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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m Oct 26. 2024

다음 테이크를 굳이 가야되나요 감독님 2

' 야 딸만큼 땄어, 넘어가자' 헤드셋 너머 들려오는 촬영감독 형의 지친 어투 속에 나를 향한 경고성이 느껴져, 하던 고민을 멈추고 컷 사인을 마이크로 외쳤다. 기획사, 스태프, 심지어 촬영에 임하고 있는 멤버조차 숨을 반쯤 죽인채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들의 간절함을 배신할 정도로 이번 작품에 대한 나의 욕심은 그리 크지 않았나보다. '오케이, 수고하셨어요 우리 다음 멤버 오실게요!' , 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오늘 마지막 장면을 위해 전례없던 속도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가장 힘이 없고 지치는 시간대에 퇴근을 위해 젖먹던 힘 방울 끝까지 쥐어짜내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촬영일이라고 크게 다른건 없구나 싶기도 하다. 


 뮤직비디오 연출을 27살에 시작했다. 대학 동기와 함께 대한민국 뮤비계를 흔들어보자라는 일념하로 카메라 1대와 맥북 1대를 가방 안에 넣고 다니며 홍대, 이태원에 랩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찍고 다니기 시작했다. 열정 만은 넘쳤고, 나는 센세이셔널한 감독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하에, 흔히 프로덕션을 들어가 세트장 바닥 닦는 막내일부터 시작하기를 거부하고 프리랜서를 자처했다. 


 객관적으로 그런 2~3년의 경험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 것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스스로 우물 안에 들어가기를 자처한 모양새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큰 상업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 (장비 운용, 세트 도면을 보는 법, 효율적으로 촬영하는 법 등등..) 을 30살 메이져 프로덕션에 이직하여 뒤늦게 받아들인 점을 생각해보면 이따금 너무 돌아왔나라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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