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에 통제에 통제를 더해서
사실 나는 엄청난 통제광이다.
나는 내가 통제광이라는 사실을 3n년만에 알게되었다.
지금껏 그 사실을 깨우치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이런 나를 발견하게 된 건
내가 통제욕구을 발산하는 방식이 매우 소극적이기 때문인데,
상대방에게 이렇게 해 저렇게 해 말하기 보다는
상대가 '내 기준에' 못마땅한 행동을 할 때 묵묵히 그 행위를 관망하다가
상대가 그 자리를 뜨면 재빨리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이렇게 쓰고 보니 스스로가 더 어이없게 느껴지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 슬리퍼를 아무렇게나 벗어놓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이 슬리퍼를 벗고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뒤따라 들어가서 아무렇게나 바닥에 놓아진 슬리퍼 두 짝을 모두 문지방에 살짝 걸쳐 나란히 놓는다.
화장지가 풀리는 방향을 벽쪽으로 향하여 휴지를 걸어놓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이 우리 집에서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재빨리 화장실에 가서 휴지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서 걸어둔다.
우리 집에 놀러와서 내 화장품을 빌려쓰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이 집에 돌아가면 화장품들의 입구를 한번씩 닦는다.
튜브형 제품(소스류/화장품/폼클렌징 등) 사용 시, 뚜껑을 도로 닫기 전에 꼭 입구를 한 번 닦아야한다.
마찬가지로, 펌프형 제품 사용 시에도 입구에 잔여물이 남지 않도록 꼭 뒷정리를 해야한다.
누군가에겐 당연해 보일수도, 누군가에겐 쓸데없는 강박처럼 보일수도 있는
이런 자잘한 지침들이 너무나 많아서 가끔 굉장히 피곤하다.
아니, 사실은 나 혼자 살면 괜찮을 것도 같다.
누군가 내 공간으로 들어오면 그 때부터 피곤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속으로 통제광인 나와 타인에게 미움받기 싫은 내가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한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통제하고 싶어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일까에 대해 끝없이 고민한다.
통제하려는 욕구는 타인에게만 향해 있지 않다.
나는 나 스스로를 통제하려고도 무지 애쓴다.
원하는 모습의 이상적인 나를 만들어 두고 그 안에 끼워맞춰져 살고 싶어하지만
그건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모습이며,
그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모습은 이미 내가 아님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이상향의 나를 내려놓기는 너무 어렵다.
선망의 대상, 근데 이제 그건 내가 아닌...
달달 볶이는 마음이 고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