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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드 입은 코끼리 Nov 04. 2024

11살

수필같은 소설: 4학년 때 책을 읽게된 계기 

책가방을 매고 학교에 갔는데, 특별히 수상한 것은 없던 하루였다. 몇몇 아이들이 내 옷차림을 보고 놀릴까 봐 일부러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결국 분홍색을 입었다가는 학교 친구들한테 놀림을 받을 게 분명해 보였지만, 그래도 분홍색을 조금이라도 섞고 싶어서 신발끈의 분홍색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가끔은 2학년 때 맸던 분홍색 책가방도 버렸지만, 다행히 수저통은 계속 분홍색을 써도 친구들이 놀리지 않았다. 요즘은 6학년 언니들이 들고 다니는 잔스포츠 가방을 하나 매고 다닌다. 가방에는 유행하는 곰돌이와 복슬이 키체인 등 인스타그램에서 인기 있는 키체인들을 하나 둘씩 달아 보니, 친구들의 가방과 비슷해졌다.


월요일이 지나 화요일이 지나고 오늘은 수요일이었다. 오늘은 맛있는 반찬이 나오는 날이라 기대하며 학교에 갔다. 1교시엔 신라시대와 삼국시대를 배우며 몇 가지 노트를 적었고, 수학 시간엔 규칙 찾기를 배웠다. 그렇게 3교시가 지나 있었다. 짧은 쉬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10분 안에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여럿이 모여 게임 이야기를 실컷 하고 있었고, 나는 요즘 인기 있는 뉴진스 언니들 이야기를 하며 친구들과 어울렸다. 친구들 가방에는 에스파 멤버 사진도 있었고, 서로 포토카드를 교환하며 장난기 가득한 수다를 떨었다. 누가 예쁘고 누가 엠카에서 어떤 상을 탔으며, 이번 핫백 1위 차트를 보면 블랙핑크의 인기는 여전하다는 이야기도 오갔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책을 읽는 한 문학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안젤라였고, 세례명이라고 했다. 안젤라는 똑 단발에 핑크빛이 도는 것은 입술뿐인 아이였다. 그녀는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우리가 입은 촌스러운 티셔츠와는 다른 어른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검정색 타이츠에, 청바지와 조끼를 입고 다녔다. 오늘 안젤라가 읽는 책은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처럼 보이는 책이었다. 고양이 관련 책인 듯했는데, 책이 꽤나 두꺼워 보였기에 내용이 궁금하지는 않았다. 내가 읽는 책들은 주로 도서관에 있는 만화책이었기 때문이다. 안젤라는 항상 조용하고 차분했다. 엄마는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수준이 높기 때문에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안젤라와 친구해 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새 학기 때 안젤라에 대한 소문은 늘 좋지 않게 퍼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왕따를 자처하는 아이였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과는 많이 달라 대화가 통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작게 말할 때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아 궁시렁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새 학기 초에 안젤라에게 몇 번 말을 걸어보려다 포기하고, 지금은 민지와 수진이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민지와 수진이는 하교할 때마다 함께 다이소에 들러 구경을 했다. 다이소의 다양한 스티커를 보며 서로 돈을 모아 금요일마다 함께 스티커를 사는 일이 가장 즐거웠다. 스티커를 산 후에는 가위로 3등분해 나누어 가졌는데, 가장 예쁜 부분은 항상 수진이가 가져갔다. 수진이가 항상 조금 더 돈을 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정해지곤 했다. 집에 가면 나는 그 스티커를 일기장에 붙이고 친구들 이름을 적으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간단히 네 줄 정도로 적었다. 영어 일기도 비슷하게 쓰고 마무리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간다.


어느 날이었다. 수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 금요일이었다. 나는 민지와 둘이서 다이소에 가서 스티커를 고르게 되었는데, 둘이서 산 스티커는 이름 스티커여서 결국 한 사람의 이름만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민지의 이름으로 스티커를 선택했고, 민지는 고마워하면서 다음 주엔 내 이름으로 스티커를 뽑자고 말했다. 나는 그래, 라고 답했지만, 다음 주엔 수진이가 있을 게 뻔해 결국 내 이름 스티커를 갖지 못할 걸 알았다. 그 순간부터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학교에 갔더니, 수진이의 팔에는 깁스가 되어 있었다. 자전거 사고로 팔에 금이 가 깁스를 했고, 선생님께서 수진이를 도울 사람을 찾으셨다. 그러자 민지가 자처하며, 수진이의 필기를 돕고 급식 때 식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도 곧 안젤라처럼 외톨이가 될 것 같았다.


안젤라는 이런 나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나의 업보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한 것이라고는 친한 친구를 사귄 것뿐인데 이렇게 가혹한 벌을 주는 학교가 너무 싫어졌다. 그때부터 직감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수진이와 민지는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나는 쓸모가 없어졌다. 체육 시간에 민지와 수진이는 수진이의 팔 때문에 함께 공놀이를 하지 못하면서 안젤라와 공을 던지게 되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이어지는 고통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나는 공을 안젤라에게 쏘아붙이듯이 던졌지만, 안젤라는 차분하게 받아치며 천천히 나에게 살랑 던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 공격적으로 던졌고, 그러다 체육 시간이 끝나자마자 공을 던져버리고 교실로 달려가 울음을 터뜨렸다.


집에 가서는 핑크색 운동화를 벗어던지고 소파에서 엄마에게 학교에 가기 싫다고 울면서 말했다. 앞으로 5개월을 혼자서 어떻게 버틸지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학교폭력을 당하는 건 아닌지 물었지만,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냥 스마트폰이 없어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며, 아이폰을 사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고민 끝에 다음 주에 아이폰13을 사주었다. 꽤 오래된 기종이었지만, 그래도 핑크색이고 케이스를 씌우니 기분이 좋아져 친구들과 다시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아 들떴다. 하지만 단톡방은 이미 차 있었고, 내가 들어가자마자 적막이 흘렀다. 모두가 나를 피하는 느낌이었고, 내가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11살의 고통이 이렇게 비참하고 참혹할 수가. 안젤라는 이런 아픔을 어떻게 견뎠을까? 나는 안젤라를 존경하게 되었고, 힘들 때마다 안젤라의 등을 보게 되었다.


안젤라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바뀌는 책을 읽었고, 나도 그녀를 따라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가기 시작했다. 청소년을 위한 책들이 많았고 글씨도 커서 읽기 편했다. 나는 괜찮아 보이는 책 두 권을 빌려 틈틈이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안젤라와 동급으로 소문났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읽는 책이 재미있었고, 나보다 더한 고통을 겪는 주인공들을 보며 나의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휴대폰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고, 나는 안젤라에게 다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안젤라의 말에는 기품이 있었고, 몇 번의 대화를 나눈 뒤 서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추천 도서를 듣고 내 수준을 높여갔다. 그렇게 나는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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