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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드 입은 코끼리 Oct 19. 2024

솔이의 하룻밤, 그리고 호기심

솔은 오늘도 일어났다. 솔은 유치원 강사다. 처음에는 어린아이들이 많이 살았는데, 갈수록 줄어드는 어린아이들의 수가 자신의 직장을 위협했다. 결국 자신은 어떤 것을 해야 평생 동안 일하고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더니 공무원의 길만 보였던 것이다. 솔은 그 자리에서 결심을 했다. 솔은 언제나 자신이 큰일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날이 공무원으로 직장을 옮기는 일이었다니 참으로 기이했다.


솔은 그날부터 노량진으로 올라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 현강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 많은 지역에서 공무원을 하겠다고 서로를 다투면서 공부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모두가 경쟁자였다. 그리고 자기는 혼자서 외롭게 지냈어야 하는 외부인처럼 느껴졌다. 솔은 그런 철저한 이기주의 공시생을 혐오했다. 가끔 사탕도 나눠주고 웃어주는 친구 한 명을 사귀었는데 그녀와의 관계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 친구도 나중에는 이기적으로 자신의 필기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다. 나중에 밥친구로라도 남기기 위해서 자신을 사귀는 느낌이 들자 절교를 선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묵묵하게 3년을 공부한 결과 솔은 자신이 원하던 공무원이 되었다. 이젠 안정적인 직장도 갖게 되었고 남부럽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에 기쁨이 절로 났다. 하지만 솔의 현실은 안정적이기 때문에 지루함에 고립되었다.

솔은 신선한 충격과 신선한 재미를 보기 위해 도파민이 팍팍 도는 내용의 소설에 눈길이 갔다. 자신의 업무시간에도 계속해서 웹툰과 소설에 빠져서 살았다. 그러다가 민원이 들어왔는데 솔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자신은 어차피 잘리지 않을 공무원이라는 사실에 뻔뻔히 대응했다. 그랬더니 돌아왔던 평가시즌에 그녀는 좋지 않은 성적을 받고 승급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은 억대연봉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평생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살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한 끈의 차이로 자신은 8급으로 승진하지 못하는 날이 되자 솔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을 시작했다.


늦은 방황이었다. 솔은 우선 자신의 긴 생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용실로 찾아갔다. 자신을 빨갛게 물들여달라고 요청하자 미용실 사람들은 말렸다. 그녀의 머릿결이 워낙 풍성하고 아름다운데 그걸 다 상하게 만들 자신 없다며 손사래 쳤다. 그러나 솔은 단호했다. 자신의 머리를 짧게 쳐도 괜찮으니 빨갛게만 해달라고 요청했다.


솔의 눈동자색과 상반되게 빨개진 머리를 거울 속으로 보았다. 솔은 너무나 만족했다. 자신을 제자리로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낙인이 이미 찍힌 상태인지라 빨갛게 해도 이젠 누가 뭐라 할 사람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솔은 콧노래를 부르며 계산하고 나갔다


다음날 동사무소에서는 솔의 머리카락에 대해서 한 소리씩 했다.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의 한 소리가 많았다. 솔은 자신의 자유분방함을 표현한 거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자 동사무소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며 다시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했다. 자신은 그런 조직에 서 있다는 것에 놀랐다. 점 하나 그렸다고 달라져 보이는 것과 뭔 차이가 있느냐는 식으로 대구를 했더니 공무원의 자격이 없다며 팀장은 소리쳤다.


솔은 갈수록 술과 함께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직장동료도 조금씩 자신을 멀리하는 것이 느껴졌다. 외로움이 가득하니까 술밖에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술의 독함은 자신의 외로움을 내려앉게 해 주었다. 처음에는 맥주를 마셨다. 청량감이 좋아서 계속해서 몇 캔을 뜯어보니까 잠이 들고 그렇게 회사를 몇 달을 다녔다. 술냄새가 난다는 소문이 났는데 그마저도 귀찮게 여겨졌다. 솔은 자신의 업무를 상투적이게 대했다. 그저 돈 받는 기계라고 생각하니까 자신의 마음이 많이 무뎌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솔의 다친 마음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솔은 2년 반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시로 발령 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솔의 마음에 맞게 시로 발령이 났다. 솔은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음을 느끼고 다시 미용실로 갔다. 검게 자란 뿌리를 다시 붉게 염색하고 이번에는 곱슬거리게 볶아달라고 말했다. 이젠 미장원 언니도 아무 말 안 하고 솔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솔은 자신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이젠 원피스도 입고 다닐 것이고 특히 꽃무늬와 화려한 색상의 땡땡이도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는 그러나 더더욱 엄격한 곳이었다. 솔의 머리는 당연히 지적했지만 업무복장만큼은 지켜달라면서 간곡히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솔은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퇴근 후밖에 없었다. 막상 자기 전까지로 생각하면 고작 4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샤워도 해야 하고 저녁밥도 먹어야 한다. 솔은 자신의 직위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다시 유치원에 어린아이들이 그리워졌다. 아이들의 순수함으로 자신을 보았더라면 아이들은 자신을 아름답게 봐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젠 돌이킬 수 없는 5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젠 곧 결혼도 해야 하고 넉넉하지 않은 사정을 봐줄 부모님도 없다.


솔은 그래서 방탕해지고 싶었으나 그렇게 마음먹기가 너무 어려웠다. 자신은 선천적으로 착한 어린이 증후군이 있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없애느냐. 솔은 그걸 새로운 연인을 찾는 것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지만 그래도 그것도 막상 부족했다. 솔은 그렇게 친구 하나 없이, 주저앉으며 편의점 앞에서 과자를 먹었다.


거제도로 내려간 것은 아마 8년 차였을 때일 것이다. 인사교류로 자신은 부산 시에 있었는데 작은 곳에서 정착해서 사람관의 관계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거제도에 핫하지 않지만 비범해 보이는 술집이 있어서 들어갔다.그 장소는 그녀만의 아지트였다. 한 두어번씩 왔다갔다하면서 술을 마셨는데, 취기가 잘 올라오지 않아서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갈 때마다  아늑한 노란색 불빛이 자신의 초록 눈동자에 반사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있는 몇 명의 사람들에게 연민이 갔다.그 분들은 왜 내가 올 때마다 이 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무응답으로 살까 싶어하면서 궁금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5초도 되지 않아 금방 사그라졌다. 


왜인지 모르겠다. 솔은 자신보다 더 비참한 사람들로만 가득 채워진 방인 것처럼 느껴졌다. 다들 처지고 조용히 술만 마시고 있었다. 위스키가 독한 편이 아니었는데도 그들은 몇 모금 마시다가 말았다. 솔은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고 싶었다. 솔은 한두 명한테 환하게 인사하자, 그 사람들도 솔을 보면서 웃으며 화답했다. 신기한 집단이었다. 솔은 그런 사람들은 처음 본 것 같았다. 갑자기 연민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니! 민원인들의 분노만 보다가 미소를 보니까 반가웠다. 솔은 그런 자신에게 오늘 자기를 빨간 머리 앤 이라고 불러달라면서 그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3시간이 지나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남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눈동자를 보면서 애인이 되어달라는 식의 사인을 보냈다. 그러나 솔은 그 정도의 심각한 관계를 원하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는 친구들을 얻어서 너무 기뻤을 뿐이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얼른 앉았던 자리에서 나왔다.


그러다가 맨 끝에 앉은 그림 그리는 작가를 발견했다. 그의 눈에는 총기가 가득했다. 특이하게도 커피 한 잔과 위스키를 동시에 마시고 있었다. 솔은 그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그는 자신을 보고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고 숫기가 없이 인사를 나눴다. 솔은 그런 그가 너무 귀여워 보였다. 숫총각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스케치와 그림은 한국적이어서 아름다웠다. 한국을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하는 사람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요즘 워낙 헬조선거리는 사람이 많은데 유일하게 제주도 아닌 거제도에서 이런 사람을 볼 줄 상상도 못 했다.


그 그림 그리는 작가의 손에는 타블릿 피씨가 있었다. 그는 열중적으로 이 시간에 일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일을 하는 모습에 한번 더 신기했던 솔이었다. 요즘 현대인들한테 찾기 힘든 자질이었다. 비범한 꿈을 가지고 있는 청년에게 관심을 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한테 돌아오는 것은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은 대화였다. 이름을 물으니 바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진짜 이름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는 은근히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다와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 계속해서 바다에게 말을 걸었지만 헛기침하면서 대답하는 그가 아무래도 낯을 심하게 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솔은 그런 그의 작업물이 쌓여있는 것이 보여서 오늘은 그만 그에게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또한 아쉬워하는 듯해 보였지만 솔의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다음날에 그가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타블릿 피씨가 없는 상태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솔은 그다음 날까지 기다리기 힘들었다. 솔은 거제도 동사무소에서 멍하게 일만 했다. 하루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빨간 머리의 숱에는 무시무시한 생각들로 가득 차있었다. 솔은 언릉 바에 가고 싶었다.


바에 갈 시간이 다다르자 솔은 가방도 집에 내팽개친 채로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만 이렇게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은 잠시동안 생각했다 영화포스터들이 걸려있는 저 술집이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10분거리 안팎으로 되어있는데도 바로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솔은 그렇게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거리를 돌았다. 자신의 할 행동을 정리하면서 말이다. 말도 어떻게 고급스럽게 할 지도 정하고 빨간색 티셔츠가 자신의 스타일링과 어울리는지 다시 한번 보았다. 어제와 같은 옷을 입은 것 자체가 하루를 더 연장한 기분이 들 거 같아서 입었는데 바 사람들이 보면 자신을 다시 한번 선입견을 가지고 볼까 봐 걱정이 들었다. 워낙 좁은 동네라 말들이 새면 금방 튀어나오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거제도 바람은 따스했다. 그렇게 춥지 않은 바닷바람에 소금기를 가득 매워 싸인 채로 솔은 한 시간 반 뒤에 바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역시나 바다가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번에는 커피만 마시고 있었다. 그런 바다의 모습에 한층 더 마음에 들었다.


자기도 같은 커피로 주문할까 하다가 자신은 어제 마셨던 위스키로 다시 한번 주문했다. 그리고 바다에게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앉았다. 바다는 이번에는 들어줄 의향이 있어 보였다. 어제와 다른 분위기였다. 그의 눈에 총기가 가득 차있었고 섬섬이 보이는 그의 손가락 끝에 올라가는 잔에 비치는 빛도 매우 특별했다. 솔의 입장에서는 바다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오래전부터 살았는지 묻더니 그는 이 근처에 노란 벽돌로 쌓인 집이 있는데 그곳에서 산다고 말했다. 자신은 이 바를 자주 오는 이유는 오로지 그림 작업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오늘은 예외적으로 왔다고 말했다. 그 말에 솔의 심장 박자가 어긋나갔다. 솔은 또 그에게 웹툰이 직업이냐고 물으니 그런 셈이라면서 자신은 글 위주로 표현된 그림들을 자신의 스타일로 옮겨 담는다고 말했다. 솔은 이렇게도 많은 질문을 했지만 자신에 대해서 묻지 않는 바다가 너무 좋았다. 오히려 자신을 물으면 자신은 초라하게 느껴졌을 테니까 말이다.


더 이상 있다가 솔도 자신에게 같은 질문이 날아올까 봐 오랫동안 자리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30분에서 40분 동안의 대화를 마치고 일어났다. 양들의 침묵 포스터가 크게 그려져 있는 벽면으로 다가갔다. 그 음산한 분위기의 포스터인데도 여기서 황홀한 기분이 날 수도 있구나를 느꼈다. 솔은 자신의 바지를 보았다. 작은 위스키 얼룩이 생겼다. 집에 갈 채비를 해야 할 시간도 된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니 솔은 자신에 대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전화번호는 알지 않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그의 주소를 알고 있으니 찾아가서 부탁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예술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신이 궁금했다. 안 그래도 마침 내일 반차를 쓸 생각이었는데 거제도를 둘러볼 겸 숙취해소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다음날이 온다면 다른 옷을 입고 그에게 찾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도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솔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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