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예술이 깨어나는 도시, 청주

by 이윤지



문화는 도시를 바꾸는 조용하고 강력한 힘이다. 충청북도 청주, 과거 담배를 제조하고 쌓아두던 낡은 공장이 오늘날에는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고, 공유하는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그 자체로 도시재생의 아이콘이자, 문화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는 전시장이며, 나아가 공간의 개념을 다시 쓰는 장소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전시 이상의 실험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관람객에게 미술관의 비밀 공간이던 수장고를 열어젖힌다는 발상은 예술과 공간, 도시와 시민 사이의 경계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자리한 곳은 1946년부터 2004년까지 운영되었던 KT&G 청주공장이다. 이곳은 오랫동안 지역 경제를 지탱하던 산업의 상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흉물스러운 유휴 공간으로 남았다. 미술관은 이 공장의 구조를 최대한 유지한 채 예술을 담는 공간으로 전환함으로써 과거의 기억을 삭제하지 않고 새롭게 덧입혔다. 공장의 높은 천장과 드러난 철골 구조, 붉은 벽돌 벽면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 구조 위에 현대적인 조명과 유리, 흰 벽이 어우러지며, 기억과 현재, 산업과 예술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감각을 제공한다.


미술관의 수장고는 본래 외부에 철저히 닫힌 공간이다. 관람객은 전시된 일부 작품만 볼 수 있고, 나머지 대다수 작품은 비밀스러운 방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이 수장고를 개방형 수장고로 전환했다. 관람객은 이제 작품이 실제로 어떻게 보관되고, 정리되며, 어떤 기준으로 분류되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단지 공간을 공개한 것이 아니라, 예술을 둘러싼 폐쇄성과 금기의 문화를 넘어서려는 시도다.


이곳에서는 수장고 자체가 하나의 전시가 된다. 감상자는 유리 벽 너머의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수장고 안으로 직접 들어가 작품과 거의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우리는 더 이상 예술의 뒷공간을 추측할 필요가 없다. 이는 곧, 예술과 관람자의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으로 재구성하는 새로운 시도다.


수장고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조각 작품들의 물리적 존재감이다. 돌, 나무, 금속, 유리, 그리고 기타 복합 재료로 구성된 조각품들은 각각의 재료가 가진 질감과 온도, 무게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는 백색 벽면에 정제되어 걸린 전시와는 다른 느낌이다. 조각의 질감과 재료는 이 공간에서 작품이 하나의 물건이자 기록물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예술을 감상하는 동시에, 그것이 만들어진 물성 자체를 느끼게 된다. 작품은 벽에 걸리지 않고, 철제 선반이나 이동식 받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어떤 작품은 보존을 위해 포장된 상태로, 어떤 작품은 복원 중인 상태로, 또 어떤 작품은 전시를 기다리며 조용히 대기 중이다. 이 모든 과정은 예술이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수장고 개방은 단지 전시 방식의 혁신이 아니라, 도시와 시민 사이의 문화적 관계를 바꾸는 사건이었다. 청주는 과거 담배로 대표되던 도시에서, 이제는 ‘공예와 현대미술의 도시’라는 새 이미지를 가지며 도심의 정체성이 회복되었다. 수장고를 열자, 예술이 특별한 날의 경험이 아닌 일상의 일부가 되며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지역 예술가들은 미술관과 협업할 기회를 얻고, 시민들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예술 활동에 참여하게 되며 지역 예술 생태계가 성장하고 있다.


폐쇄된 수장고를 연다는 행위는 단순한 전시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와 예술, 기억과 현재, 권위와 일상의 관계를 다시 쓰는 작업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단순히 작품을 소장하는 공간을 넘어서, 예술이 만들어지고 흐르는 과정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살아 있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작점은, 담배를 쌓아두던 창고를 예술을 저장하고 드러내는 공간으로 재해석한 용기에서 비롯되었다. ‘닫힌 곳을 연다’라는 가장 단순한 행위가 도시와 예술의 관계를 근본부터 바꾸고 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그림을 읽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