 젊은 여자는 이어폰을 꽂은 상태로 먼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그 뒤에 앉은 젊은 남성이 앉으라며 자리를 양보해 줬다.
한 번은 버스를 타서 서있는데 앞에 50대 아줌마들이 앉아 있었지만 쳐다도 보지 않았다. 항상 양보는 남자들이 해줬다. 새삼 같은 여자끼리 더 너무 하나는 걸 깨달았다.
임신한 게 오히려 죄가 되고 차 없으면 임신도 하지 말아야 하는 분위기의 사회에서 또 나는 아이를 가진 것이다. 임신과 출산이 그저 회사에는 불편한 일이었고 버스에서 조차도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 되었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며 이제 출산 날짜를 정하는 시기가 돌아왔다. 어차피 제왕절개라서 날을 선택하면 되는 일이었다. 출산을 하게 되면 남편은 5일을 쉴 수가 있어서 최대한 많이 쉴 수 있는 날짜를 찾아 날을 잡았다.
6월 4일 목요일 둘째를 낳기 위해 수술하는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