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House로 다시 읽기
유복했던 유년 시절은 월급이 통장을 스치듯 잠시 스쳐 지나갔고
중학생이던 시절부터는 전세였는지 월세였는지 모를 허름한 집들을 전전하며 살았다.
유년시절 살던집은 동네가 조성될 무렵 할아버지 할머니가 직접 단독주택을 지어 터를 잡았고 우리가족이 그 집에서 산 세월은 20년은 족히된다. 하지만 IMF가 닥치면서 아빠의 사업은 힘들어졌고 헐값에 집을 넘기고 강화에 위치한 가건물 주택으로 이사를 하게되었다. 1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통학하며 중학교 생활을 했지만 통학시간이 오래걸린다는 불편함 외에 큰 불만 없이 학교생활을 했었다.
서울 생활이 익숙했던 우리는 강화로 이사는 했지만 전학은 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 모두의 생활권은 서울이라 기회만 된다면 서울로 올 마음에 그랬던것 같다. 우리는 강화 가건물 생활을 2년만에 정리하고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때쯤 강서구 화곡동으로 이사를 했다.
화곡동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허름한 단독주택의 1층. 주인집 아랫집에 세 들었을 때는 대문이 크고 번듯한 집에 사는 동창생 눈에 띄는 게 싫어 외출하기 전 인기척을 살펴가며 쪽문을 드나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랐던 탓에 결혼을 한다면 꼭 내 집을 갖고 싶었다.
결혼을 앞두고 경기도 외곽 남편 회사 근처에 신혼집을 알아보았다. 우리 예산으로 몇 가지 옵션이 주어졌는데 30년 된 5층건물의 1층, 13평 주공아파트는 매매가 가능했고 근처 천 세대 이상 대단지 신축 아파트 국평 은 전세 입주가 가능했다.
나는 젊은 사람들이 추구한다는 새 아파트의 편리함과 안락함을 뒤로하고 작고 낡은 아파트를 선택했다. 새 아파트의 편리함을 누려본적 없는 청춘의 선택이었다. 청소년기부터 10년이상 보따리장수처럼 몇년마다 짐을 싸야하는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는 내 집에서 맘 편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작고 초라해도 내가 주인인 내 소유의 집, '내 집'이 주는 위안을 간절히 소망했다.
'내 집' 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어느 날 8살 첫째 아이가 말했다.
" 엄마, 나도 내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어."
" 응? 내 아파트?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우리 아파트인데 무슨 소리야?"
" 아니~ 우리가 사는 집 말고 진짜 내 아파트~"
큰 딸이 자꾸 내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엄마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네가 본 내아파트는 언제 어디에서 본건지 알려줄래?"
" 우리가 예전에 살던 원주에도 있었고 지금 자주 다니는 도서관 옆에도 내 아파트가 있어.
내 아파트는 다른 동네에 가도 있고 어딜가나 있어. 그게 좋은 아파트인가봐. 나도 내 아파트에 한번 살아보고 싶어"
아이가 하는 말을 따라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렸다. '어.. 도서관 옆에 있는 그 아파트?'
" 아! 도서관 옆에 있는 LH 아파트를 얘기하는 거구나."
영어를 모르던 아이 눈에는 'LH 아파트'가 당연스럽게 '내 아파트'로 읽힌 것이었다.
육아를 경험한 부모라면 한참 말을 배우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언어를 구사해 웃을 수밖에 없던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집은 내 아파트가 그랬고, 이웃 작가님 아들이 캐나다를 개나다, 브라질을 브라즐로 쓴 일이 그럴것이다.
'내 아파트'라는 말에는 내가 살고 있는 '내 집'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를 눌러주는 묘한 힘이 있다.
생애 처음으로 가져본 13평짜리 주공 아파트 '내 집'을 가졌을때는 그저 내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지하주차장의 편리함을 모르던 그 시절엔 엘리베이터의 유무나 화장실 갯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낡고 허름해도 내 집이면 그걸로 족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 은행빚을 떠안고 내 집인지 은행 집인지 모를 집에서 살고 있다. 더 나은 환경을 원하는 욕구는 날로 거대해진다.
얼마 전 구독 중인 한 작가님의 글을 읽었다. 길을 가다 알파벳만 보면 자신만의 뜻을 붙여 보는 습관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었다. 그 작가님은 LH아파트를 보면 Love House를 떠올린다고 하셨다. LH에 나름의 추억을 갖고 있던 나에게 작가님의 시선은 신선했다. 작가님 덕분에 잠시 멈춰 미소지을수 있었다. 그리고 LH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소환되었따. 이현기 작가님의 시선에 감사하다. 어디 가나 만나게 되는 LH 아파트를 이제는 러브 하우스로 읽게 되는 마법이 어느새 나에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LH란? 국민 임대주택으로 '임대주택'에 대한 편견으로 차별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에게 LH란? 이현기 작가님 덕에 러브하우스 이자 '내 집'에 대한 첫 마음을 일깨워주는 고마운 문자이다. '내 집'은 그저 내 육신을 누일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면 그걸로 된 것임을 날마다 마음에 새긴다.