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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마동 귀공자 Oct 27. 2024

흡연권 침해냐 금연권 보장이냐

내 집 베란다에서 벌어지는 이념전쟁에 대한 호소문

 안녕하세요? 110동 입주민 여러분

 먼저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 개인적인 글을 써붙인 점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라며, 무슨 사연인지 잠시 읽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찬란한 20대를 너무나도 사랑하던 담배와 함께 보냈습니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탓일까요? 흡연을 한 지 10년 만에 그렇게 사랑하던 제 담배냄새가 역하게 느껴져 '아,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구나..' 무덤덤하게 생각하면서 금연을 시작한 지 이제 5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직접 겪어봤으니, 흡연자와 담배를 혐오하시는 분들의 입장을 모두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바로 저희 집 베란다에서 나는 담배냄새 때문입니다. 두어 달 전부터 저희 집 베란다에서 아주 진하고 진한 담배 냄새가 나더군요. 처음엔 환기하려고 열어둔 창문 틈으로 바깥 공원에서부터 연기가 날아와 들어오는 줄 알고 문을 꽁꽁 닫았었는데요. 이게 웬걸요. 오히려 공용우수관을 통해서 담배 냄새가 더 심각하게 올라오더라고요. 바깥이 흐리거나 비 오는 날에는 저기압 때문에 도저히 실내환기가 안 되어서, 저희 집 베란다에서 누가 방금 담배를 태운 것처럼 숨쉬기가 답답했습니다. 마치 저희 부부가 인간 공기청정기가 되어서 그 담배 냄새를 다 맡고 신선한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듯한 불쾌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요.


 하지만 현행법 상 제가 귀댁에서 흡연하시는 행위를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나만의 공간에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면서 담배 한 모금 구수하고 달큼하게 입안에 가득 머금고 싶은 그 욕구까지도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기까지 많이 참고 견디어 봤습니다만, 이기적인 용기를 내어 간절히 실외흡연을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조금 한적한 길거리에서조차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 따끔한 눈초리를 받기 십상이고, 하물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마저도 실내흡연을 자제하라는 공지문이 층마다 붙어있는 등 흡연에 대한 인식과 환경이 매우 안 좋은 상황에 이렇게 장황하고 당돌하게 실외흡연을 부탁드려 심기가 불편하시리라 예상합니다.


 그렇지만 아파트에 함께 거주하고 있는 이웃들을 위해서.. 또는 함께 숨 쉬며 살고 있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물론 대단히 번거로우시겠지만 이제부터는 실외흡연을 시작해 보심이 어떠하실지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110동 이웃주민분들 모두 댁 내 두루 평안하시고 안녕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2024년 10월 27일 1804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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